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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텐도


‘MB 관심’ 한국판 닌텐도, 13일 첫선

뭐.. 개인적으로는 사업적인 얘기를 하는 걸 별로 즐기진 않지만… 
딱히 외견상으로 봤을 때는, 이 제품이 이명박씨의 넋두리 몇개월 만에 후다닥딱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동안 꾸준히 개발되어 온 것에 대통령의 한마디에 좀 쉽게 투자를 받아서 제품 양산을 할 수 있었을듯. 
암튼 모든 걸 떠나서, 이명박씨의 그 넋두리를 처음 접했을 때,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민을 와서 한국 교민들을 좀 만나고 다녔을 때,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중국계 이민 사회의 뿌리깊은 견고함이었다. 일반 자영업자에서부터 연방정부 직원까지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중국계 교민들의 화합을 이끌어 내고, 한편으로는 신규 이민자들이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그 중에서 특히 한국 교민사회와 쉽게 비교되던 부분이 바로 식당을 비롯한 자영업 부분이었다. 누군가가 어떤 특정 부분에 대해 그럴듯한 사업 아이디어를 내면 중국계 금융 지원센터에서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만일 그 사업이 속된말로 ‘터졌다’ 싶으면 같은 지역 내의 동족간 경쟁을 억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밍밍이네가 양재1동에 딤섬집을 시작해서 대박을 맞은 것을 보고, 첸첸이네가 앞 건물에 비슷한 딤섬집을 차리려고 하면 대출이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민단체에서 개입해서 간접 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 교민사회는 누가 무슨 장사를 해서 성공을 하면 당장 그 주위로 우후죽순 유사한 사업체가 들어서서 결국엔 공멸한다는 자조적인 얘기도 빠지진 않았다. 
당연스럽게도 이런 문제는 이민사회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이민 사회는 단지 전체 사회의 축소판일 뿐… 그런 부분에 있어서, 한국사회에서는 어떤 “권위”가 제대로 인정받는 것을 참 찾기가 힘들다.  어떤 “권위”를 (혹은 그 권위의 이유를) 인정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은 없고, 그걸 남용하거나 (더러워서) 피하는 현상만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가 어떻게 해서 특정 지역구에서 시민의 대표로 선발되었는지와는 상관없이 (물론 대부분이 얼토당토하지 않는 이유이긴 하겠지만) 무조건 싫어하거나 깎아내리는 모습이 존재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르거나 그 권력에 굴종하거나 하는 모습 만이 남는 것이다. 부자들에 대해 적대적인 것도, 그 부자들이 나의 삶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어가는 계급적 위치에 있는지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보다 부자인 것이 꼴같잖고, 그들의 소비행태는 그냥 돈지랄 같고, 부모만 잘 만났으면 나도 부자가 되었을텐데.. 이런 생각들이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불행하게도 남한사회가 제대로된 혁명이나 과거사 청산을 경험하지 못해서 인지도 모른다. (물론 상대적으로 과거청산이 잘 된 중국에서도 지금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이런 모습이 보이긴 하는 것 같지만) 어제까지 일제의 앞잡이로 조선인을 학살하는데 앞장서던 순사놈이, 해방이 되고 일제가 물러났는데 처벌을 받기는 커녕 경무국장으로 승진을 했다.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반복되는 걸 몇 십년을 거쳐 지켜봐 왔는데, 무슨 권위에 대해 개뿔 존중 같은 게 있을 수가 있나. 게다가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장유유서”같은 황당한 이데올로기 주입만 하고 있으니, 맹목적인 “권위”에 대한 굴종이라는 것이 시대를 걸쳐 먹혀들어갈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권위”가 있으면 그게 재수없고 짜증나는 것이라고 생각될지라도, 막상 그 권위를 검증하는 것에는 게을러하거나 겁을 낸다는 점이다. 검증절차라는 것이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그런 연유도 있지만, 심지어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파고 들어서 밝혀내려고 하질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권위”에 대해 (이유도 없이)무조건적으로 경시하거나 혐오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빽만 있으면..’, ‘나도 줄만 잘 섰으면..’, 또는 ‘나도 맘만 먹으면, 너 만큼은’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고 얼마 안되어 국무회의 시간에 나온 보고가 이른바, ‘쥐라기 공원’과 ‘현대 자동차’ 수출에 대한 얘기였다.한 나라의 대통령 쯤 된다는 사람이 “왜 우린 못만드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덩달아 애니메이션 및 영상산업을 육성 지원하겠다는 정책이 뒤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 공무원들이란 예산을 집행하면 보고를 해야하는 입장이고, 때문에 당장 지원책의 시각적인 결과물이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 그 정책이라는 것은 대부분 (2년 후면 고철덩어리로 변하게되는) 비싼 컴퓨터 그래픽 장비를 구입하는 것에 집중되었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대통령이 외국 나가서 어떤 빵을 먹어보고 감동했고, 왜 우리나라는 이런 걸 못 만드나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정부가 외채를 들여 빵기계를 사들일 자금을 지원해줬다. 물론 빵 역시 기계만 들여온다고 해서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픽 장비만 사들인다고 해서 ‘쥐라기 공원’이 만들어질 거라는 기대 만큼 어처구니 없지는 않다. (게다가, 다시 강조하지만, 그 장비들이란 2년 후면 그야말로 고철이 된다. 실제로 ‘쥐라기 공원’을 만드는데 사용된 2억원 짜리 서버급 인디고 컴퓨터를 1년 동안 그냥 테이블로 사용한 적이 있다) 그 후 김영삼 정부는 이렇게 외채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경제를 박살내고 나서, 결국 구제금융시대라는 걸 맞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으로 목숨을 잃었다. 
15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우린 그런 거 하나 못 만드나’라는 철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주변 언론에서는 ‘한민족의 저력’을 운운하면서 바람을 잡고 있다. 나름 관련기사들이 뜨긴 하지만, 미국에서 10여년 전에 출판된  이상으로 닌텐도에 대해 자세하게 다뤄진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 닌텐도가 만든 상품에 질투가 난다면, 왜 그 기계가 그렇게 매력적이고 어떻게 그 회사에서 그런 상품을 개발해낼 수 있었는가를 먼저 연구해봐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그저 비슷한 기계 (혹은 좀 더 높은 스펙을 가진 기계)를 하나 개발하는 데에 그친다. 그러고 나서 중국산 자동차를 짝퉁이라고 비난하는 걸 보면 ‘후안무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정말이지 6년전 이민와서 교민들한테 들었던 얘기와 하나 다를게 없다. 왜 우린 권위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걸까? 
그리고 정말, 닌텐도 게임기의 판매량을 질투한다면, 그런 비즈니스가 탐이 난다면, 닌텐도 게임기에 탑재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데 게 어떨까? 닌텐도에서 탐이나서 자신들의 인기 게임기에 넣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만드는 그런 기술을.. 그게 적어도 좀 더 모양이 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