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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내가 어릴 적에 한국사회에 가정용 전화기가 막 대중화되던 무렵이 있었다. 그 전에는 주인집에 올라가서 전화를 받아야 한다든지 시골에서 전화를 걸려면 면사무소나 이장님댁에 가야 전화를 할 수 있다든지 하는 일도 있었지만, 딱 어느 때가 되자, 언제 그런 불편이 있었냐는 듯 태연자약하게 온 나라 가정집마다 전화기와 전화번호가 들어서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얼마 후, 흔히 지성인들이라고 불리거나 비평계라고도 불리는 사회 일각의 잔대가리들과 주둥아리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인 즉슨, 전화질(!)이 범람해서 애들(!)이 편지를 안쓴다는 것이다. 자고로 문장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논리력이나 사고력이 향상되는데, 애들이 편지를 안쓰고 전화질만 하다보니까 사고력이 점점 짧아진다는 그런 논리였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강제로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게 하기도 하고, 일기를 쓰게해서 검사를 하기도 하고 그랬다. 코미디 같지만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다.

그 당시 지성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 중에선 그 아무도 사회가 점점 문서 중심에서 대화와 토론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없었다. 사업을 하더라도 기획서를 멋지게 쓰는 것보다 프리젠테이션을 잘해내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걸 예측한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 당시 지성인들 중에선, 자신들의 사고방식이 낡아빠져서 변화하는 세계를 못따라가고 있다는 걸 자성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강산이 세번 정도 변하고 나니까.. 애들은 개인용 전화기를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이제 통화를 하지 않고 문자질(!)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상에 열심히 블로그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세태를 우려하는 주둥아리들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어릴 적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주한 외국인 장기 자랑” 말고도 빠지지 않고 해주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장한몽”.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이 신파극은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여러번 변주되어 방영되었고,  스트레이트한 신파극으로도 방영을 몇 번이나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허참씨가 이수일 역으로 나왔던 작품을 기억) 내용은 뭐.. 모두 알다시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라는 대사로 집약되는 “황금만능주의”에 관한 연인의 비극이다. 뭐 딱히 “장한몽”이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가 융성하기 시작하고 부동산 경기가 폭발하기 시작한 그 당시 TV나 신문에서는 개나 소나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땀을 밟고 삼성과 현대, 대우와 포철 등의 재벌기업이 돈을 모으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뻔뻔스럽게 국민들에게 “돈 너무 좋아하면 안돼”라며 계몽하고 있었다.  

또 강산이 세번정도 바뀌니, 이젠 어디서나 “돈”이 최고라는 사실을 떠벌이고 있다. 명절이 되면 서로 “부자되세요”라고 덕담을 하고, 아기 돌잔치를 하면 모두들 자기 아기가 상에서 돈을 잡기를 바라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어릴 때는 공부 잘하지만 밉상이 얌체 친구를 보면 “공부만 잘하면 다냐? 먼저 인간이 되야지”라고 험담을 했지만, 지금은 “저런 공부 아무리 잘해봐야  돈 못벌어..”하며 이죽거린다.

한국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잔대가리들과 주둥아리들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회 현상을 무조건 걱정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요즘 아이들”의 행동이 기성세대의 잣대로 이해하기 쉬웠던 적이 한번도 없었을 텐데,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을 타박하고 “요즘 세태”를 비난했다. 특히 그런 사회 현상의 원흉은 종종 (자신들이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물질 문명의 결과물에게 혐의가 씌워졌다. 비단 전화 뿐만 아니라, TV도 마녀사냥을 당했었고, 만화방도 전자오락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번 한국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요즘 부모들이 “ADHD”라는 집중력 장애 증상에 대해 많이 걱정한다는 것을 들었다. 컴퓨터 게임 때문에 아이들의 뇌파가 달라졌다라는 (왜 아니겠어..) 의견도 있었고, 어떤 학급에는 한반의 40% 가까이되는 아이들이 ADHD 증상을 보인다고도 했다. 짧게 나마 조사해보니 대충 한 한급의 10% ~20% 정도가 그런 증상을 보이고,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그 정도 인원의 아이들이 교사들의 지도 범위에서 벗어나있고, 그게 80년대 초에 미국 사회에서 연구된 병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학교 다닐 때 선생중 한 명이, “너희들 처럼 자꾸 떠들면 미국에서는 때리는 대신에 약을 먹인다” 라고 협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게 그 얘기였었구나)

딱히 ADHD의 실체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선 얘기가 안될테니, 백보 양보해서 그런 병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게 주둥아리들 말대로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의 뇌파 구조를 바꿔”놔서 그렇다고 치자. 그리고 그게 정말로 10% ~ 20%의 학생들이 그런 증상이 보인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건 이미 병이 아니라 “변화”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20~30년 후를 책임질 지금의 아이들 세대들이 점점 변화해간다고 봐야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역사에 등장하는 어떤 거대한 변화도, 그 선두그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똘아이나 환자 취급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하는지.. 우리 어릴 때야 이런 똘아이들이 몇 대 얻어맞고 끝났지만, 그래서 그런 물리적인 진압행위가 사실 사회변화를 막아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약물치료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통제하려고 하고 있는 셈이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한 문장 “제행무상 諸行無常”. 그렇다고, 지금의 교육체계가 당장 새로운 아이들을 받아들일 정도로 바뀌거나 탄력적으로 운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될리가 없지.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이해 못하는 새로운 변화를 무조건 환자 취급하고 배격하려고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은 단지 “비겁한 것”일 뿐이겠지만, 자신과 다른 것을 배격하는 것은 모든 “폭력”의 시작이다. 인류 역사의 참극들은 모두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부양하고 있는 아이가 없는 나로서는, 사실 이 아이들의 부모가 겼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의 만분지일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부모의 큰 역할 중 하나가 자신의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적어도 나는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이, 내 조카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앞으로 변화할 사회에서 전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위의 시선에 겁내지 말고 항상 용기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