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December 2010

2010 그 나물에 그 밥 Awards

1. 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사실 중 하나는, 어쩌면 더 이상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나오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뻔하게 장사가 안될 것 같은 이야기, 소수의 관객이 보더라도 결코 마음이 유쾌해질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극장에 걸 수 있는 제작사와 감독의 용기가, 대자본의 원리가 시스템을 장악한 한국사회에서 과연 더 이상 통용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 영화는 다음 10년간은 극장에서 볼 수 없을,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도 귀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었죠, 한번 있었던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비록 사회주의 시스템이 무너지긴 했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의 열정과 연대의식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남 보다 좋은 대학을 가고 많은 연봉을 받고 빠른 차를 타면서 사는 것이, 친구와 더불어 사는 것 보다 그렇게 근사한 일일까요? 2003년에 발표된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지만, 올해의 영화 경험 중 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2. How to train your dragon
최근 2-3년 간 나온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 (특히 드림웍스에서 만든 작품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이걸 대형 화면으로 못봤는지 그저 아쉬울 뿐. 아버지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한 남자로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뮬란 혹은 타잔부터 였나?) 디즈니의 주특기였는데, 여기에 (최근 헐리우드의 트랜드인) “다른 생태계와의 조화” 라는 내용까지 성공적으로 조합해 만들어냈습니다. 근데 왜 이런 내용의 영화들은 침략전쟁으로 벌어들인 미국 자본으로만 만들어지는 건지.. (게다가 멀쩡한 미국 영화임에도 포스터는 왜 일본판이 더 멋진 건지??)
<예수전>의 저자이자 강사, 본인 블로그인 규항넷과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으로 유명한 자칭 B급좌파 김규항씨의 인터뷰집.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와 공저로는 이전에도 몇 작품이 있었지만, 본인 이야기와 생각으로만 온전히 1권을 채운 것은 아마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몇몇 칼럼과 본인 블로그를 통해서 좌파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종종 언급했지만, 이 책에서는 <좌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터 시작해서, 그의 근본주의가 어디서 비롯되었고 무엇을 향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뭐 거창한 것 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이 책을 통해서 자칭 좌파라는 인간들이 좀 더 겸손해지고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Marx in Soho (Howard Zinn)
친구 D군의 권유로 정말이지 10여년 만에 보게 된 무대 연극. 하룻밤 외박을 허락받은 마르크스 유령이 행정 착오로 런던 소호가 아닌 뉴욕 소호에 떨어졌다는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왜, 지금, 다시, 맑시즘이어야 하는지 늙은 유령의 입으로 웅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보는 내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가정이나 가사까지 꼼꼼하게 돌보게 되면 결코 (자본론 정도 써낼 수 있는) 거장이 될 수 없다는 슬픈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슬픈 건, 그렇다고 가정이나 가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거장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지만. 
사실 연극 전에 미국에 있는 사회주의자 라디오 방송사 사장이 기조연설을 했었는데, 관객 중 하나가 Hackling (다른 사람의 연설 중에 화를 내며 뛰어들어 반발을 하는 것)을 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사연은, 기조연설 내용 중 하나가 미국이 이란에 핵무기가 있습니다는 걸 확인도 안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침략하려고 한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란 정부의 압정에서 탈출한 난민인 관객이 반발을 했던 것. 난 당연히 이런 정도의 반발은 연설자가 해결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다른 관객들이 이 사람 한 명한테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반응을 했던 게 놀라웠습니다. 그럼 Stephen Harper 정부가 싫은 사람들은 모두 캐나다를 떠나야 하나? 아무리 맑스를 좋아하고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해도, 순간적으로 연대의식을 완전 상실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강풀 만화를 지면으로 봤을 때 조금 다른 느낌을 받게되는 것은 웹툰 만이 가능한 스크롤 연출 기법을 극대화 시켜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간의 경륜으로 농밀해진 연출 테크닉과 작가의 사회의식이 버무려진, 아마도 강풀 역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그 누가 좀비들을 불행한 희생자로 설정할 수 있었을까요? 소외된 사람들에게 향하는 감독의 시각이 다음 작품에는 어떻게 발전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7. 길은 복잡하지 않다
왜 진보는 멈추지 않아야 하는가? 아니, 왜 멈춰진 진보는 썩어가기 쉬운가? 책 제목만큼이나 길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길을 걸아가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걷고 있는 것 뿐이지요. 20년 넘게 현장을 지켜온 한 노동운동가의 회고록은, 원칙을 버리지 않고 사람들 간의 연대를 존중하는 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8. Inception
서양사람들에게는 충격과 공포였을지 모르지만, 동양 사람들에는 친근하지 그지 없는 “내가 나비냐, 나비가 나냐” 스토리. 얼마전 작고한 콘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밝힌 바가 있습니다. 뭐.. 전체적인 큰 설정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지만, 놀란 감독 영화에서 얻는 시각적 경험은 언제나 대단하더군요. 특히 (포스터에도 사용된) 도시 전체가 뒤집어지는 장면은.. 아.. 정말 이젠 저런 것도 되는 구나 싶었습니다.
9. 브로콜리 너 마저 – 졸업
얼마 전 모 방송사가 방송금지라는 최대의 홍보를 해준 덕택에 불현듯 인기가 급상승한 브로콜리 너 마저의 최신곡.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처연한 노랫말을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에 담았는지. 
10. Heavy Rain
“The 7th Guest”로 시작된 Interactive Drama에 대한 기대감은 아마도 이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소년들의 연쇄 살인사건을 음습한 분위기와 팽팽한 긴장감으로 게이머를 끌고 나갑니다.(게다가 PS Move가 결합되어 더 실감이 난다). 전반적으로 좀 더 재밌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밤을 새고 할 수 있을듯. 
그 밖에 .. 뜨거운 감자 – 시소, 바쿠만, Gantz, Heart Locker, MacGruber, Social Network, The Sorcerer’s Apprentice, Despicable Me, Leo Trotski, Toy Story3, 등등으로 올 한 해도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날 Vancity Theatre에서 본  Kon Satoshi 회고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