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Mexico All inclusive 후기 (Grand Sunset Princess) #6

엿새째

밤새 쏟아지는 빗소리가 지금 내가 밴쿠버에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TV와 싱글서브 에스프레소 머신이 딸깍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안 그래도 꿈이 너무 시끄러웠다. 누군가의 재판에 방청을 갔는데 형량이 높게 나와서 대책 회의를 하고, 가족들이 하는 일일주점에 가고, 뉴페이스라는 이유만으로 경계를 당하고..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119를 부르고.. 암튼 시끄러웠다. 엊저녁 일찍 잠들었더니 그런가 보다. 수면량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꿈을 많이 꾸게된다. 그러고보니 이상하다. 계속 생산 활동 없이 먹고 자고 쉬고 놀고 중인데 어찌 피곤했을까? 물론 답은 간 때문이다. 위와 장 때문이기도 하다. 급격히 늘어난 식사량과 음주량으로 내장의 활동량이 급증했으니 당연한 일인것이다. 엔돌핀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야자수가 꺾어질 듯 부는 바람

암튼 침대에서 다시 뭉기적 거리다가 왠지 이렇게 폭풍이 몰아치는 날 바닷가는 어떨지 호기심이 들어서 나섰다. 에구머니나… 적색 깃발이 꽂혀 있는 건 물론이고 파도 상태가 심상치가 않다. 다행히 야자수 위의 코코넛들은 미리 다 따두었나 보다. 저렇게 나무들이 휘청거리는 걸 보니, 그렇지 않았다면 비치체어에 누워 자다가 코코넛 벼락을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강한 맞바람을 맞고 걸어가다보면 꼭 용형호제의 마지막 액션신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당시, 성룡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잠자리에 누워서 영화 첫장면부터 마지막까지 반추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곤 나라면 그 장면을 이렇게 했을 텐데..라면서 나만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었다. 아.. 그 시절 난 정말 영화를 좋아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어제 크리스탈이 집요하게 창작 일에 정말로 아무 미련이 없는지 물었던 것이 생각난다. 물론 미련이 있다. 마치 복권 당첨을 원하는 것 만큼의 미련이 있다. 그리고, 복권을 안 사는 것 만큼이나, 창작일 복귀를 위한 어떤 노력도 안 하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한다. 이젠 아주 Omar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그가 담당하는 구역에 앉는다. 그 곳이 창가든 아니든, 주변에 시끄러운 이웃이 있든 아니든 말이다.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북미에선 팁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이민와서 처음엔 팁 시스템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14년이 지나서 말이다. 아침부터 술을 권하는 Omar에게 점심 때 보자고 얘기하곤 자리를 뜬다.

휴가와서 워낙에 활동량도 떨어지는데 술까지 줄기차게 먹다 보니 어깨 통증이 좀 심해졌다. 마침 아내도 몸이 찌뿌둥한지 같이 11시에 Gym에서 하는 필라테스 클라스를 듣기로 한다. 필라테스 강사 Maya는 영어도 거의 완벽하고 얼굴도 몸매도 방금 TV에서 튀어 나온 것 같다. 마징가Z를 꼭 닮은 아줌마 강사가 진행하는 비디오만 보고 혼자 연습했던 나로선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의 45분가량 했는데, 오.. 의외로 빡세다. 아니면 그동안 너무 운동을 안했던 건가? 내일 아침에 배가 제법 땡기겠다. 앞에 근육덩어리 흑인 청년도 같이 수업을 들었는데, 의외로 많이 힘들어한다. 어쩌면 근육 사이즈를 키우는 것과 필라테스는 좀 다른 운동일지 모르겠다. 아무리 배에 식스팩이 울퉁불퉁 있어도 그 옆에 있던 배 나온 50대 아줌마보다 못 따라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해변에는 바람과 파도가 거세지만, 리조트 단지 내엔 해가 쨍쨍하다. 게다가 밤새 비가 와서 그런지 습기도 매우 높다. 방금 빡세게 운동을 하고 나왔어서 그런지 근육에서 아직 열이 난다. 그래도 반대쪽 해변을 한번 걸어보기로 한다. 딱히 다를 건 없었다. 다른 리조트 단지의 해변이 있었고, 다른 색깔의 비치체어가 있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저 쪽으로 갈 때는 그래도 바람을 등에 지고 걸어서 좀 수월했지만, 돌아올 때는 정면으로 맞바람을 받는다. 오늘은 이래 저래 운동을 많이 하는구나. 식당에 가면 보상 치원에서 데낄라를 마셔줄테다 생각한다.

때가 된 관계로 일단 식당으로 향한다. 점심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난 후 그 때부터 라운지 풀장에서 또 뭉갤 계획이었는데, 살짝 살펴보니 한 자리 빼고는 이미 만석이다. (그 나마 그 자리도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차버렸다). 아.. 한정된 재화는 정말 스트레스 수위를 높이는구나. 뭐 일단, 배부터 채우러 간다. 없으면 없는 대로…

점심땐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즉석 파스타를 주문한다.  며칠 전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중식요리사가 즉석으로 짜장면을 만들었었는데, 그 이후로 면요리가 좀 땡기던 터 였다. 여기선 여러가지 파스타와 소스, 그리고 야채 토핑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고, 원하는 대로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볶아준다. 이 리조트에는 ‘맘마미아’라는 a la carte 이탈리아 식당이 있고, 그곳에서도 피자나 파스타를 먹을 수 있지만, 왠지 이 스파게티보다 크게 나을 것 같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방금 운동하고 더운 햇살을 지나왔더니, 이 뜨끈한 스파게티가 잘 안 넘어 가는구나. 오늘 점심도 Omar가 담당하는 구역에 가서, 음료 서빙을 받는다. 왠지 같은 바에서 주문하는 같은 음료라 할지라도, Omar가 가져다 주는 술이 더 맛있는 이유가 뭘까? 어쩌면 그가 눈치가 빨라 베이스 술을 투샷을 넣어달라고 특별히 주문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암튼 .. 고맙네. 더불어 데킬라샷도 두 잔 주문해 먹는다. 음.. 엊그제 데킬라를 마시고도 별 탈 없었던게 자신이 붙었는지 떠나기 전까지 꾸준히 묵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아직 지겨워지지 않았는냐고 묻는다. 난 평생 이러고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한다. 100% 가사 노동에서 자유로운 삶. 식당에 가면 밥이 준비되어 있고, 메이드가 방 정돈을 해주고, 자리에 앉거나 누우면 버틀러가 술을 가져다 준다. 난 절대 평생 지루하거나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지루함에 몸서리쳐 골프 같은 운동을 하거나, 자기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리곤 누구처럼 낮에는 해변에서 모히토를 마시고 밤에는 바에서 다이키리를 마시면서 글을 쓰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원하는 삶을 다 가지고 사는 경우는 없다.

이제 라운지 풀장엔 오두막과 비치체어 모두 사람이 다 차있다. 뭐 그럼 해변으로 나가지 머. 뒷쪽에 누우면 그나마 바람을 덜 받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비치타월을 두 장씩 가지고 나선다. 바다는 볼 만큼 봤으니.. 이렇게 가만 누워서 책을 읽으며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변에서 비치 발리볼을, 디스코 댄스 파티를 하느라 좀 시끄럽다. 양 귀에 이어폰을 끼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신곡이 흘러나온다.

하늘은 맑지만 바람은 아직 거셌다

해변에 누워서 진토닉과 모히토를 계속 마셔댄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닉워터 대신 탄산수와 라임필을 한 진엔소다를, 아내 역시 모히토에서 토닉워터 대신 탄산수를, 그리고 설탕을 뺀 모히토 sin azúcar를 주문한다. 칵테일술은 뭐 다 좋은데 너무 달아서 많이 못 마시는게 단점이었으니, 이렇게 무가당 칵테일을 주문하는 건 무진장 마시겠다는 포석이다.

다른 한 쪽에선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멕시코 리조트에 와서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나보다. 보통 북미 결혼식에선 친한 친구들만이 자기 비용으로 참가하는데, 비행기 타고 여기 리조트까지 와서 결혼식 참가하는 것보면 정말 친한 친구인가보다. 뭐, 그러다보니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결혼식이 된다. 나중에 마침 우리가 저녁 먹으러 갔던 식당에서 피로연을 하던데, 그냥 테이블 서너개 붙이니 결혼식 참가자 모두 모여 식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읽던 책을 마치고, 어느덧 식사 시간이 되었다. 참.. 좋구나.. 어릴 적 맘대로 뛰어 놀지 못했던 걸 보상받는 기분이다. 오늘 저녁은 Las Olas라는 해산물 식당으로 그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조금 일찍 나서서 라운지에서 한잔 더 하기로 한다. 난 Dos Equis 생맥주를 아내는 모히토를 한잔 더 한다. 친절한 바텐더가 럼을 콸콸 채워준다. 이미 알딸딸해진 아내에게 이 모히토가 치명적이었나보다.

해산물 세비체

새우 갈릭 버터

셰프 스페셜

오.. 해산물 식당이 의외로 좋았다. 특히 전채로 나온 새우 갈릭버터와 여러 해물을 갈릭 버터에 볶은 셰프 스페셜 메인 디시가 생각보다 아주 괜찮았다. 첫날 와서 중식 뷔페요리랑 너무 안어울렸던 이곳 화이트 와인에도 슬슬 입맛이 적응되는지, 이 해산물 요리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마신다.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에는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낮에 심한(?) 운동을 해서 배 근육과 허벅지 근육이 땡기기 시작한다. 아내를 부축하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정말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오늘도 썰전을 못보고 잔다.

4 thoughts on “2017 Mexico All inclusive 후기 (Grand Sunset Princess) #6

  1. J

    K님 안녕하세요. 저 J입니다. 안녕하시죠? 사진 보러 왔다가 한 줄 남겨요.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리조트의 음식이랑 풍광이 정말 좋아보입니다. 나중에 바깥 분에게 리조트 이름을 여쭤야겠어요. ㅋ

    마지막 문장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오늘 카톡으로 버진 모히토를 드셨다길래, 아니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 그런 건강섭생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시다고 강단이 있으시다고 생각했는데 흠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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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ddogjr Post author

      그 뒤에 몇 문장이 더 있었는데 검열에서 짤렸습니다. ㅠㅠ. 표현의 자유라는 건 정말 힘든거네요. 자세한 얘긴 나중에 만나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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