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도서관 – 2월 6일

밤새 코를 골고 잤다. 내 코고는 소리에 놀라 깨보면 아내도 코를 골고 있었다. 중간에 코가 막혀서 몇 차례 꺠기도 했다. 감기로 코가 막혀도 코를 골 수 있는 거였구나. 

7시반 쯤 일어나 어제 사온 커피를 일단 내렸다. 역시 내 입맛에는 바싹 태운 커피보다는 살짝 볶아서과일향이 살아있는 커피가 좋다. 어쩌면 미국에서는 커피에 우유를 타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는 것이 상식이어서 더 강하고 세게 볶아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으응? 그럼 아메리카노는 어디서 나온 단어란 말인가.

아침은 떡, 계란 , 양파를 넣은 풀무원 짬뽕. 감기 핑계대고 짠 국물과 탄수화물을 원없이 들이부었는데, 이 업보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체중계에서 확인되었다. 아내나 나나 지난 30년간 최고의 몸무게를 찍고 말았다.

오늘 일정은 11시 뉴욕 공립 도서관 투어. 아내가 기대하던 투어다. 렉턴에서 1호선으로 42번가까지 간 다음 거기서 7호선으로 갈아타고 브라이언트 공원 앞에 내린다. 도서관 건물이 무슨 파르테논 신전처럼 생겼다. 계단 양쪽으로 사자가 한 마리씩 있다. 이름도 있다. Patience와 Fortitude. 둘 다 ‘인내’로 번역되지만 Patience가 근면, 참을성에 가깝다면, Fortitude는 시련과 고통에 굴하지 않는 걸 말한다. 도서관 수호동물 치고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했지만, 공부가 되었건 글쓰기가 되었건 책상에서 하는 많은 일들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은 당연.

먼저 리셉션에 모여 예약 확인을 하면 옷에 붙일 방문객 스티커를 발부받는다. 일반 열람객은 못 들어가는 곳도 들어갈 수 있는 무소불위의 스티커라는데, 접착성은 허접하기 짝이 없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툭툭 떨어지고 만다. 아무튼 리셉션에 코트를 맡긴 후 여기저기 구경을 하는데, 건물 관리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렇게 오래된 건물을 보면 옛날부터 쓰던 시설장비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온도 조절계나 식음료 분수대 같은. 시간이 되자 투어를 따라 다녔다.

도서관 투어라고 해서 딱히 대단한 걸 기대했던 건 아니다. 역시나 각 공간의 기증자와 건축물 장식 미술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공간이 역사적으로 사용되었던 장면 등을 설명한다. 어제 드러머 김종국씨 유튜브도 그렇고, 여기서 왜 예술가들이 뉴욕에 몰리는지 이해가 된다. 예술가들이 쉽게 모여 창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그러면 더 사람들이 몰리고, 동료들이 있으니 또 사람들이 몰리는 선순환이다. 마치 동종업체가 모여있는 세운상가나 청계천 공구상가에 기술자들이 몰렸듯이. 지하철 연착 때문에 발을 동동 굴러도 서로 말이 통하고 서로를 자극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지도

그런데 재미있는 안내판을 발견한다. 일요일에 휴관하게 되었다는 안내인데, 시 예산이 깎여서라고 뚜렷하게 적어둔다. 아무리 맨해튼이라도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궁핍해지는구나. 

성경의 구텐베르크 판 본 전시품 등 한 시간 남짓 투어를 마치고 갤러리를 둘러본다. 테디베어에 영향을 받고 썼다는 아기 곰 푸우, 피카소의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하하. 도서관의 기프트샵에서는 오래된 카달로깅 서랍장을 진열대로 쓰고 있네. 

오늘 점심은 차이나 타운. 아내가 미리 봐둔 리뷰가 좋은 딥섬집이다. 알고보니 조승연 유튜브에 나온 집이었다. 워낙 전통 있는 집이어서, 어느 뉴욕 패션 브랜드에서 런칭쇼를 이 집에서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잔뜩 기대가 된다. 

카날 스트릿 역에서 밖으로 나오자 마자 보행자 도로는 잡상인으로 가득한 것이 보인다. 가방부터 시작해서 모든 애플 제품 짝퉁을 두고 팔고 있었다. 진입이 어려울 정도. 어찌 애플은 이런 걸 단속을 안 하나? 뉴욕이 가장 신경 쓰는 시장 아니었나?

이곳 차이나 타운은 오래된 초기 정착 건물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안전성이 걱정되는 이런 걸 재개발 하지 않는 걸 보면 뉴욕을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테너먼트라고 불렸던 이 아파트는 건국초기 중국인, 이태리 이민자들이 궁핍했던 삶을 상징하는데, 그걸 기억하기 위해 남겨두는가? 그럼 최소 사람은 살게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딱 봐도 위험한데.

1911년 대형 화재로 인한 참극 (https://namu.wiki/w/트라이앵글%20의류공장%20화재사고)이후 저렇게 외부에 사다리나 철제 계단을 추가 설치해서 화재비상구로 쓰고 있다고 해서 옛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정통을 가진 딤섬집이라는 Nom Wah Tea Parlor는 음식을 너무 성의없이 만들었다. 그나마 소룡포는 좀 나은 편. 게다가 화장실 세면대는 온수와 냉수 수도꼭지가 따로 있었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믹스해야한다. 역시 중국음식은 빅토리아, 밴쿠버 만한 곳이 없는걸까?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면 좀 나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