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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 – 2월 4일

모마에 도착한 것이 12시 20분 정도. 그리고 5시 반 폐관할 때까지 있게 된다. 5시간 넘게 여기 있었는데, 그래서 여행지에서 미술관 감상은 종종 하루를 통째로 소모하는 걸 각오해야 한다. 사실 이것도 무척 벼락치기로 본 것이라 뭘 봤는지 기억이 전혀 안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유가 된다면 며칠에 걸쳐서 하루에 1층씩 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되겠어.

입구에 가니 금속탐지기를 지나고 가방 검사를 한다. 1층에 가방 맡길 곳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들고 다니기로. 

5층까지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오는 순서로 보려한다. 5층이 19세기 말, 20세기 초근대 미술. 4층은 20세기 중반 미술, 3층은 기획전, 2층은  20세기 후반, 21세기 현대미술 순으로 되어 있다. 

웬만한 작품들은 앱을 통해 음성 도슨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모마의 경우 전문 학자가 아닌, 경비원 학생, 작가 본인도 있었다. 

하지만, 에어팟을 안 챙겨왔다는 걸 발견했다. 짐 싸면서 랩탑 충전기를 빼먹기도 하고, 아마존 파이어 스틱의 리모트를 빼먹기도 하고. 이제 정말 늙었구나 싶다. 결국 아내의 에어팟 한 쪽을 빌려 도슨트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했다. 

유명한 명화들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특히 특히 고흐의 별을 헤는 밤, 마티스의 춤, 피카소 그림들은 한참을 바라보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구나.

하지만 복통이 여전히 심해서, 그리고 물을 꾸준히 마셔서 화장실을 계속 찾게 되었다. 층마다 화장실이 있었기 다행이지. 

두 시간 쯤 지나자, 답답한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시각 정보 탓인지 두통도 시작되었다. 잠깐 바람을 쐬고 싶었는데 6층 식당은 정식 식당이었고 2층 카페테리아 역시 버터 냄새가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점점 보수화 되는 위장 때문에 여행을 못 다니게 될 줄이야. 그리고 모든 스낵이 말도 못하게 비쌌다. 그냥 커피 한 잔을 주문했는데.. 이것도 엄청나게 썼다.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뉴욕 커피는 뭐가 이렇게 다 쓰기만 한가. 한국 미술관들은 적어도 커피 하나는 괜찮은데. 

2층 기프트샵을 대충 둘러 본 다음, 다시 미술관람 행군을 시작한다. 그래도 5층, 4층에 유명한 작품들이 있어서 그나마 좋은 컨디션일 때 감상할 수 있었다. 3층 2층은 비교적 현대미술이었는데… 참…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구나.

누구나 다 10분 안에 울게 만든다는 마크로스코조차. 계속 오래 보고 있다보니 햄버거 생각이 났다.치즈 버거, 아보카도 버거. 

2층까지 보고 나니 마침 폐관시간이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시간이 딱 맞았는지. 몸 상태도 안 좋고 피곤함이 말이 아니다. 마침 근처에 한국 슈퍼가 있다고 하니 거기서 식자재를 사 가기로 한다. 이제 한국음식 당분간 못 먹게 될테니 출발날 장터국밥을 먹던 호기는 어디 간 건지.

브로드웨이를 지나 32가에 있는 H-Mart까지 또 걷는다. 뉴욕은 걷는거야… 라고 생각은 했지만, 미술관 관람이 후에 바로 이렇게 걷는 건 제법 힘들구나. 바쁜 뉴욕 밤거리, 빌딩으로 가득찬 밤 거리를 걷고 있자니 서울 생각이 났다. 

마침 브라이언트 파크를 지나간다. 스케이트 장 구경을 하는데 여기저기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소매치기라니. 뉴욕, 그것도 맨해튼 정도면 서울보다 CCTV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무척 예쁘구나.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를 발견하고 아내가 환호성을 지른다. 이렇게 줄이 짧을 수가. 유명하다는 바나나 푸딩을 사러 뛰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바나나 푸딩을 사는 줄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바로 출구도 있었다.

맨해튼의 한국 슈퍼 H-Mart는 생각보다 무척 작았다. 그리고 바코드 입력도 안되어 있어서 가격표 보고 일일히 손으로 찍고 있었다. 이 첨단도시에서 이렇게 장사를 할 줄이야. 물건도 밴쿠버에 비헤 무척 비쌌고 품질도 조악했다. 퀸즈의 플러싱 한인타운에 있는 H-Mart는 좀 다르려나?

그래도  순두부 양념, 순두부, 마파두부 양념, 두부, 깍두기, 라면, 풀무원 짬뽕, 콩나물, 부침개, 햇반 등, 감기 예방 음식들을 잔뜩 사온다. 미싼 돈 주고 여행 와서 아프면 안된다.

뉴욕펜스테이션 -34가에서 2호선을 타고 오다가 14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왔다. 뉴욕지하철은 한 플랫폼에 여러 호선 열차가 들어와서 헷갈렸는데, 알고보니 열차 옆에 몇 호선 차량인지 써있었네. 

원래 순두부를 먹으려 했지만, 콩나물 라면으로 메뉴를 급 바꿨다. 그리고 부침개 반찬과 같이 처절하게 먹었다. 녹을 정도로 흐물흐물한 깍두기였더라도 먹고 있자니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미술관 관람 후 두통이 심해진 나는 술을 못먹고 약 먹고 눕게된다. 그 사이 아내는 바나나 푸딩을 또 흡입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