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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캠핑

‘레벨스톡 (Revelstoke)’까지는 약 6시간 남짓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거리였다. 보통은 5시간 이상 운전은 안 하려고 해서 ‘벤프 (Banff)’나 ‘자스퍼 (Jasper)’와 같은 캐네디언 록키로 캠핑을 갈 때엔, 중간에 ‘샐먼암 (Samon Arm)’이나 ‘캠룹스 (Kamloops)’ 근처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가곤 했는데, ‘레벨스톡’은 ‘샐먼암’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기 때문에, 다음 날 꼴랑 2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하기 위해 추가로 캠핑장을 또 예약하고, 트레일러 펴서 설치하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레벨스톡까지 그냥 직행. 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싼 곳에서 기름을 넣겠다고 중간에 길을 잃었던 사건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2020년 새로 만들었다는 레벨스톡 국립공원의 ‘스노포레스트 캠핑장 (Snow Forest Campground)’은 아담하면서도 깔끔한 세팅이었다. 우연히 만난 국립공원 직원에게 들었는데 원래는 국립공원 직원들 관사가 있었던 자리였다고 한다.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남은 자리에 새로 캠핑장을 만들었는데,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캠핑장이라서 당연하게도, 최신식 공용 샤워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널찍한 건물에 가운데에 커다란 세면대들이 놓여 있고, 앞뒤로 화장실을 배치했으며, 저 안쪽으로 앞에는 여성 샤워부스, 뒤로는 남성 샤워부스들이 있었는데, 일단 사이트 수가 적다 보니 사용인원도 적어서 매우 여유롭고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첫날 도착했을 때만 해도 비가 흩뿌리던 날이었는데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점차 날이 개더니, 씻으러 갈 때쯤 되니 커다란 무지개가 휘영청 하고 떴다. 길을 헤매고 편두통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운전을 하고 온 우리를 왠지 반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6월 말은 BC주가 사상 최악의 이상폭염 (https://www.cbc.ca/news/canada/british-columbia/ubcm-heat-dome-panel-1.6189061)으로 고생을 하던 때였는데, 레벨스톡 캠핑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역 밴쿠버의 캠핑장들처럼 깊숙한 산 중턱 침엽수림 속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캠프 사이트마다 프라이버시를 위한 최소한의 어린나무들로만 둘러싸여 있었는데, 35도를 넘는 한낮의 뙤약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떤 날은 트레일러를 구입하고 나서 처음으로 에어컨을 사용해보기도 했었다. 소형 카라반이라서 평소에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또 이렇게 에어컨을 작은 공간에서 사용하니 금세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고.. 그래도 산속은 산속이라서 그런지, 한낮 더위만 제외하고는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졌다. 마침, 이번 캠핑에는 해먹도 가지고 갔는데, 널찍한 어닝 (Awning 차양) 그늘 아래로 해먹을 설치해서 편하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는 재미도 좋았다.

‘레벨스톡’으로 휴가지를 정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캠핑장과 레벨스톡 산 주변에 다양한 산책로가 많다는 점이었는데, 더위가 밀려드는 한낮에는 가능한 한 캠핑장에서 쉬려고 해서 주변 관광은 주로 아침 일찍 다녔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산책을 하다 보면, “엥? 저긴 어디지? 저기 한번 가볼까?” 하면서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끔은 쏟아지는 불볕더위를 떠안으며 나다니기도 해야 했다.

레벨스톡 산에는 바로 정상 근처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주차장부터 최정상까지 가는 산책로는 30분 정도 100m 이내 높이의 오르막 (https://www.pc.gc.ca/en/pn-np/bc/revelstoke/activ/randonee-hiking#Upper)만 오르면 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것도 힘들면 셔틀버스도 다닌다. 2021년에는 코로나 대응으로 운행이 없었지만). 짧은 등산을 선호하는 나와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선호하는 아내를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절묘한 절충안이라 생각되어서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계획을 해두었고, 바로 둘째 날 그쪽으로 향했는데… 캠핑장은 35도가 넘는 더위였지만, 바로 150m 더 높은 등산로 입구 피크닉 구역에는 눈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도로를 막아두었다.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인지라, 일단 차를 근처에 주차해두고 나서 찻길 따라 한번 걸어 올라가 보기로 했는데, 어느 정도 올라갔더니.. 이건 완전 눈밭이어서 아이젠 없이는 도저히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철수를 해야 했지만, 날은 땡볕이라서 챙모자를 쓰고, 민소매에 어깨를 훤히 드러내놓고 다니는 반면에 신발은 쌓인 눈에 푹푹 빠져서 비틀거리며 걸어 내려와야 했던 진귀한 경험이었다. 입구에서 차량 진입을 막던 국립공원 직원에게 언제쯤 되어야 눈이 녹을지 물어봤더니 7월 말, 8월 초나 되어야 한다고 한다.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여름 성수기에 맞춰서 오는 거로.

이 외에도 캠핑장 근처에는 5km 정도 둘레의 ‘소렌소렌슨 (Soren Sorensen)’ 산책로도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그나마 조금 덜 덥게 하이킹을 즐길 수 있었다. 이 산책로는 환형 (Loop)이었지만, 종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여서 위로는 레벨스톡 산으로 올라가는 찻길과 연결이 되었고, 아래로는 레벨스톡 시내로 진입하는 입구와 연결되었다. 코로나 탓인지, 이때는 산책로 안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굳이 자전거가 아니라 걸어서라도, 마음만 먹으면 캠핑장에서 시내까지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소렌소렌슨’ 산책로를 돌다가, 스키 점프대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서 저기 한번 올라가 볼까 하며 가파른 계단과 같은 오르막으로 100m 정도 올라갔었는데, 여기가 바로 ‘넬스 넬센 (Nels Nelsen)’ 전망대였다. 1916년 이 근방에 캐나다 최초로 상설 스키 점프대를 만들었었는데, 1948년에 이곳으로 옮기고 스키 점프 세계 기록을 두 번 경신했던 이 지역 선수 ‘넬스 넬센 (Nels Nelsen)’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Nels_Nelsen_Hill). 어차피 내려올 산을 힘들게 오르는 일은 여전히 즐겁지 않았지만, 이렇게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점프를 해보는 건 제법 감동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키점프 전망대와 당시 신문 기사로 만들어진 안내판

전망대에서 캠핑장으로 돌아올 때는, 좀 경사가 완만한 곳으로 내려오고 싶어서, 레벨스톡 산으로 가는 찻길까지 연결되는 산책로를 이용해서 빙 둘러왔는데, 도로에는 주변에 아무 사람도 없고, 곰이나 야생동물이 무섭기도 해서 (그리고 갱년기 호르몬 이상 탓도 있고 해서), 큰 소리로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을 고래고래 부르며 내려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벨스톡 산으로 올라가는 차도와 ‘소렌소렌슨’ 산책로가 바로 지척으로 접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어서, 모퉁이를 도는 순간 캠핑장 산책로로 들어가는 입구가 불쑥하고 튀어나와 무척 반가웠지만, 고요하게 산책로를 즐기고 싶던 사람들에게 대형 민폐를 끼쳤음을, 쏟아지는 따가운 눈총으로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 때문에 ‘글래시어 국립공원 (Glacier National Park)’, ‘로저스 패스 (Rogers Pass)’에 있는 박물관 등, 몇몇 볼거리의 운영이 임시중지되었었고, 아직 눈이 안 녹아서 백패킹이나 고산지대 등반도 어려웠고, 한편으로는 매일 거듭되는 폭염 때문에 한낮에는 활동하기가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무척이나 편하게 잘 쉬고 온 캠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었고, 나가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었다. 심지어 레벨스톡 시내도 매우 가까워서, 식당 탐방이나 식자재 구매 역시 매우 편리했다. 또, 아내의 말에 따르자면, 화장실 가는 일 하나가 이렇게 쾌적해지면서, 전반적으로 캠핑 생활의 질이 상승했다고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늙어가면서 좀 더 편하게 씻고 편하게 싸고 싶다는 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차와 트레일러가 점점 커지다가 어느 순간 호텔 여행만 전전하게 되는 것이겠지. 일단 그때까지는, 그래도 캠핑.


레벨스톡 국립공원 – 스노 포레스트 캠핑장 (Revelstoke National Park – Snow Forest Campground https://www.pc.gc.ca/en/pn-np/bc/revelstoke/activ/passez-stay/camping) : ‘레벨스톡 (Revelstoke)’은 ‘캠룹스’와 ‘벤프’ 중간 지점쯤에 위치한 도시로 광역 밴쿠버에서 6시간 남짓 운전해서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레벨스톡 산 구석구석에 만들어진 여러 산책로와 함께, 여름 성수기에 (7월 말 ~8월 중순) 활짝 피어나는 다양한 야생화로 유명하다. 국립공원 자체는 1914년에 설립되었다고 나오지만, 이 국립공원에 프런트 컨트리 (차량 진입용) 캠핑장 – ‘스노 포레스트 캠핑장’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2020년이 되어서다.

300~500 사이트씩 있는 여타 국립공원 캠핑장과는 다르게 이곳은 달랑 66개 사이트 (3군데 MicrOcube 오두막 포함) 밖에 없는데, 재래식 화장실은 아예 없으며 이렇게 널럴한 환경에서 최신식 샤워시설과 수세식 화장실을 공유한다. 캠핑장 입구에서 가까운 A 사이트들은 이른바 ‘풀쓰루 (Pull Through)’ 사이트라서 후진 없이 트레일러 주차를 할 수 있지만, 비교적 다른 사이트들과 가까워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 되는 단점이 있다. C 사이트, D 사이트, E 사이트 들은 텐트 사이트들이라서 전기 공급이 안 된다.

좀 더 들어가 있는 B 사이트들 중 B1, B2, B3는 ‘마이크로큐브 (MicrOcube)’라고 해서 캠핑 사이트가 아닌 작은 오두막집이다. 유리 현관이 달린 나무집으로 더블 사이즈 침대가 포함되어 있다. B4에서 B13, 그리고 B18에서 B21까지는 RV가 후진으로 진입이 가능한 일반 캠핑 사이트인데 전기 공급이 안 된다. B14, B15, B16, B17, 이 네 사이트 만이, RV 진입이 가능하고, 나무로 둘러싸여 프라이버시 보호도 좋고, 전기공급도 잘 되는 사이트 들인데, 약간 경사가 있어서 RV 종류에 따라서 후진이 어려울 수도 있다.

가까운 시내 : 레벨스톡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부분적으로 가능.

프라이버시 : 2/5 ~ 4/5 (사이트마다 크기나 모양이 다양하다)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4/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 4/5

나무 우거짐 : 3/5 ~ 5/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없음

햇볕 : 4/5 ~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