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그래도 캠핑

히든젬

영어 표현에서 ‘Hidden Gem’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숨은 보석’,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숨은 진주’ 같은 뜻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귀중하거나 가치가 높은 것을 뜻하겠지만, 여기에 붙는 ‘Hidden (숨은)’이라는 형용사는 말하는 사람의 소망을 은근히 담아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식 종목 같은 거라면 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기는 경우일 테고, 와인, 관광 명소, 혹은 하루에 일정량만 판매하는 돈까스 집 같은 경우처럼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는 개념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어서 내 몫의 자원이 줄어들면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소수의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모르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캠핑의 경우에는 나름의 진입장벽 같은 것이 있어서, 물리적으로는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캠핑 장비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든지, 척박한 환경에서 노숙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이 먼저 필요하다. 때문에, 여기서 내 경험상 괜찮은 캠핑장이라고 소개를 한다는 것이 꼭 모든 사람에게 괜찮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풍경에 고즈넉한 환경을 아무리 선망한다고 하더래도 재래식 화장실이 주는 시각적 충격만큼은 견디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캠핑 트레일러를 장만하고 나서부터는 한동안 (백패킹이 아닌 프런트 컨트리 캠핑에서는) 텐트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기왕 질러놓은 트레일러를 악착같이 써주자.. 라는 심보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예전에 텐트 캠핑을 다닐 때, 추위 때문에 너무 고생한 적이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일박이나 2박 정도의 짧은 캠핑마다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기는 좀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해서 대신 차박을 다시 하기에도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차박의 경우 따뜻하고, 비 걱정 없고, 조용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캠핑용품 운반이나 보관에 한계가 있고, 결정적으로 자는 것 외엔 별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돌고 돌아 다시 텐트를 챙기게 되었다. 이번에는 백패킹용 침낭과 깔판도 있으니 얼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과 함께.

6월 록키 캠핑을 마치고 나니, 한 2박 정도 시내가 좀 가까운 곳에서 느긋하게 캠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당시 정말 지긋지긋해하면서 다니던 회사에 결국 사표를 내고 좀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는데, 생각 같아서는 민박이나 호텔박을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서 만만한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캠핑을 하되 시내가 가까워서 시내 관광이나 부식재료 수급이 편한 곳으로 가려고 했고 그렇다면 스쿼미시나 선샤인 코스트가 적당했는데, 스쿼미시의 ‘앨리스 호수 주립공원’의 경우 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터여서 선택하기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선샤인 코스트의 ‘폴퍼스 베이 주립공원’은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해서 (실제 운전 거리는 짧다고 하더라도) 도착하는 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캠핑 트레일러의 페리 탑승 비용 역시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한적한 바다도 좀 보고 싶기도 해서, 아무런 예약 없이, 캠핑 트레일러도 없이, 선샤인 코스트로 향했다.

‘폴퍼스 베이 주립공원 (Porpois Bay Provincial Park)’은 예전부터 종종 가던 곳이고 이전 글에서도 소개한 적(https://brunch.co.kr/@vanheading/39)이 있었는데, 근사한 해변을 끼고 있는 가족 중심의 캠핑장을 가지고 있지만, 캠퍼들만이 쓸 수 있는 전용 해변이 없다든지 개별 사이트 내에서는 캠프 파이어가 금지되어 있는 단점 때문인지 비교적 예약이 늦게 차는 곳이었다. 그리고 예약이 필요 없는 선착순 사이트도 여러 개 있어서, 솔직히 너무 방심을 했었다. 그래도 7월… 가장 캠핑 성수기 주말이었는데, 어쩌자고 캠핑장 예약 없이 페리를 탄 건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페리 터미널에서 탑승 대기를 하면서부터 좀 걱정이 들기는 했다. 대기열에 생각보다 RV들이 많이 서 있었다. 객실로 올라가자마자 출항 전에 어떻게든 사이트 예약을 해보려 했지만, 비씨 주립공원 프런트 컨트리 캠핑장 예약은 도착 당일에는 할 수 없었다. “에이~ 설마… 아니, 뭐 그럼 선착순 사이트라도 있겠지..” 하면서 억지로 자문자답을 반복하기만 했는데 나 혼자 발을 동동거려도 페리가 더 빨리 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폴퍼스 베이 주립공원’에 도착했을 때가 12시 반이었는데, 아침에 회사에 들러 회사 트럭과 회사 장비를 반납했던 것도 있지만 그래도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가 9시였으니, 그때부터 3시간 반이나 걸려서 캠핑장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이트가 죄다 찬 걸 발견했다.

아니.. 사실, 워크인 / 자전거 캠핑 사이트에는 자리가 2개 정도 있었지만, 당일 피크닉 장소와 붙어 있어서 그곳은 음주를 할 수 없었다 (사실 텐트까지 쳤다가 다시 접었다). 그 근처 다른 민영 캠핑장이라도 알아보려 했는데 모두 만원. 맞다… 그래도 7월 주말인데… 도대체 뭔 배짱으로 예약도 하지 않고 배를 탄 거냐… 이렇게 되자, 오늘 저녁에 그냥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갈지, 아니면 근방 모텔이나 다른 숙소를 알아볼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깁슨에서 시셸트 시내 쪽으로 ‘선샤인 코스트 고속국도 (Sunshine Coast HWY, 101번 국도)를 타고 운전을 하다가 항상 눈에 띄던 주립공원 표지판을 기억해 냈다. 이름하여 ‘로버츠 크릭 주립공원 (Roberts Creek Provincial Park)’. 어렴풋하지만, 그 표지판에 캠핑장도 있다는 표시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주립공원 캠핑 예약 사이트에선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비록 당일 예약이 안 되더라도 다음 날 예약 상황을 보고 유추를 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주립공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이곳 캠핑장은 예약 없이 100% 선착순으로만 운영된다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또 갑론을박이 시작되었다.

부부싸움이라는 게, 정말 사소한 의견 대립에서 시작해서 무의미한 감정 충돌로 발전되는 상황이 많아서, 시간이 흐르면 도대체 왜 싸웠는지, 내가 무슨 주장을 했고 상대가 무슨 주장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러고 나면 왜 싸웠는지도 모르고 그때 생각만 하면 그냥 이유 없이 기분만 나빠질 때가 있다. 암튼 이때를 기억해보면, 둘 중 하나는 일단 ‘로버츠 크릭 공원’에 한번 가보자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7월 여름 주말이니 선착순 캠핑장은 무조건 다 찼을 것이다. 시간이랑 휘발유 아까우니 괜히 낭비하지 말고 여기서 놀 만큼 놀다 가자”는 식으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뒤돌아보면, 이렇게 기억도 안 나는 걸 가지고 대립을 한 것인데, 또 그렇게 덧없다며 안 싸우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의 일인 것 같다.

결국은 일단 가보기로 했는데… 오… 자리가 있네… 그것도 이 시간대엔 아직 많았다. 그리고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제법 캠핑장 세팅이 괜찮았다. 사이트 간의 간격도 널찍해서 프라이버시도 괜찮았고… 얼른 자리를 잡고 텐트를 대충 쳐 놓았다. 선착순 캠핑장의 경우 입장 시 관리인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만일 사이트를 잠시 떠나야 할 일이 있다면 일단, 이 사이트가 점거되었다는 시각적 상징을 남겨 놓아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어디든 비슷해서, 마치 도서관 책상에 책을 펴 놓거나 가방을 둬서 자리를 찜해두었다는 걸 표현하는 것처럼, 캠핑 사이트에도 텐트를 미리 쳐두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곳에 오면 참새 방앗간처럼 항상 들르는 K 베트남 식당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바로 몇 블럭 건너에 있는 폴퍼스 베이 주립공원에 다시 들러 보았지만, 여전히 남는 자리는 없어 보였다. 뭐.. 그럼, 그냥 오늘은 로버츠 크릭에서 묵는 거로 결정을 하고, 근처 쇼핑몰에 가서 술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돌아갔다. 텐트를 단단히 고정하고 그 안에 침구도 옮기고.. 그러고 나서 캠핑장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는데, 이름과는 다르게 시냇가 (Creek)나 개울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구글맵이나 다른 리뷰에서 말하는 바닷가도 없었다. 뭐.. 그 리뷰들이 언제나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도상 위치만 보더라도 왠지 바다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공원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캠핑장 밖으로 나가서 주택가를 따라 한참 걸어야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고 한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천천히 걸어 내려갔는데… 마침 노을이 질 때라서 그런가…

정말 깜짝 놀라버렸다

빼곡히 자갈로 채워진 해변도 해변이지만,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면서 푸른색에서 황금색으로, 다시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시시각각 형형색색 변화하는 하늘과 바다 색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했다.  정신없이 벌어지는 색의 향연에 만취해서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그곳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돌아와 나머지 술을  마저 마셨다.

다음 날인 토요일은 시셸트 시내에서 주말 장터가 열리는 날이었다. 다른 도서 지역 여름 주말 장터와 마찬가지로, 그 지역 농민들이 손수 재배한 농산물이나, 빵, 잼과 같은 2차 가공품들이 잔뜩 나오고, 지역 특산품은 아니지만, 광역 밴쿠버 – 프레이저 밸리 지역의 대형 농장에서 과일을 대량으로 구매를 한 다음, 동네 주말 장터마다 돌아다니면서 판매를 하는 상인들도 있다. 섬에 사는 예술가들이 만드는 공예품이나 그림들도 종종 볼 수 있는 것이 도서 지역 주말 장터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동안 비싸서 엄두를 못 내던 BC 어촌의 여름철 대표적 특산물 ‘얼룩 새우 (Spot Prown)’을 퇴직 기념으로 집어 들고 나서 조금 더 구경을 하다 보니까, 이 지역에 사는 일본계 이민자 가족이 만드는 빵집을 발견했다. 그동안 일본 만화를 볼 때마다 궁금해했던 멜론 빵이니 카레 빵 같은 것들을 놓고 팔고 있었는데,  상상 속의 그 맛은 전혀 아니었고,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랬는지… 실망도 컸던 기억이 난다. 뭐 사실.. 일본 동경 여행을 가서 사 먹은 것도 아니고, 밴쿠버 근교 시골에서 사 먹은 일본 빵에 실망하는 건 좀 불공정하겠지.

시내 구경을 마치고 난 후, 캠핑장 옆에 있는 산책로에서 짧은 하이킹을 했다. ‘클리프 길커 (Cliff Gilker https://www.scrd.ca/Cliff-Gilker)’ 공원은 작지만, 빽빽한 침엽수림과 아담한 개울과 폭포가 있는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가지고 있어서, 한두 시간 정도 재밌는 산책이 가능했으면서도, 동시에 조금 후부터 다시 시작될 과식과 과음의 죄책감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주기 충분했다. 캠핑장으로 돌아와서는, 아니나 다를까 오늘 몫의 운동은 다 끝냈다는 듯이, 다시 술을 마시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또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저녁놀이 시작할 무렵에 맞춰 다시 해변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또다시 한참을 넋을 내놓고 바라보다가 어둠이 깔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다리에 자기 몸을 슬쩍슬쩍 스치면서 따라왔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캠핑장을 나서서 깁슨으로 향했다. 숲속 캠핑장처럼 조용한 휴가도 좋지만, 북적이는 관광도시에서 보내는 휴가도 또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들러 보던 공원과 해변, 그리고 예쁘장한 각종 관광 상품 가게들을 하나씩 둘러보다가, 아침 11시, 음주 해금 시간이 되자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번번이 포기했던 멕시코 식당에 줄을 서서 들어갔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소비세를 따로 명기하는 나라, 다시 말해 상품 가격표에 세금이 포함 안 되어 있어 나중에 영수증을 보면 깜짝 놀라게 만드는 나라에 처음 오게 되면, 이 소비세 때문에 헷갈릴 때가 많은데, 보통 음식 재료에는 세금이 안 붙고, 가공품에는 연방정부 소비세 (GST, Goods and Service Tax)가 붙고, 공산품에는 추가로 주정부 소비세 (PST, Provincial Sales Tax)가 붙는 식이다. 예를 들어 개별 포장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같은 것에는 소비세가 붙고 파인트 통에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은 재료로 보기 때문에 소비세가 안 붙는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서비스라고 보기 때문에 그 음식을 나중에 계산할 때 따로 연방정부 소비세 (캐나다의 경우 2021년 현재 5%)를 내야 하지만, 주정부 소비세는 붙지 않는다.

식당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얘기가 좀 더 복잡해지는데 BC 주의 경우 알코올성 음료에는 10%의 주정부 주류세 (일반 공산품 소비세의 경우 BC PST는 2021년 현재 7%)가 따로 붙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는 살이 떨려서 식당에 가더라도 술을 주문하는 건 자제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퇴직 여행 때는 왠지 바다를 보면서 칵테일을 한잔하고 싶었다. “내가 이제껏 그렇게 거지 같은 회사에서 개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도 못 마셔?”와 같은 보상심리였던 것 같다. 근데 막상 벌컥 마시고 나니.. 꽤 근사했다. 새파란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멕시코 음식과 데낄라 베이스 칵테일 먹고 있자니, 이건 뭐 굳이 돈 내고 멕시코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아무튼, 아직도 가끔 하고 있는, 캐나다 식당에서 겁 없이 술을 주문해서 마시는 허랑방탕한 생활은 이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로버츠 크릭 주립공원 (Roberts Creek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roberts_crk/) : 선샤인 코스트 랭데일 페리 터미널에서 시셸트를 향해 20분 정도 운전하면 선샤인 코스트 고속국도 왼편에 입구가 있는데, 워낙 꼬불꼬불한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고 입구도 표지판도 작은 편이라 초행길에는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 광역 밴쿠버의 전형적인 주립공원 캠핑장처럼, 높게 솟은 침엽수들이 빽빽이 늘어선 가운데에 20개 남짓한 사이트들이 거리를 두고 있지만, 비교적 햇볕도 잘 들고 (지대가 낮아서) 밤 기온도 높은 편이다.

캠핑장에서 나와 주택가 골목길 (Park Avenue)를 따라 남쪽으로 1.5km 정도 걷다 보면 자갈밭으로 구성된 예쁘장한 해변이 나온다.

가까운 시내 : 시셸트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전화 가능

프라이버시 : 4/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2/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3/5

나무 우거짐 : 4/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캠핑장에서 나와 1.5km 걸어야 함

햇볕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