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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하기

7시 좀 넘어서 일어나 보니 밖에서 비가 온다. 뱅쿠버의 겨울 답다. 보통 뱅쿠버의 겨울은 이렇게 부슬부슬 하염없이 비가 오는 우기인데 올 겨울은 이상기온으로 햇볕에 짱짱했다고 한다. 아내가 일어날 때까지 이것 저것 하다가.. 거실로 내려가 신문들을 읽는다. 내가 없는 사이에 별별 일이 있었더군. 노무현 취임식 때 북에서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고.. 에어인디아 항공기가 테러를 당했다. 요리비평가의 신문기사에 분개하여 프랑스 식당 주방장이 자살을 했고.. 캐나다는 부시에게 이라크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권유했다가 거절 당했다. 하지만.. 집 렌트에 대한 정보는 없다. 아내가 내려오자 소시지를 굽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간만에 정찬을 차려 먹지만, 독일 샐러드에 바바리안 소시지는 정말이지 너무 짰다.

관리인 게이꼬에게 숙박비 계산을 하고 몇군데 렌트 정보를 읽어보다가 일단 써리로 가서 알아보자고 하고 숙소를 나선다.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일단 써리 센트럴 역으로.. 이곳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아니 이곳 뿐 아니라 영국을 제외한 서구권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는 듯 싶다.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귀찮아서가 아닐까? 들고 다니기도, 챙기기도 귀찮은 것이 우산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난 정말 우산에 찔리는 걸 싫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산성비 같은 것도 없다. 부슬비는 맞아도 정말 괜찮은 것이다.

스카이 트레인은 특이한 교통수단이다. 일단 역간의 거리가 무척 짧다. 1분 안에 다음 역에 도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열차의 차량 수가 매우 적다. 많은 것은 4량짜리, 적은 것은 2량 짜리 열차들이 30초에 한 대 꼴로 다닌다. 물론 기관차가 객차보다 훨씬 비쌀텐데 이런 시스템은 경제적으로 봤을 떄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 하지만.. 그런 거에 신경쓰는 사람은 지하철 구입에도 최저가 낙찰을 기준으로 하는 나라 한국에서 온 나 밖에 없는 듯하다. 그리고 한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 다른 나라 전철은 승강장은 곡선으로 되어있고 운행노선은 직선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노선을 잡아도 최대한 직선으로 만든다. 그게 경제적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스카이 트레인은 노선은 마치 청룡열차처럼 꼬불꼬불해도 승강장은 직선으로 되어있다. 물론 지하철과 지상 모노레일의 차이점이겠지.. 아무래도 지상에 고가철로를 만들어 다니려면 기존의 건물을 피해 다녀야 했을테고.. 그러다 보니 꼬불꼬불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속도보다 탑승승객의 안전을 우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란 말인가!!

오늘처럼 흐린날은 하늘과 건물 색이 구별이 가지 않는다. 뱅쿠버의 건물이나 시설물들은 회색이 많다. 심지어 브랜트우드 역처럼 마치 스타워즈의 베스핀처럼 멋지게 지어놓은 역사도 칠을 해놓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이곳은 이런 시설물들을 시멘트색 그대로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아무리 뻑쩍지근하게 지어 놓아도 인공조형물은 조형물일 따름이라는 것인가? 뭐.. 좋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는 거겠지만.. 아내의 말대로 귀찮아서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회색의 시설물들이 왠지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인 듯 싶다. 지하철 예술의 다양성 만큼은 한국에서 좀 배워야 할 듯…

써리 센트럴역에 갔더니 버스로 갈아타는 방향의 출구가 보인다. 재작년에 왔을 때는 버스 파업이라서 이런 transfer에는 한번도 신경을 쓴 적이 없다. 물론 버스 타는 법도 모른다. 정류장에 서서 노선도를 대충 보니 길포드몰로 가는 버스가 두 개 있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 버스 노선 안내는 매우 불성실했고.. 우린 길포드 몰이 종점인 버스만을 고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류장 방송 같은 것도 없다. 원래는 있지만 기사 임의대로 안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승객이 자리에 앉지 않아도 버스는 출발을 한다. 주행중에는 절대 착석하라고 온 사방에 써있는 호주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아내는 조바심을 내고.. 난 그럴 때마다 (왠 반항인지) 만사가 귀찮아진다. 드디어 저 앞자리에서 자고 있는 승객 한명 빼고 죄다 내리는 정류장 도착.. 앞에 나가 기사에게 물어보니 길포드몰이 맞다고 한다.

지난번 여행왔을 때와 내 영어가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문법 같은 거는 생각안한다는 것이다. 그냥 튀어나오는 단어 순으로 말한다. 당연히 fluently해진다. 경우에 따라서 상대가 못알아듣을 때가 있다.(이것도 대부분 문법 탓이 아니라 발음 탓이다) 그제서야 또박또박 말하는 것처럼 하면서 머릿속으로 문법에 맞게 문장을 조합한다. 또, 그 전에는 상대의 말을 못알아들었을 때는 이걸 되물어봐야 할지.. 그냥 아는 체를 해야할지 망설인 적이 있다. 이제는 내 나름대로 추측해서 되묻는다. 예를 들어 “Sorry.. You mean. When the valid date is?” 하는 식이다. 자존심도 상하지 않고.. 좋은 방법인 듯 싶다. 그러다 보니 상대에게 말을 거는 기회도 많아진다. 아직도 아내에게 많이 의존하는 중이지만.. 간단한 회화는 내가 먼저 나서서 하려고 노력한다. 거취가 정해진 후, 이곳의 이민자를 위한 영어회화반에 다니면서 좀 더 유창하게 만들어야 겠다. 듣기는…… 상대가 신경만 써준다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단지.. 그 놈의 중 1때 쪽 팔리다고 혀를 굴리기를 게을리한 과오에 따른 발음문제가 고민이다.

길포드 몰에서 104 Ave와 152 St.의 대각선 방향에 쉐라톤 호텔이 있는데 그 옆에 앞으로 일하게 될 한남슈퍼 건물이 있다. 큰 건물의 반은 한국인 상점인 한남슈퍼가 성업중이고 다른 반쪽은 지금 코리안 몰을 만든다고 내장공사 중이다. 여기에 들어설 비디오 가게에서 일단 생계를 꾸려갈 생각이다. 마음이 좀 뭉클해진다.

한편 한남슈퍼에 가보니.. 아이고…… 정말 한국 식품이 없는 게 없다. 미역, 굵은 소금부터 뼈로 가는 칼슘두유, 붕어 싸만코 까지.. 어찌 이런 일이.. 이렇게 저렇게 따지고 보니.. 우리가 직접 운반한 노동력을 제외하더라도 운송비 10만원 가까이 손해를 봤을 걸로 생각이 된다. 그러길래 인터넷 싸이트에서 이거 사와라, 저거 사와라 수다를 늘어놓는 아줌마들 이야기를 100% 믿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에 사는 한국인이 5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인터넷에 글 올리는 사람들은 10명 남짓하다.. 어찌.. 그런 확률에 기댈 수 있단 말인가.. 많이 가슴 아파 하다가.. 오랜지주스 하나 사가지고 나온다(반면.. 적어도 써리 한남슈퍼의 ‘구운 김’은 한국보다 한 5배정도 비싸다.. 이민가방에 꽉꽉 채워오면 무게도 안나가고 좋을 것 같다. 김은 역시 삼부자 재래김).

한남슈퍼에서 뱅쿠버 벼룩시장과 교차로를 들고 나와 식사를 하면서 적당한 렌트를 알아본다. 식사는.. 역시 탕수육/볶음밥 콤보.. 어제 먹었던 같은 브랜드 인 것 같은데.. 나름대로 맛이있다. 그러고 보니.. 뉴욕프라이나 몇몇 곳을 제외한 식당은 프렌차이즈인지도 모르고 먹는 것 같다 .프렌차이즈라고 해도 맛이 각 식당 간에 너무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어제 먹은 식당에서는 탕수육 소스를 나중에 뿌려주었는데.. 탕수육 튀김이 바삭바삭한 장점이 있는 반면 밥에 섞여 버렸다. 여긴 미리 탕수육에 소스를 섞어 버무려 둔 것을 얹어준다. 소스의 맛조차 다르다. 케첩의 맛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이쯤 되면 사실 같은 이름은 둔 다른 집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도대체 그럼 프펜차이즈 본사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집을 좀 알아보니 생각 외로 딸기가 많이 문제가 되었다. 이곳 사람들도 이중적인 것이,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아파트에 같이 사는 것은 끔찍하게 여긴다. 게다가 사실 동물이 걸어들어 갈 수 있는 실내공간도 없다고 보면 된다. 반드시 케이지에 넣어 가야 한다. 난 동물들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면서 애완동물 의료보험을 안해주는 걸 보고 이미 알아봤다. 이곳에서도 동물은 동물일 뿐.. 사람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어쨌건.. 열군데 넘게 전화를 해보았으나 모두 거절.. 아내는 이내 침울해진다. 그러더니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한다. Pludy’s인가? 지난번 여행 때에도 와서 먹었던 눈물의 아이스크림이 길포드 몰에도 있었다. 2천원짜리 뙈지바라고 생각하면 될 텐데.. 그 크런치들이 모두 생견과류를 막 분쇄해서 만든 것이다. 음..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당분간 공부할 학교를 찾아 나섰다. Canadian Tourism College라는 곳으로, 아내는 일단 관광산업 쪽의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취업공부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어렵게 어렵게 찾아 결국 도착하고.. (가는 길에 여러 가지 몰과 극장이 이근처에 있다는 걸 알았다. 정말 여기에 렌트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 학교에서는 우리를 정말 반겨 맞아주었다. 양식을 기입한 후 인터뷰를 하는 동안 너무도 설명이 유쾌하고 ㅈㅐ미있어서 나도 같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가장 큰 이유는 상담관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렇게 귀가 트이는 걸까? 단어와 표현 공부를 해야할 떄가 도래한 것인가?). 아내 역시 뭔가를 새로 배울 수 있다는 긴장 + 흥분감이 얼굴 전체를 감싸고..

이래 저래 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훌쩍 지나갔다. 상담관에게 우리가 현재 렌트를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슬쩍 내비치었더니 당장 몇몇가지 신문을 추천한다. 오호!..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그만 작별을 하고 길포드 몰로 돌아와 상담관이 추천한 신문과 밤에 마실 콜라를 찾는다. 아니 그 전에 일단 저녁 식사를 한다. (이곳에서는 대중교통이 1존, 2존, 3존으로 나뉘어있고.. 각 요금이 2불, 3불, 4불로 되어있다. 숙소에서 길포드몰 까지는 3존.. 왕복하면 벌써 8불이 든다. 처음에는 차라리 8불짜리 데이패스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나 저녁 6시 30분이 지나면 모든 요금이 2불로 통일되는 것이 아닌가!! 아내와 내 차비에서 4불 아껴 그걸로 푸빔한 저녁식사를 먹기로 했다. 모처럼 데리야키와 일식튀김을 먹어보았지만.. 전반적으로 콤보 구성이 중국집과 같다 .맛도 비슷하다. 아.. 이젠 짱꺠 더 이상 못먹겠다. ) 런던드럭에서는 2리터 짜리 콜라를 1.39$에 팔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500cc 짜리를 1.59$에 판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형 몰 떄문에 소규모 그로써리들은 망하기 직전에 있는 것 같다.

길포드 몰 한귀퉁이의 그로써리에서 버스를 탈 잔돈을 바꿀 겸, 신문을 사려고 하니 한국 여성이 경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집광고를 보려고 신문을 사는 것을 알자 좀 더 싸고 서민적인 신문을 추천햐준다. 뭐..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스카이 트레인으로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집으로 오면서 새로 산 (추천받은) 신문들을 보니 또 애완동물이 허락되는 집들도 많다. 아내와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