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February 25, 2003

드디어 출항!! – 1일차

아침에 왠일인지 일찍 일어났다. 갖다붙히자면야 뭐.. 별별 수식어를 갖다붙혀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어쩄건 어제 용덕이와 밤늦게까지 수다를 떤 것에 비해 아침 7시에 일어났다면 정말이지 고무적인 일이다. 일어나서 짐정리, 체크 등을 하고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준비를하는 걸 좀 보고, 인터넷 메일을 좀 보고 등등 하다가 다시 드러눕는다. 아.. 전날 상계동에서 그랬듯이 봉천동에서도 처가식구들과 동서네와 함께 사진을 한방 박고… 포토샵으로 보정을 하고… 다시 드러누웠다.

어제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떠난다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이제부터는 일년에 한번씩만 봐도 20번 밖에 보지 못할거 아니냐..”라고 하셨다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잠시 놀러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친지들과도 거창한 작별인사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두번 다시 못보게 될지 모르지만… 그건 어짜피 “다녀오겠습니다”하면서 백화점에 가거나 지하철을 잡아타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다. 會者定離… 결국 만남과 헤어짐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 속에서 질기게 이어나갈 것은 인연인 것이다.

오후1시 30분.. 점심식사를 하고 슬슬 갈 준비를 한다. 학교에 가든 이민을 가든.. 사람이 많으면 준비는 더 어려워진다. 웅성웅성과 우왕좌왕을 반복한 후 차에 올랐다. 올림픽대로는 마치나 우리의 발길을 재촉하듯이 뻥뻥 뚫려준다.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내겐 해야할 일- 임무가 있고.. 그걸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 이민준비를 하면서 계속 당겨왔던 긴장의 끈이 아직 풀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손실이 적고 최대한의 이득을 얻는 일처리를 할 수 있을지만을 고민하게 된다. 장인어른은 모처럼 SM5를 몰게 되어서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띤다. 장모님도 아직 뭔가가 바뀌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시는 듯하다. 처제만은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는지 종종 신경질을 내고..

공항도착.. 어머니는 이미 30분 전 쯤에 도착해서 인천공항 3층(출국)의 K코너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앗.. 이미 처외할머님과 만나서 인사를 나누셨다. 엊그제 프린트한 사진에서 이미 얼굴을 익히신듯하다. 근데 왠 K코너란 말인가? KAL은 D,E,F에 있는데.. JAL이 J에 있다고 해서 KAL이 K에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버진 에어카나다를 타는 줄 알고 K에 있었다고는 하는데… 일단은 딸기 검역증명서를 받고(간단한 수속에 수수료 만원..) 짐을 부치고.. 딸기도 수화물 비용(18만원)을 내고.. 돌아온다.

분위기 묘하다. 처가쪽 식구들은 와글와글 깔깔깔 정신없고.. 그쪽을 등진 채 앉아있는 본가쪽 식구들은 성적표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표정이다. 아직 이별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는 견디기 힘드신지 빨리 출국장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고.. 아버지는 계속 침을 삼키고 계신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오백원짜리가 나온다. 어머닐 드렸더니 화투 밑천으로 삼겠다고 해서 같이 웃는다. 하지만.. 한동안 서로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면서 웃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웃음은 금새 멈춘다. 분위기가 다시 묘해지는 걸 알았는지 아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한다. 데어리퀸 아이스바를 잔뜩 사와서 사람들에게 하나씩 안긴다. 많은 사람들이 블루베리를 버리고 쵸코를 원하고 있다. 의외로 먹는 것에 대해선 언제든지 엄격해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털고 일어섰다. 다시 웅성웅성 우왕좌왕, 처외할머님은 이미 두자식을 이민 보낸 경험이 있고 한 자식은 지방에 살고 있기 떄문에 역시나 가장 대범한 표정을 보여주신다. 본가 어머니 아버지는 야단맞아서 입이 삐죽 나온 아이 표정으로 출국장 까지 따라나오고 누나는 혼신을 다해 웃겨 볼려고 썰렁한 개그를 연발한다. 내 머릿 속에서는 한 떄 즐겨부르던 쟁가의 멘트 구절이 계속 맴돈다. “ 우리에겐 슬퍼할 가슴이 없습니다. 그저 싸워 이겨야할 뜨거운 전선 만이 깔려 있으니……”

출국장 앞에서 장모님이 참아오던 눈물을 터뜨리셨다. 아내와 한참을 울고, 주위를 둘러보니 처제와 본가 어머니 역시 눈물을 삼키고 있다. 내 머릿 속에서는 계속 ‘열사의 그 뜻대로’의 한 구절과 ‘빠르고 손실없는 일처리’만을 반복하면서 슬픔을 외면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손을 굳게 한번씨 잡고 .. 아내와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왔다. 눈 앞에는 지겨운 수화물 검색이 기다리고 있었고.. 아내 역시 그걸 보자 긴장해서인지 모든 슬픔을 잊은 듯했다. 다행히 알카라인 밧데리 4개만을 뻇기고 나서 일을 마쳤다. 곧이어 출국장의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선물할 담배와 몇가지들을 쇼핑하려고 나선다. 사실 ..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얇디 얇을 수 있는 것이어서 얼마든지 잊고 지낼 수 있다. 전쟁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없어질 수도 있기 떄문이다.

딸기까지 들고 뛰며 결국 비행기 좌석에 앉게 된다. ..대한항공.. 값은 비싸지만 생각보다 시설이나 서비스가 형편없다. 역시 홍콩발 뱅쿠버행 케세이 퍼시픽이 모든 면에서 가장 좋았던 듯 싶다. 아내는 비행기에 올라타자 마자 계속 울기 시작한다. 저러다 엉엉 울면 사람들이 내가 떄린 것이 아닐지 의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진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멀뚱 바라보다가 옆좌석의 대구 유니버시아드 조직위 사람들의 꼴불견을 보고 혀를 잠시 찬 후에 눈을 감는다.

왠지 계속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시간이 된 듯도 한다. 비빔밥과 불고기 스파게티 비스무리 한 걸 주문한다. (난 나시고랭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라고 한다) Sea發.. 역시 기내식을 똥이다 똥.. 정말이지 배고픈 맘에 먹어주는 거지만.. 비빔밥에 딸려 나오는 햇반이 맛있을 정도니 얼마나 똥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그릇을 비운다. 아직 긴장이 안풀린 듯 하다. 일단 먹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에 넣고 삼킨다. 예전에 경찰서에서 조사 받으면 똥국과 고추가루 뿌린 단무지가 딸랑 나왔는데.. 그 떄도 난 잘 먹었다. 어머닌 항상 사람이 긴장하고 살아야 병이 안생긴다고 했는데.. 난 그 말이 잘 맞는 것도 같다. 단지 어느 순간 긴장이 풀어지면 무너질지도 모르지..

딸기는 놀라울 만한 적응력을 보인다. 나도 미식거리는 이륙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비행시 계속 들리는 엔진음을 무시한 채 잘 잔다. 이런 개를 키운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도 마찬가지.. 잘 자는 아이가 있고 못자는 아이가 있고… 우리 아이는 어떘을까? 날 닮았으면 잘 못자고 설사하고 그랬을테고 아내를 닮았으면 겁이 많았겠지.. 입양을 생각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일단은 내가 부모로서 자격 양성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새 항상 찾아오는 식곤증 떄문인지 눈을 잠시 붙히다가 다시 일어나서 성룡의 턱시도 더빙판을 보고 승무원에게 위스키 언더락을 주문해 마신 후 다시 눈을 붙힌다.

무사하게 비행을 마치고… (새벽에 일출장면을 아내가 꺠워서 봤는데.. 너무도 환상이었다. .. 하지만 너무도 게으른 관계로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성층권에서 보는 일출 장면이었는데!!!) 캐나다 영주권자로서 첫발을 뱅쿠버 공항에 남긴다. 사람들 모두 내릴 떄까지 짐을 챙긴 후에 딸기를 플라스틱 케이지에서 스폰지 케이지로 옮긴 후 천천히 움직인다. 역시나 뱅쿠버에 처음 영역 표시를 한 것은 딸기.. 그리고 나서 입국 심사대 옆에 5개국어로(그중 한구어도 포함되어 있다) “처음 이민 오신분”이라고 쓰여있는 피켓을 든 아저씨를 찾았다. CANN이라는 캐나다 이민자 서비스라는 기관에서 나온 아저씨.. 곧이어 다른 이민자들(남아공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과 함께 이민 심사를 받으러 줄서서 따라간다.

모든 것을 떠나서 이 곳은 언어에 대한 차별을 가장 극심하게 느낄 수 있는 사회다. 많은 이들이 인종차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언어차별이다. 물론 이민국 직원들을 천처히 또박또박 얘길 해주려고 노력하고 쉬운 단어을 구사하면 말하는데 프로이지만.. 못알아듣는 사람은 못알아듣기 마련이다.. 그럼 그들은 한숨 비슷한 ‘쳇’을 뇌까리며 ‘넌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여길 왔냐’는 듯한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이게 그들(현지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피곤하기 떄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문제는 언어를 못하는 사람에게 피곤함을 느끼도록 하는 시스템에 있고.. 그걸 방조한 선배 이민자들에게 있다. 예를 들어(오늘 목격한 일인데) 한 중국인 아주머니가 세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도중 조사관이 자리를 비우자 슬그머니 나가려고 하다가 조사관에게 들켰다. 조사관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그 인간들은 업무스트레스인지 누구에게나 짜증스럽게 말한다) Ma’am.. Where are you going? Come here.. come here!! Come here !! 하면 계속 윽박지른다. 중국인 아주머니는 겸연쩍은 얼굴로 두 손을 들어보이며 ‘손 좀 씻고 오겠다’는 뜻을 말하고 싶지만 단어가 생각이 안난다. 조사관은 계속 come here를 반복하고(도대체 모든 나라의 완장들은 이렇게 재수가 없는 것은 왜일까?) 중국인 아줌마가 난처할 무렵에.. 저쪽에서는 중국인 청년이 와서 what’s up? 하고 물어보고, 이쪽에서는 중국인 스탭 아줌마가 나서서 도와준다. 조사관과 서로 몇가지 예길 하더니.. 조사관에게 아주 조용하게 (마치 여성에게 민감한 문제였던 것처럼- 그래서 그 아줌마가 대답을 잘 못했던 것처럼)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나서 아줌마에게 빨리 갔다오라는 사인을 보낸다. …… 이런 것이다. 사실 중국인들은 이곳에 이민을 오면 영어를 못해도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있다. 그것은 주위 동포들이 언제든지 기꺼이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과, 이미 각종 공공기관 스탭에 동포들이 포진되어 있다는 현실이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고, 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나 현지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중국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인 이민자로서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가 눈 앞에 보였다.

Landing Paper를 보여주니 수염난 이민 심사관 할아버지가 사진을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사진 크기가 안 맞으니 다시 찍으라고 빠꾸를 시킨다(난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으나 곧 그 할아버지는 사진 크기만 체크하는 사람으로 밝혀진다). 옆 사무실에서 디카로 사진을 찍고, 수정된 서류를 들고 심사대에 제출하니..(정말이지 캐나다에 이민오는 사람들이 많다. 온갖 나라 온갖 부족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이민법이 바뀌면서 소급적용 문제 때문에 무리하게 이민자들을 받아들였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곧이어 웰컴 투 캐나다라고 하면서 세관에서 체크를 받으라고 한다.

세관심사에 가서 줄을 또 서니 여지없이 또 다시 대기상태다. 아.. 미리 픽업을 나오기로한 차선배는 이미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을텐데..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계속 대기를 해야하니 전화를 걸러 빠져나갈 수도 없다. 우릴 대기시킨 세관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우릴 넘기자 예의 그 직원은 아주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다른 출구를 열어주며 out!! Out!!을 반복한다. 뭐.. 그동안 말 안통하는 신규이민자들을 많이 겪었을테고, 떄문에 가장 짧고 쉬운 단어로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싸가지 없다. 이런 걸 보면 어딜 가나 사람사는 동네는 다 똑같다는 일반론이 고개를 든다. 어쩄든.. 여기에 살려고 왔으니.. 이 나라 사람들에게 적응해야할 일이다.

좌우의 세관 심사대에서 모든 짐을 다 까뒤집고 책장까지 하나하나 넘기면서 심사를 하는 것에 주눅이 들어 서있다. 사실 여기 까지 와서도 우리가 왜 세관을 무사 통과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딸기를 데리고 와서? 담배와 술을 사와서? 별도로 짐을 부쳐서…? 답은 3번이었다. 다시 말해 이민자들은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짐을 까뒤집지는 않고 화물리스트를 보여달라고 하더니, 항구에 쌓여있을 짐을 찾는데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준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난 입국세관카드에 괜히 동물을 데리고 왔고.. 등등을 써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만일 여기 들르지 않았다면 짐도 못찾을 뻔했던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세관 관문까지 통과하고 떙큐, 유어웰컴 등을 교환하며 밖으로 나왔다. 차선배는 2시간 가까이 기다린 내색을 하지않고 우릴 반겨준다.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일단 기다리는 동안 너무 허기가 져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는 것에 쉽게 동의를 한다. 여기도 포호아는 있었다!! 정통 월남국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를 나누어 먹으며 비즈니스 준비 상태에 대해 얘길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다. 고맙게도 우리 짐을 좀 보관해준다고 해서 간단한 이민가방만을 들고 숙소에 도착.. 짐을 푼다. 이곳 Black dog and Apricot cat house는 지난번 여행 때도 한번 묵어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경비문제상 좀 더 싼 유스호스텔에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다(물론 그러고 나서 빈대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생각보다 개를 위한 시설을 그리 잘 되어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 모두 친절하다. 예전 여행 때보다 사람들과 사귀는 것에 훨씬 부담이 없어졌다. 어쩌면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절박함 떄문일지도 모르겠다. 차선배를 보내고, 국제전화카드를 구입하러 차이나타운을 향해 나선다. 저녁찬거리와 전화카드, 뱅쿠버 지도를 샀는데, 역시 중국인들은 무뚝뚝하다. 하지만 전화카드는 중국인들 덕분에 좋은 품질의 국제전화가 상당히 많은 종류로 나와있었다. 여기서 한국으로 거는데 10불로 340분을 걸 수 있는 카드까지 나와있었으나, 중국인 잡화점 주인과 언어소통이 어려워서 그냥 추천해준 280분짜리 카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걸었더니 사용방법도 쉽고 품질도 우수하다. 만일 민이형이 추천해준 새롬 국제전화 단말기 대리점을 했다면 쫄딱 망할 뻔했다.

돌아와 전화를 한 후 우리보다 뒤늦게 숙소에 도착한 일본인 친구와 얘길 하다가 일본 만화를 좀 얘기 했더니 두말없이 배가본드 16권을 보라고 빌려준다. 너무 감격해서 잘 읽고 떙큐 떙큐를 연발한다. 예전보다 더 넉살이 좋아지고 영어도 좋아진 나 자신을 느끼자 좀 자신감이 든다. 그래 어짜피 많이 나와봐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 여행 때는 뱅쿠버가 처음이어서 이런 저런 실수도 하고 놓친 것도 많지만.. 마지막 여행지였던 시드니가 제일 좋았던 것은 그만큼 우리의 자세가 되어있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씻고 근처 잡화점에서 사온 빵과 잼을 먹고 난 후(여기 주인이 손님과 함께 스테이크 정찬을 하는 식탄 한 귀퉁이에서 빵을 뜯어 먹었다. 여기선 이런 일에 대해서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짜피 너는 너, 나는 나이다. 저 인간한테 좀 이걸 나눠줘야하지 않을까? 저 인간이 나한테 나눠줘야 한다고 신경쓰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없다. 첨엔 아내에게 서로 불편할지 모르니까 올라가서 먹자고 했으나, 주인인 새라가 테이블 세팅 카펫까지 내주는 걸 보고.. 아항! 전혀 개의치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우리는 우리대로 저녁식사를 한다. 그래… none of my businees이고 who care이다. 이런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 역시 난 이곳에서 사는 것이 한국에서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다가 일어나서 출국면세점에서 산 잭다니엘을 마시고 글을 마저 쓴다. 긴 하루였다. (당연히 본초자오선을 지나 하루를 벌었으니) 시차 탓인지.. 저녁 7시 30분에 자기 시작해서 밤 12시에 일어나 지금 3시인데도 말동말똥하다 (사실은 한국에서도 이랬다. 지금 너무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 TV만 있으면 딱인데..). 아네도 좋아하는 것 같고.. 딸기도 여기 Black Dog 마야와 잘 지내는 듯 싶다. (마야는 12살이 된 할머니 개이다. 너무 착하고 순하다. 딸기가 한눈에 그처럼 친밀감을 가진 개는 없었던 듯하다) 이제 낼 할 일들을 좀 체크하고 눈을 붙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