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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완전정복

중학교 1학년때 담임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별명이 점박이였고, 노총각 영어 담당교사였다는 것. 그리고 발음이 무척 후졌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 학교에는 성질 나쁜 노처녀 영어교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담임은 그녀에게 연심을 품고 있었지만 그녀는 담임을 무척이나 깐히 보고 있었고, 가끔 보충수업 시 담임에게 배운 영어 발음을 하는 학생이 있을라치면 호되게 망신을 주곤 했었다. 그 때에는 저 여자가 남의 발음을 가지고 왜 저리 히스테리를 부리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영어권 사회에서 생활을 하다보니까 점박이의 어설픈 영어 발음이 아직도 얼마나 폐해를 끼치고 있는지 …

대표적인 경우가 wh- 발음으로, white를 화이트로, what을 홧으로 발음을 배웠지만 북미 영어에서는 누구나 다 ‘와이트’와 ‘왓’으로 발음을 해서, 이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되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what은 그래도 그 후에 연습해서 교정이 되었건만,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에서는 white를 아직도 ‘화이트’라고 표기를 하기 때문인지, 그 놈의 화이트는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냥 색깔을 말하는 것은 그래도 신경써서 ‘와이트’라고 말하려고 해도, 이곳 유명 외식업체 체인인 ‘white spot’을 말할 떄는 여지없이 ‘화이트 스팟’이라고 말하게 되는 걸 보면, 정말이지 언어는 초기에 정확한 습관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비근한 예로 일본의 경우, 그네들의 말을 살펴보면 영어 단어를 자신들 식의 발음으로 고쳐서 그대로 외래어로 차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화이트 처럼), 그 버릇이 영어권 사회에서 쓰는 영어회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휴식을 뜻하는 브레이크(Break)를 ‘부레이꼬’라고 한다든지, 자른다는 뜻의 컷(Cut)을 ‘카또’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이곳 지명인 랭리(Langley)를 ‘랭구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던지 하는 것이다.(그래서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일본계 친구는 처음 어학연수를 와서 따로 발음교정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몇 번을 교정을 해주려고 해도 결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몇 대를 거쳐서 배운 영어는 바로 그런 발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캐나다라는 사회는 워낙 다민족 다인종 국가라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경우도 신규 이민자의 허접한 영어발음을 그 나름대로의 특징(사투리 정도)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발음을 애써 고쳐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중국 사람들은 중국식 영어를 쓰고, 인도 사람들은 인도식 영어, 일본 사람들은 일본 영어, 한국 사람들은 한국 영어,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프리카 영어를 쓴다. 문제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른바 네이티브 스피커들은 이 영어들은 모두 알아듣는데, 나와 같은 어리버리 영어 수준으로는 오히려 이해하는데 무척 애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비단 영어 뿐만이 아니다. 내 일본어의 경우 80%는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20%는 교육방송을 통해서 배운 실력인데, 발음 만큼은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자부를 한다. 오히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 수업을 받고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과 비교를 할 때에도 보다 낫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진정 내 일본어 실력이 우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버릇이 잘 못 들은 사람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이곳 이민자들의 영어를 살펴봐도 그렇다. 경상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투리 억양의 영어를 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식 영어를 한다. 모두 중고등학교때 그런 교사에게서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정말이지..정말이지 언어에 있어서는 제대로 된 조기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습관의 문제는 발음의 문제 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인사말로 어떻게 지내냐라는 뜻의 How are you? 또는 How are you doing? 등의 인사말이 있는데, 백이면 백.. 처음 오는 한국 사람들의 대답은 Fine thank you and you? 라는 대답이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있는 탓이다. 오죽하면 이곳 ESL(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 교사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제발 Fine thank you 좀 그만하라고 할까? 그러나 이런 습관은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 고객들의 인사말에 대한 종업원들의 일반적인 대답은 Good Thank you. 또는 Good. how about you? 등인데 Fine Thank you를 안한다고 해서 저런 일상 대답이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Thank you라고 감사의 뜻을 표할 때, You’re welcome (언제든지 또 도와드리죠) 이라는 대답은 중학교 때부터 배웠으나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놈의 OK만이 입에서 어찌 그리 잘도 튀어나오는지 알길이 없다. 예전에 6.25 동란시 미군병사가 묻는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OK, OK 하다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많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어디서 몸에 뱄는지 모를 이 습관 때문에 지금 고생이 말이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싸그리 고쳐야 할텐데…

아무튼 현재 나는 영어권 사회에서 살고 있고 일년 남짓한 이민 생활중 가장 영어를 많이 쓰는 시기를 맞고 있다. 더우기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게의 손님들 대부분 백인들로 비교적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뿐, 여기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습하지 않는다면 영어실력이 늘리가 만무하다. 캐나다에서 슈퍼를 10년 넘게 한 사람들도 여전히 한국식 영어발음이고, 10년을 넘게 산 사람도 이곳의 한국인들만 만나고 한국 시장에서 장보고 한국 비디오만 보면서 살면 절대로 영어 쓸 일은 생길리 없고 당연히 영어가 늘지 않게 된다. 어쩌면 내 앞으로의 이민 생활 중에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된다.

한국에선 노무현 탄핵이 가결되었다고 한다. 구 소비에트에서 고로바초프 시절 보수세력의 쿠데타는 결국 고르비를 영원한 영웅으로, 옐친을 대통령으로, 러시아를 완전 3등국가로 만들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노쿠현의 역사의 영웅으로 만들 생각인지, 한국을 3등국가로 만들 생각인지… 아니면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생각인지… 정말 궁금하다.

Ana (2004-03-14 12:58:41)
그치만.. 손님 중에서 Fine, Thanks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어염..

강이관 (2004-03-23 05:35:13)
신기한 커플! 잘 지내고 있군요. 저도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크크.

Ana (2004-03-23 06:57:20)
신기한 커플이라니여.. –;;; ‘커플’이 신기하단 건지 아님 잘 지내는 게 신기하단 건지.. 암튼 잘 진행된다는 얘길 들으니 기쁘네요. 얼마전 <사랑한다 말해줘>란 드라마 1회에서 갖혀서 시나리오 쓰는 작가를 보고 잠시 선배님 생각을 했었다는..

시인 (2004-03-29 13:32:09)
두분의 건강한 모습이 보기좋습니다. 섬생활이라,… 제남편 희정씨가 부러워할 듯 십네요. 보고싶어요! 모처럼 안부 전하고갑니다.

MADDOG Jr. (2004-03-29 13:53:48)
엥.. 형수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정말 두분 모두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