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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나에게 지어준 별명은 우공(愚公)이었다. 당시 대통령의 이름에도 들어갔던 이 어리석을 우(愚)자의 별명은 바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옛날 춘추전국시대 어느 마을에 사는 노인이 아들과 함께 산을 옮겨보겠다고 한 삽한 삽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 모두 그 짓을 한심하다며 어리석은 양반(愚公)이라는 별명을 붙여 놀려댔지만, 두 부자는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산이 옮겨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고사성어는 남들의 조롱 속에서도 원대한 목표를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좋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름대로 눈치 보고 잔머리 굴리면서 살아왔던 나로서는 너무도 과분한 별명을 받아 부담스러워 했었고, 결국 친구들이 불렀던 짱돌(당시 내 박치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이라는 별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해버렸다.

그럭저럭 공부를 해서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나는 내 인생의 길이 어떻게 풀리게 될지 자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모든 학교 교사들은 ‘지금 3년의 노력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식의 협박성 격언을 늘어놓았고, 어쩌면 당시엔 그 말이 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지금처럼 초등학생이 토익 950을 넘기 위해 피를 토해가며 공부하지 않았고, 조금 미리 공부한다는 것도 중 3이 되면 고등학교 영문법과 수학공식들을 외우는 정도였으니, 실제로 고등학교 3년간 어느 정도 공부를 해서 소위 SKY대학 출신이 되면 이제 인생의 탄탄대로를 얻게 된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대충 4년간의 대학시절을 마치고.. 적절한 공채를 통해 대기업에 입사한 후, 이제까지 해온 관행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고 없이 일을 해나가면 적어도 부장까지는 순조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혼해서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은 이제 중고등학생정도… 이렇게 인생의 설계도대로 쫙 진행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무 걱정 없이 스키장에서 미팅하는 것을 대학생활의 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낼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왠지 대학에 갓 들어간 나에게는 학생들의 그런 특권의식, 터무니없는 낙관성과 분방함들이, 왠지 부잣집 아이들의 장난질 같아보였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 자체를 학생들과 같이 꾸는 것조차 나중에는 지쳐버렸다.

무슨 대사건이 기점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한국사회에서는 고등학교 3년간의 노력이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에 영어 어학연수를 해외로 한번 갔다 와야 하며, 6학년이 되기 전에 토익 950점 이상 따기 위해 피를 토하며 공부를 해야 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가 아니라면 아예 대학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관계로, 외국, 특히 북미에 있는 싸구려 학교를 다녔다는 증빙 – 그것이 아무리 돈만 내면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 을 얻기 위해 또 한번 해외 유학을 떠난다. 대학 생활도 영어 공부의 연속이고, 토익 950 이하라면 아예 취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것이 요즘 현실인 듯하다. 그렇게 취직이 어렵다 보니, 대학에서도 일반 기업에서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과목이 인기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이나 기초과학은 점점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태에 가장 큰 낙오자들은 바로 현재의 30대 후반과 40대 들이다. 어느 정도 학벌과 인맥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가꾸어 온.. 하지만 IMF 직격탄을 맞아, 자기가 몸담고 있던 집단에서 버림받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기엔 그 어떤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세대들이다. 오히려 그 윗세대인 50대 들은 회사의 중견 간부가 되지 않았다면 그 밖의 길을 이미 찾아 나섰으므로 별 상관이 없고, 60대들은 아이들의 교육 걱정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자녀들 사교육비를 짊어지고,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끊임없이 시도를 하던 중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린, 모든 관행과 서류작업으로 자신의 업무 성과를 올리고, 그야말로 무사안일, 복지부동 만을 일삼아 오던 중 도태되어버린 30대 후반과 40대 들이, 현재 한국 사회의 낙오자 집단의 주축을 형성한다. 이들 중 마음을 고쳐먹고 새출발을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미 IT상식과 영어실력이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연장자를 부하직원으로 하대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사회관습으로부터, 포장마차를 짊어지고 붕어빵이라도 굽더라도 개인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 한, 이들의 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10년 넘게 해 오던 애니메이션 일을 포기하고, 가전제품 수리 기술자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해 보려고 하던 나에게 역시,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단지 30세 라는 이유만으로, 수리팀의 팀장급들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대개 공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막 제대 한 후 직장경력을 쌓기 때문에)만으로 취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곳 캐나다에서 현지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는 것 만큼이나 절망적인 것이었다. 그런 모든 현실들이 한국의 모든 시스템에 혐오감을 공고하게 만들었고, 사실 달아나봤자 뾰족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고 싶도록 만들었다.

이제 또 한번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작년 이민 첫해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그러다 보니 생활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 현재의 직장(슈퍼마켓 종업원)을 찾게 되어 나름대로 안정되고 조용한 이민생활 – 그야말로 한국에서 그리던… 일을 마치고 낚시를 하는 그런 전원생활 – 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인연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먹고 사는 것이 편해지자 이제는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이 나라의 실업자 구제책은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로 현실적인 부분이 있어서 당장 길거리로 나앉는 그런 경우는 당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약 10개월간은 평균 급여 세금공제 전 금액의 50% 정도를 생활비로 받을 수가 있게 되고, 개인 커리어 계획을 심사해서 1년 동안 천만원에 가까운 교육비도 국가에서 보조해주기도 한다.

이민생활… 이제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이 나라의 어두운 면도 많이 겪고, 기대에 못미친 부분도 많아 실망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모든 실망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캐나다가 아직 좋은 이유는 단 두 가지이다. 하나는, 30대가 되었든 40대가 되었든… 언제든지 자신의 커리어를 바꿀 수 있는 희망이 있는 나라라는 점. 물론 말단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대기업 회장이 호텔 웨이터가 되는 일이 뉴스거리가 되겠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이민자들로 구성된 이 나라에서는 매우 빈번한 일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 나라의 40대들 얼굴이 밝아 보인다는 점이다. 무엇 때문인지 연유는 알 수 없다. 단순히 선입견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섬의 슈퍼에서 일하면서 지켜봐 온, 그리고 그간 사귀었던 캐내디언 40대 들은, 아직도 수줍은 미소를 지을 줄 알고, 때로는 바보짓도 하고,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 직장생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형들과 채팅을 했는데, 순간 그들이 모두 초등학교 2, 3학년이 되는 아이들을 가지고 있는 학부형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와 같이 술 마시고 바보짓을 하던 그 선배들이 모두 40대가 된 것이다. 나도 언제 40대가 되어버릴지 모를 일이다. 이제라도 나의 40대를 위해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년에 나름대로 고생했던지라, 막상 이 안정된 직장생활을 포기하려니 답답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산을 옮기는 심정으로.. 묵묵히, 돌 하나 씩 하나 씩 옮겨 보려 한다.

민 (2005-01-04 13:06:15)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구나…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