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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한 나라..

일을 그만두고 섬에서 나와 정신없이 놀다보니까 금새 겨울이 훌쩍 지나가고 봄이 왔다. 몇몇 군데에서는 이미 이번 봄비에 벚꽃이 잔뜩 떨어지고 있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점점 가벼워지는 걸 보니 봄은 봄이다. 일을 그만 둘 때 사람들에게 더 유망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기 위해 공부를 하려고 한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역시 어떠한 핑계를 둘러대더라고 일 안하고 노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뭐나를 하지 못해서 좀이 쑤셔 엉뚱한 사업을 벌릴 생각도 없고, 심심하고 무료해서 카지노 등을 전전하고 싶은 생각도 추호도 없다.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예쁜 경치들 감상하며… 집안에 고장난 것들이 생기면 틈틈히 고치고, 책이랑 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공짜로) 보는 것만으로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캐나다 체질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정말 이민 오기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 캐나다가 좋은(Good) 나라이거나 나쁜(Bad) 나라라고 판단하기 이전에, 자신한테 적합한(Suitable) 나라인 것인지가 결국 이민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민온지 2년간 여러 사람을 만나고, 특히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해보았는데, 의외로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힘들었다. 대개의 경우 확연히 다른 문화적 차이에 대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 나라에 대해 혐오감만 쌓아간다든지, 아니면 오랜 이민 생활 후에 어느 정도의 관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들에게 ‘캐나다’는 항상 ‘이 (놈의) 나라’로 표현되고, ‘한국’은 ‘우리 나라’로 지칭되며, ‘이 나라’의 문화 한 가지 한 가지가 ‘우리 나라’의 문화와 비교 대상이 되며 그 차이점을 지목하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으로 구별한다. 특히 오래된 이민자들의 경우, 생계 유지와 자녀 교육을 위해 정신없이 일만 해온 경우(대개의 경우 소규모 비즈니스)가 많고, 그들에게 있어서 20년이 넘는 이민 생활이 가져다 준 것은 넓은 집과 통장 잔고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전 슈퍼에서 같이 일했던 한 아저씨가 65세 정년 퇴직을 맞아 한국에 잠시 놀러 다녀왔었는데, 그 양반이 한국에 갔다왔다가 덜컥 우울증에 걸려 버렸다. 젊으셨을 당시 우수한 학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대기업에서 총망받는 사원이었던 양반이 무슨 일인지 새로운 삶을 위해서 이민을 선택했다. (그 당시만해도 외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신분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나서 버섯농장, 사슴 농장, 그리고 섬에 있는 수퍼 등지에서 열심히 일해 온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한국에 돌아가 보니, 한국을 떠났을 당시 같이 친하게 지내고 술을 마시며 바보짓을 하던 친구들은 이제 각 분야에서 원로 대접을 받고 있고, 넉넉한 돈과 번듯한 집을 자랑하며 살고 있었다. 수퍼마켓에서 야채나 다듬다가 정년을 맞이한 자신의 신세와 비교를 해보니 …. 나오는 것은 후회와 한숨 뿐이고…. 이렇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대규모로 캐나다에 들어온 한국 이민자들의 앞날이 이 아저씨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사력을 다해서 영어회화 능력을 키우지 않는 이상.. 사슴농장이나 버섯 농장과 같은 바닥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신분상승한 옛친구들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비관에 빠지게 되는 코스는 눈에 뻔하다. 다시 말해서… 이 나라를 호락호락 하게 보고 이민을 와서 그때그때 생계에 휘둘리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면… 남는 것은 그야말로 후회 뿐일 거라는 얘기다. 금을 파기 위해 삽질을 하다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때때로 이 나라가 나에게 얼마나 적합한 나라인지를 재 확인하는 모습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옆집 아저씨의 지금 모습이 결코 부끄러워 하거나 후회된 선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한국의 60대들이, 자신들이 현재 누리는 것을 위해 3~40대 때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자녀들을 키워야 했고, 때로는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해 사람을 속이거나 자신의 양심을 속이기도 했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격변의 경제성장기에서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남들을 다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누리는 현재의 여유로움이 30대 후반부터 이민와서 낚시나 하면서 즐겨온 인생에 비해 월등하게 우수하다고 장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규모 스와핑 그룹이 적발이 되어 시끄러운 듯 싶다. 나로서는 그런 스와핑 행각이 부럽지도.. 옳은 것이라고 생각들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걸 가지고 제3자들이 윤리붕괴라느니 하며 탄식을 하거나 사법 처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집단 섹스 또는 교환 섹스를 통해서 어떤 쾌락을 얻는지, 일부일처제에 대해 어떠 생각을 하는지 내가 전혀 알바가 아니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일이고, 그사람들이 책임질 일인 것이다. 그게 타인에게 공격이나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내가 분노하거나 그 사람들 자유를 제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제발 그런 거 단속할 시간에.. 세계 최고의 발생율을 자랑하는 아동 성폭력과 같은 범죄를 단속하는 것이 어떨지…

오늘 처음으로 동네 수영장에 갔다왔다.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의 위락시설을 즐길 수 있는 이 사회의 복지 시설 보다 나에게 감동적이었던 것은 수영장 옆에 있던 스케이드 보드 놀이터였다. 처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위험천만한 시설들이 많았는데, 그런 위험시설을 공공비용을 들여 짓는 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절대 합의될수 없는 사안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놀이터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할 일이고, 그걸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사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싶다. 정말이지 내게 적합한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