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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이민오기 몇 달 전, 몇 년 만 더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일을 해 볼까…?라는 이 생각 저생각을 하고 있던 중, 마침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기를 공감하고 있던 몇몇 PD들 끼리 모여서 심포지엄을 하는 자리에 초청을 받았다. 당시 대다수의 투자자나 배급사들은 몇 번의 실패 끝에 세계 2위의 애니메이션 제작국가라는 공허한 숫자놀음에 비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품질 수준이 처절할 정도로 저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나마 작품성의 해외에서 인정받은 <마리 이야기>조차 관객들에게 외면을 당하자 한국에는 창작 애니메이션의 제작 능력도 시장도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의 목적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절박함이었고, <아마게돈>으로 이미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만화가 이현세씨의 주도로 연구팀이 구성되었다.

몇 차례 논의 끝에 얻은 결론은, 손익분기가 머나 먼 TV애니메이션 보다는 당장 손익이 분명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감을 했고, 곧이어 그렇다면 무슨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해야하는가로 관심이 이어졌다. 역시나 주최측이 주최측인지라 이현세씨의 원작 중에서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많은 인기작들이 이미 십여년 전에 인기를 얻었던 비장미가 흐르는 것들 뿐이라서, 제작을 마치는 앞으로 5년 후에는 도무지 어떻게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갑론을박 후에 그나마 가장 시장성이 있어보이는 원작을 골라낸 것이 <남벌>이었다.

기본적으로 조폭물에 혜성과 엄지, 마동탁의 3각관계에다가 80년대의 비장미가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한가지 시장개척에 있어서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개인적으로는 민족주의 같은 거 엿이나 먹으라고 생각하지만, 상업영화 프로듀서로서 <민족주의>는 한국 시장 개척에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었다. 만일 이런 논리에 조금이라도 회의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왜 우리나라가 아직도 한일전에 광분하는지, 스스로 고고한 척하는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이나 다른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애국자가 되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백의민족><단일민족> 국가라는 것에 세뇌되었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단결>과 <협동>에 고무되어 오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비록 개개인이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민족주의>, <국가의 이익>을 내세운 마케팅에 쉽게 현혹되기 떄문이다.

그렇게 그렇게 의견을 모아내어 담당자를 만나 그나마 <남벌>이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얘길 했는데.. 아뿔싸.. 그것은 이미 모든 저작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판권 문제가 골치 아프게 얽혀있어서 얘기하는 게 금기라나.. “그럼.. ‘공포의 외인구단’을 좀 각색해서 만드는 것 어때? 실미도의 흥행에서 본 것처럼 아직 <특수훈련>이라는 코드는 남성들에게 먹힐 거라구.. 그리고 .. 왜 사람들 야구 좋아하잖아???”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천국의 신화>를 어떻게 상업화 시킬 것인 가를 고려해볼 것 “이라는 짧은 노트였다. 이런 젠장.. 그럴 거면 차라리 이런 모임을 만들지를 말든가.

어찌되었든..

처음 <한반도>의 기획을 접했을 때, “역시 강우석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경의선 철도 완공을 반대하는 일본의 주장을 묵살하기 위해 고종의 <사라진 국새>를 추적하는 <민족주의, 미스테리 모험물>이라… 뭐.. 그런 단초만 들어도 기본적인 흥행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작비가 100억 든다고는 하지만, 전국 300만이 들면 손익분기를 넘길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시대를 연 이상,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미 천만관객 시대에 접어든 한국영화계에서 아직도 민족주의 타령을 해야만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는 하지만, 강우석이라는 인간이, 그리고 그의 상업주의 영화가 한국영화 시장 확대와 제작환경 개선(최소한 미국에서 큰 돈 들여 영화공부하고 돌아온 인간들이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만해도 고마운 일이다)에 도움을 준 것을 기억한다면 용서할 수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민족적 패배주의를 슬슬 건드리는 분위기로 끌고 나가면서, 국새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전체 영화를 인디아나 존스처럼 끌고 나간다면.. 와..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결과는 기대한 것 만큼 되지 못한 것으로 안다. 뭐 흥행은 어느정도 했다지만, 손익분기를 간신히 넘긴 정도.. (Film2.0에 의하면 한반도의 손익분기는 전국 450만명이었고 결국 손익분기를 못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며칠 전 한반도를 본 소감은.. 참..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강우석 감독은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않고 자신이 민족주의자라는 것을 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는 크게 세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1. 조재현이 분한 역사학자가 사라진 국새를 찾는 얘기,
2. 그리고 일촉즉발로 내닫는 한일관계와 이에 대처하는 한국 대통령 및 국가 수뇌부들의 얘기,
3. 일제 강점기의 고종과 민비의 얘기(이것은 아마도 2번의 상황을 그대로 대입해 보고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 누군가가 이 세가지 이야기로 오락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고종과 민비의 얘기든, 한국의 대통령과 해군제독의 얘기든 간에 그것은 비통하고 장엄하고.. 그렇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 뿐이다. 역사적 재미와 대중을 현혹하는 민족주의가 있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오락영화에 있어서는 <챔피언>에 나오는 <김득구>의 예정된 죽음만큼만 비통하고 장엄할 뿐이다. 감독은 (예견된 민족주의 과잉에 대한 논란을 의식해서 인지 아니면) 일본과의 대결구도를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어서인지, 고종과 민비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예하면서 좀 더 비참한 죽음과 잔인한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적으로 이는 가장 재밌어야 할 미스테리 이야기 부분에 투자될 시간을 어쩔 수 없이 감축시켜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조재현이 사라진 국새의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것에는 반대세력의 저항만이 있었을 뿐.. 미스테리는 전혀 없었다. 그냥 환관의 후손에게 얻은 책을 읽고 그것을 (어이없이!!)찾아내었다. 물론 반대세력과의 갈등, 그에 대항하는 꼼수와 트릭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쉽게 말해 “매국노를 멋지게 골탕먹이는 애국자”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지 재밌지도, 실제로 멋지지도 않았다. 뭐.. 개인적으로 미스테리물을 써본 경험이 있어서 인디아나 존스나 마스터 키튼과 같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전혀 노력을 안한 것은.. 자신의 직무를 방기했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오락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거나 두 가지가 아닐까?

만일.. 진정으로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애국자가 되기를 바랬거나, 최소한 자신이 민족주의자라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랬다면.. 미안하지만 이제껏 개인적으로 강우석이라는 감독에게 가졌던 모든 호감을 이제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이 그렇게 자신의 몽상에 투자자들의 돈을 그만 낭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덧붙혀, 감독이 생각하는 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진실에 가깝다. 바로 가진 사람들,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제 멋대로 행동하기 위해 쓰는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워 벌어진 모든 사건에서, 가진 사람들은 좀 더 영웅이 되었었고 없는 사람들은 시궁창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워 정부종합청사를 폭파하고 불을 내지만, 없는 사람들은 그저 바보처럼 저들의 사기극에 휘말려 시키는 대로 열심히 대피만 했어야 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국가의 위기가 서울대 출신 교수 한 명과 대통령, 그리고 국가정보원 등 몇몇 똑똑한 사람들의 힘으로 극복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하물며 미국 같은 패권주의 국가에서 영화를 만들더라도 이렇게까지 엘리트 세력 위주로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디펜던트 데이>를 보라!! 그 말도 안되는 <배달의 기수>에서도, (제작자가 진정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농부와 학교 교사, 경찰 등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지 않는가?

이현세씨와의 기획회의를 실속없이 마치고 나서 얼마 후에 다시 개인적으로 불려가 면접을 봤다. 그 양반은 어떻게 해서든 <천국의 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었고,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PD들 대상으로 섭외를 해서 같이 뭔가를 해내고 싶었나 보다. 뭐.. 지금 생각하면,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게속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면, 달콤한 말로 어떻게든 꼬드겨 한 편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절박하지 않았나 보다. 솔직히 말했다. 그 원작은 흥행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만일 정 만들고 싶다면 최고 수준의 작품을, 한국 영화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겠지만, 도저히 흥행에 성공할 자신은 없다고 했다. 그 양반은 그 두 가지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이해를 못하는 듯 했다. 그렇게 회담은 결렬되고, 후배 PD중 한 명이 그 직책에 채용되어 기획 일을 했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현세 씨가 <공각기동대>가 한국에 개봉될 때 극장 분위기를 직접 보고, 자신의 기획을 결국 접었다는……

지금 때때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계속 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속절없는 상상을 해보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매일매일 거짓말을 계속 해야만 하는 지옥같은 나날들의 연속이 아니었을지.. 민족주의를 울거먹고, 세계 보편감성 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면서 어떻게든 투자를 받기위해 혓바닥을 놀려댔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매일 매일 다짐하겠지..” 아.. 증말.. 빨리 때려치우고.. 컴퓨터 수리나 하면서 정직하게 돈 벌며 살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