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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성

남들에게 흑백논리에 천착하는 걍팍한 놈으로 보일지 뻔히 알면서도 어릴 적부터 당파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똥폼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박쥐같은 인물들에 대해 분노하거나 양비론을 설파하는 헛똑똑이들을 경멸했던 것이, 뭐 내가 투철한 계급 의식을 갖고 있다거나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을 하는 그런 종류의 인물이라서 그랬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보다, 윤발이 형님을 아직도 마음 속 깊이 우상으로 섬기고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탄식을 습관처럼 하는 유아적 사고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가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그 놈의 “학벌”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는데 상대적으로 “잇점”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대로 경계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입으로만 진보를 부르짖는 자유주의자들 중 하나가 될 지언정, IMF 이후 노골적으로 돈을 추앙하게 된 수많은 책상물림들 처럼 더 바닥으로 타락하기가 싫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방울 두쪽만 가지고 이민을 와서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살다보니.. 그리고 이래 저래 힘들게 정착을 하게되어 보니, 오히려 그 놈의 당파성이란 걸 지키는게 너무도 힘들다, 지금. 부끄럽지만, 지지리도 가기 싫은 직장에서 주 40시간씩 버티고 보면, 길거리에서 태연하게 (그 비싼!!) 담배를 물고서 동냥을 하는 걸인들의 쪽박을 깨 주거나, 멀쩡한 두 팔 두 다리로 (그리고 영어가 통하는 귀와 입으로) 당장 가서 일하라고 고함을 쳐주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졸라 하기 싫은 일 해서 벌은 돈의 30% 넘게 뜩 하니 세금이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공공복지 기금으로 나가는 게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인간이란 참 이기적인 동물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우리처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일 수록 돈 한푼 더 나가는 것에 민감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소득층의 일원으로서 올곧은 당파성을 견지하기 힘든 것은 그 것외에도 또 있다. 지금 선거철인지라, 각 당에서 차별성을 갖는 대표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데, 녹색당과 자유당에서는 지구 환경을 위한 온실가스 감소 노력을, 신민당에서는 빈부격차 해소와 복지제도 강화를, 그리고 집권 여당인 보수당에서는 범죄 근절을 주장하고 있는 편이다. 당연히 폼나게 살아 보려는 머릿 속에서는 사회 복지 강화나 지구 환경 보호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크고 작은 범죄가 종종 발생하는 구린 동네에 사는 사람 입장의 심정으로선 온실가스 감소 보다는 범죄 근절에 더 솔깃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신민당을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신민당이나 녹색당 후보들에게 개인적으로 적대감이 샌긴다. 정치하는 놈들이 뭐 크게 다르겠냐마는, 그래도 왠지 그 두 호보 놈들의 면상에 개기름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던가를 떠나서, 신민당 당수가 마리화나 당수와 회동해서 의견을 나눈것으로 공개석상에서 부정했다든가, 지역의 녹색당 후보가 식당 종업원들 급여를 안주고 폐업을 해서 2번이나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이 왠지 더 찜찜해 보이는 것이다.

뭐 마땅한 대안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젠장,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냐구. 다시 한번 강호의 의리 탓을 하면서 20대 때의 생각으로 돌아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