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December 23, 2009

AVATAR (2009)

정말이지 누구 말대로 하루를 십년같이 기다리던 그 영화를 드디어 볼 수 있었다. 결과는 역시나 감동의 연속. 예전에 타이타닉을 보기 위해서 군대에서 외박 나왔던 기억이 났다. 그 때도 역시나 (황금같은 군바리의 외박을 고작 영화 한편으로 날렸다는 그 따위) 실망감 같은 건 추호라도 가질 틈이 없이, 엄청난 충격을 먹고 부산 남포동 거리를 정신없이 헤매고 있었는데..

남들은 모두 무시하고 (혹은 접어주고) 넘어가는 내용 부분만 하더라도, 이 블록버스터의 거장이 얼마나 자신의 전작을 극복하기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코미디 영화라고는 하지만 제3세계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적나라했던 <트루라이즈>라던가, <람보2> 시나리오 작가 크레딧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양반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올바름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모든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듯한 작품들을 “아주 재미나게” 찍어내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베트남전을 대입시켰다는 <Aliens>에서 조차도 (대기업의 계략에 넘어가) 남의 행성을 침입하고는 그 별 주민들을 학살한 후 핵폭탄으로 날려버리는 백인 여성의 용기를 영웅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대테러전쟁 관객세대의 입맛에 맞추려는 상업적인 의도인지 아니면 정치적 각성인지) 최소한 “누가 진정 Alien 인지”만큼은 밝혀냄으로써 <Aliens>에서 자신의 편향된 시각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Intruder나 Invader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을 텐데 굳이 Ali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만 봐도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물론, 역시나, “귀화 백인인 ‘늑대와 춤을’의 진두 지휘로 미기병대의 침입을 물리치는 나바호 원주민의 조국 수호 전쟁”과 같이 순진무구한 스토리 및 결말 덕택에 전세계에서 최소한 1억불은 더 벌게 되겠지만.. 뭐.. 그런 것 까지 바라면 머리가 더 까지려나. 그래도 판도라 행성의 동물들이 전투선에 달려들어 미해병대를 뜯어 먹을 때는 벌떡 일어나 박수라도 치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된게 어디냔 말이지.

그리고 CG 캐릭터의 연기력.. T2에서 로버트 패트릭을 캐스팅한 이유가 CGI 캐릭터로의 합성이 쉬워서였다는, 그리고 <어비스>에서 물 CG 캐릭터 구현을 위해서 사재를 털었다는, 그리고 <트루라이즈>의 해리어 전투기 SFX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직접 <Digital Domain>이라는 특수효과 회사를 만들었다는 루머가 돌 정도로, 이 양반의 CG에 대한 열정과 이해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작을 시작한지 이렇게 오래된 영화가 그 어떤 최신 영화 – <베어울프> 혹은 <트랜스포머>- 보다도 월등한 CG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이런 CG 기술이란 것들은 정말이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성질의 것들인데도 말이다. 흔히들 말하길 CG로 만들기 가장 힘든 것이 “물”과 “털”, “연기(smoke)”라고 하는데, 그거야 기술자들 입장에서 하는 얘기고, 그것들이 아무리 잘 빠져도 사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어색하면 영화는 안되는 것 아닌가? 그야말로 멀쩡한 세트 위에서 발연기하는 걸 봐야하는 상황일테니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CG의 연기력(acting)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고, 카메론 감독은 그 모범답안을 보여준다.

그리고 3D 상영.. 몇 편의 3D 상영 영화를 보았었지만, 왠지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색감이나 자꾸만 왔다갔다 하는 촛점 때문에 그때마다 후회하곤 했었는데, 이 영화만큼 완벽하게 3D가 구현된 건 처음인 것 같다. 픽사의 <UP>만 해도 사실 굳이 3D로 보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일반 상영판이 더) 생동감있는 영상을 경험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도대체 이 영화는 장면마다 얼마나 많은 레이어로 나누어서 찍어댔는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심도의 3D를 느낄 수 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듯이 3D가 아니면 영화의 70%도 경험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만 같다.  아마도 블루레이가 나와도 3D로 나올 것만 같은 예감에 오늘은 3D 안경을 하나 살포시 모시고 왔다.

아.. 정말이지 이런 감독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카메론 아저씨.. 영화 좀 자주 좀 만들어 주세요. 충성을 맹세합니다.

** 극장에서건 케이블 재방송에서건 카메론 영화를 보게 되면 몇 해전 작고한 선배가 생각이 난다. 대학 들어가서 만난 그 선배의 첫인상은 새까맣고 깡마른 체격에 눈만 반짝반짝해서 시위 때마다 깃발을 들고 나서는 그런 무서운 (!) 사람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좀 가까와졌을 때 그 선배가 작업하고 있다고 보여준 시나리오는 놀랍게도 <터미네이터2>였다. 당시 영화 감독 지망생치고 <터미네이터> 시나리오 안 써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잔뜩 흥분해서는 빨리 탈고해서 카메론한테 보낼 거라던 그 선배와.. <아바타>를 같이 봤으면 같이 밤새 환호하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텐데.. 라는 싱거운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