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January 19, 2017

2017 Mexico All inclusive 후기 (Grand Sunset Princess) #5

닷새째.

뜬금없이 고딩때 꿈을 꾸었다. 아주 아주 무례한 교사한테 반항을 하는데 교사가 몽둥이를 휘두르자 그 몽둥이를 잡아 뺏다가 눈을 떴다. 어릴적 그렇게 개기지 못했던 것이 30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사무쳤던 건가. 여기 카리브해 리조트에 휴가와서까지…… 아침 7시. 마침 잘 됐다. 안그래도 오늘은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아내를 깨워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해변으로 나가보니, 우리마냥 벌써 나와 자리 잡고 있는 커플들이 있다. 하 참. 일출이 뭐라고.. 바람도 거세고 게다가 빨간 깃발이 걸렸는데 이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나. 그러고 보니 저기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네.

아.. 예쁘다

수평선 위로 구름이 깔려서 해가 나오는 걸 볼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얼기설기 엮여진 구름 사이로 쑤욱, 그야말로 쑤욱 고개를 내밀고 지나간다. 정동진, 경포대, 해운대 등등에서 해돋이를 봤지만, 이렇게 큰 해가 튀어나오는 건 처음 본다. 어릴 적 읽던 과학만화에서 빛의 굴절 덕택에 일출 일몰시 해가 크게 보인다고 하던데. 위도가 낮아서 그 굴절률이 더 큰 걸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도 잠시 여운을 즐기다가 식사를 하러 짐을 챙긴다.

여전히 조식뷔페는 새로운 것이 없구나.. 그래도 꼬박 꼬박 즉석 오믈렛을 먹고, 구운 과일, 조린 과일을 먹는다. 며칠 먹어 본 과일 주스는 너무 달아서 오늘은 스킵 한다. 오늘은 라운지 풀장에 자리를 잡고 누워 하루를 삐대 볼 생각이다. 리조트 시설 구경은 어느 정도 한 것 같고, 그 중에서 이 곳 라운지 풀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비교적 조용하고, 찰랑거리는 풀 주변으로 차양 아래 즐비하게 놓여 있는 선베드와, 다른 쪽엔 커텐과 더블베드 침대가 있는 오두막이 있다. 물론 ‘셀하’에 나가 스쿠버를 하거나 다른 액티비티도 재미있겠지만, 아직도 비행시간 내내 자리에 앉아 와서 그런지 또 버스를 타고 가는데 두시간 오는데 두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여기 버스는 또 왜 그리 좌석 사이가 좁은지.. 아..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잠이 소르르 쏟아진다. 하하 좋아라. 아침 먹고 와서 또 풀장에 누워 자는구나. 휴가구나.. 하면서 햇볕을 받으며 자는데.. 빠바방 하고 모기한테 세 방을 물려버렸다. 급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다. 숙소에서 나올때 모기 레펠런트랑 버물리랑 갖고 나오라고.. 근데 없어지지 않는 “1”. 아직도 여기 인터넷은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라운지를 호시탐탐 노리던 코티

옆쪽 침대에 있던 일본계 할배는 아침에 카푸치노를 주문하곤 잠에 들었나보다… 싶었는데, 갑자기 우왁 우왁 하며 비명을 질러댄다, 가만보니 음료 테이블에 둔 설탕봉지 통을 이 지역 야생동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Coati가 달려들어 뒤집어 놓고는 봉지 한개씩 훔쳐가고 있다. 소리를 질러도 침상을 두들겨도 멀뚱 한번 바라보다가 다시 설탕 봉지를 훔쳐 가 먹기를 반복한다. 보다못해 소리만 지르고 있던 할배에게 한마디 했다. 그거 그렇게 두면 저 녀석 계속 올거야.. 할배가 끄응.. 한숨을 쉬더니 엎어진 설탕봉지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뭐.. 그래도 암튼, Alicia한테 스카치 언더락으로 하나 달라 하고, 아내는 설탕을 뺀 모히토를 주문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생각에 잠기고, 눈을 감고, 잠에 든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시간을 .. 그것도 이 만큼의 장시간을 보내는 게 정말 오랜만이다 싶다. 하다 못해 캠핑을 해도 장작을 패고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여기선 그야말로 먹고 자고 쉬고 놀고의 반복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매일매일이 비현실적이다. 비일상적인 느낌이다. 뭐 그러니 홀리데이즈라고 하겠지.

키오스크에서 얻어 온 타코. 근데 멕시코에선 소프트 셸 타코만 먹는 듯

침대 밑에서 자리 접고 떡고물을 기다리던 고양이

잠에서 깨니 벌써 2시. 참.. 놀 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는구나. 좀 출출해진다. 첫날부터 생각해둔 건너편 풀장의 즉석 타코를 받으러 가 본다. 또띠아 빵을 구운 후, 돼지고기 바베큐나 슬로우쿡 된 쇠고기를 얹은 다음, 양파 등 렐리쉬를 토핑으로 해서 먹는다. 참, 밥도 얹어 먹는 경우가 있다. 아항, 그래서 조식 뷔페 타코 섹션에 밥이 항상 같이 있었구나. 참 뜬금없다 싶었는데..  암튼, 타코를 들고 돌아와 침대에 오르자 마자 어디선가 냐옹 소리가 나더니 예의 그 검정 고양이가 나타났다. 한참을 우리 침대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냐옹거리더니, 급기야 침대에 올라 와서 행패를 부린다. 덕분에 먹을 걸 (달려들어 엎지를까봐) 양손에 들고 이리저리 피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는데, 그 광경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말을 걸기 시작한다.

옆 오두막의 커플은 캘거리에서 온 콜린과 크리스털인데, 이곳 리조트에 대한 찬사가 먼저 시작되고 자연스럽게 상대의 직업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에 창작에 관련된 일을 했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러더니 각각 서로가 가진 창작 욕구에 대한 얘기로 전환이 되었다. 참.. 보면.. 이제껏 만난 많은 북미의 청춘들이 이런 창작관련 풀타임 직업에 대한 환상이 있다. 특히 시를 쓴다든지,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한 재능의 경우 아무리 사소한거라도 쉽게 존중을 받고, 그러다보면 자기 작업에 대한 상업성을 조금 과대평가하면서 낮에는 잔디를 깎거나 커피샵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밤에는 창작일에 꾸준히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자체에 대해서 뭐라 평가하긴 어렵다. 똑같이 알바를 뛰면서 밤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국의 청춘들에 비해 뭐랄까. 좀 귀엽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언젠가부터 그렇게 예술가의 길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마냥 속 편하게 응원만 해줄 수는 없어졌다.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경험 때문이겠지.

그래도 결국 어느 시점에 가서 자기 재능이 가지는 상업적 한계를 발견하는 순간이 올테고, 이 나라는 경력을 리부팅하는데 좀 더 너그러운 편이니까 한국처럼 생존권에 위협을 받는 일이 많진 않을지 모른다. 밴쿠버 지역의 경력 개발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에 의하면, 북미인들이 인생에서 평균적으로 5 ~ 7번 경력 전환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어짜피 자신의 재능을 믿고 거기에 어느 정도 인생을 투자하는 것 역시 국가에서 납세자에게 보장해줘야 하는 기본권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커리어 트레이닝을 국가에서 지원한다든지 말이다.

누가 침대 위에 똥을 만들어 놔서 깜짝 놀랐더니, 아내 말로는 공룡이란다

어느새 식사 때가 되어서 숙소로 돌아가 준비를 한다. 근데, 아뿔사.. 9시에 식당 예약을 해둔 쪽지가 사라졌다. 원래 오늘 저녁은 갈라 디너에 갈 예정이었는데, 첫날 만났던 컨시어지도 별거 아니라 라이브 음악이 나오는 스테이크 디너라고 그랬고, 인터넷 중평들도 대부분 그리 좋지 않아 아침에 예약을 바꾸었는데, 하루종일 침대에서 뭉개서 그런지 티켓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흐음.. 또 티켓을 프린트 해줄 수 있는지 컨시어지에 문의를 했더니, 이미 전산망에 올라가 있어서 이름과 방 번호만 말하면 식당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근데.. 맘 속으로는, 안그래도 혹시 일식 레스토랑에 취소된 자리가 있을지 알아봤으면 해서 일찌감치 메인 빌딩으로 향했다. 목요일에는 멕시코 토산품들을 갖다놓고 벼룩시장이 열린다던데, 아니나 다를까 메인 빌딩 앞 프라자가 북적북적하다. 아마도 50%이상은 메이드 인 차이나겠지..

싸구려 바베큐 소스를 덮은 냉동 춘권 튀김

파파야 샐러드라더니.. 솜탐이 아니라, 파파야 라이스 페이퍼 랩이 나왔다

일식당 ‘Miso’에 가서 리셉션에 혹시 남는 자리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메뉴판을 보여주며 이 음식들로 괜찮겠냐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Miso’가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이 되면서 세가지 다른 섹션이 생긴 것. 한 쪽은 철판구이 부스가 있고, 홀에는 스시를 제공하고, 다른 쪽은 타이 / 동남아 음식을 제공한다. 안그래도 내일 모레 철판구이 쪽으로 예약을 해두어서 오늘은 타이 요리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여기서 간단하게 먹고 아래 장터에서 구경 좀 하면서 소화를 시키고 나면 9시에 La Fleur에 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산이었는데, 의외로 양이 많아서 배가 꽉 차버린다. 뭐… 아쉽지만.. 주문했다가 남기는 거 보다 낫겠지. 아내는 파파야 샐러드와 채식 팟타이, 난 타이식 스프링롤과 몽골리안 비프를 주문했는데.. 뭐 간만에 아시안 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뛰어나진 않았지만..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매우 안이한 요리였지만, 그동안 너무 비슷 비슷한 구이 요리들을 먹어와서 그런지 입맛에 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장터 구경을 했다. 정말이지 딱, 기대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99퍼센트 확신하건데,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더라도 딱 저 정도 수준의 제품들만 있으리라. 전통 공예품을 가장한 중국산(혹은 멕시코산) 팔찌, 목걸이, 브로찌 등의 장신구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유리공예나 코코넛 공예, 초상화를 그려주는 예술가들이 있었고…여기저기 끈질긴 호객 행위가 뒤따른다. 물론 가격 따윈 붙어있지 않다. 굿딜을 주겠다는 상인들의 장담만 있다.  또 바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마리아치 악단들이 있었다. 어릴적 속리산이나 설악산에 수학여행 갔을 때, 국립공원 입구 근처 기념품 가게들이 기억이 났다.. 사실 그런 곳에 굳이 가질 않았다면 등긁개라든지, 각 국립공원 뱃지들, 다른 재밌는 장난감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당시에는 없었지만, 지금에야 전세계에 1불샵이 있으니.. 굳이 여기서 살 아유가 없겠다. 각 국의 민속 공예품 마저도 중국 공장이 더 잘 만드는 세상이 왔다.

가필드를 닮았던 고양이

달밤아래 라이브 공연을 하는 식당

밤길을 따라 걷다가, 숙소 근처 식당에 잠시 들른다. 갈라 디너라는게 아직 진행중이다. 밴드를 초빙해서 라이브 공연을 해준다 뿐이지, 일반 스테이크 디너랑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리셉션에 얘기를 해서 예약 없이 그냥 노래만 들으러 왔다 말했더니, 아무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근데.. 아.. 좀 심하게 못 부른다. 기타도 엉망이다. 차라리 조용한 라운지에 가서 한잔 더 하자 하면서 일어났다.

풀장 주변으로 아무도 없이 청소하는 스텝만 열심히 일하고 있다. 마티니 한잔씩 하기로 하는데, 음.. 베르무트가 너무 조금 들었고.. 얼음도 많이 녹아서 왠지 비율이 안맞는다. 게다가 올리브 국물을 타 넣는다 ㅋ. 한마디로 맛이 없다. 그래도 그냥 마시고 있는데, 낮에 타코를 덮치려 했던 검은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달려든다. 의자에 올라 타고, 온 몸을 비비고 하면서 예뻐해 달라고 갖은 애교를 부린다. 그러다 올리브 향 때문인지 마티니 잔을 덮치려고 시동을 걸길래 그걸 치우느라 또 고생을 한다. 아.. 이번 여행의 메인 어트랙션은 고양이 피하기구나. 딱히 올리브를 원해서라기 보단, 반짝이는 마티니 글라스가 재밌게 보였거나 전화기가 재밌게 보였거나 그런거 겠지. 암튼 한참을 고양이들과 (이후에 줄무니 고양이가 한마리 더 등장) 씨름을 하다가 두 잔을 모두 비우고 숙소로 돌아갔다는 얘기. 피곤해서 썰전은 못 보고 잤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