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L 마트에 다니는 동안, 진상 고객들의 행패, 새로 전입 온 매니저와의 갈등, 앞뒤 안 맞는 밀어붙이기 식의 본사 지침 등 때문에 하루하루 시들어 가고, 만성 편두통으로 매일매일 진통제로 연명하던 무렵, 한국에서 대기업 영업팀 근무 경력이 있던 아내가 나에게 하던 말 중 하나는 “원래, 돈 받아가면서 하는 일은 하기 싫은 법이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돈을 내고 해야지…”였다.
한국에서 20대를 보내는 동안에는 나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열정 페이에 불과했지만) 그런대로 돈을 벌었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이런 아내의 말에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지만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 할 말이냐고), 아무튼 그 이후로는 좀 괴롭거나 부당한 상황과 마주쳐도.. ‘그래, 원래 돈 받고 하는 일이 이런 거지..’라며 마음을 다독이게 되더라.
“이제껏 여기에 써질러 놓은 글에서만 벌써 6군데 직장을 때려치웠는데,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라고 일갈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추운걸 더 잘 참고 더운 걸 못 참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까, 개개인의 참을성을 일괄적인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줘. 그래도 나로서는 많이 참고, 버틸 만큼 버텼으며, 대책을 제대로 만들어 두고 나서 그만둔 거라고 변명을 할게. 그렇기 때문에 L 마트의 경우엔, 입사 2년차부터 계속해서 해온 구직활동의 성과가 없어서 10년 동안 다녔던 걸 수도 있고, 반대로 말해, 당시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경쟁업체에서는, 그래도 L 마트 만큼 대우를 해주는 곳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던 뜻이지.
트레이드 일을 시작한 후로도 3군데 회사를 전전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내 노동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올라갔었어. 그건, 아무래도 근속연수와 자격증 소지 여부에 따라서 급여 단계가 바뀌는 트레이드의 특성 때문도 있었을 거야. 3년차면 3년차, 4년차면 4년차… 어프랜티스의 급여는 각각 근속연차에 따라 대규모 상승했었고, 이는 아마 지역 냉동 노조에서 회사들과 협의해서 마련한 급여기준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비록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회사라 할지라도, 쓸만한 설치 / 수리기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조 급여체계와 어느 정도까지는 경쟁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어쨌든, 주말마다 구직활동을 하고 바뀐 회사에 새로 적응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인상된 급여를 보고 이직 결과에 대해 긍정적일 수는 있었어.
그런데, B 냉동을 다니면서 마주친 비상식적인 회사 운영이나 고객을 기만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에이, 뭐, 또 다른 곳 알아보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고 말 일이었지만, 회사를 다니는 내내.. 아.. 내가, 이 회사 직원이구나… 라는 느낌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었거든. 물론, B 냉동의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겠지. 실제로, 내가 지원하고 채용된 회사는 B 냉동이지만, 내게 주는 급여나 다른 복지혜택의 경우 모두 노조에서 관리를 하니까, 아예 십 년 넘게 일해서 개인적으로 친해진 직원들이 아니라면, 그냥 죄다 파견 직원 같은 느낌이었을 거야. 이러니, 직원들의 안전이나 기술교육 및 복지에 대해서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
노조의 경우에도, 회사와 협약을 할 때, 조합원들 기술 및 안전 교육을 담당하기로 했겠지만, 사람들 모아 놓고 가르치는 것 외에, 실제로 현장이 얼마나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시정할 것인지, 뭐 그런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었어. 당연히 조합원들이 회사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는 가에 대해서도 딱히 알 바가 아니었던 거지.
나에게 있어서 노조에 가입된 회사를 다닐 때의 혜택 (그리고, 어떤 사람에겐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혜택)은, 일일이 회사 눈치를 보고, 회사와 직접 협상을 하지 않아도 “시간 되면” 급여 올려주고, “시간 되면” 학교 보내주고 그런 것들이었거든. 하지만, 이렇게까지 회사가 ‘일감 분배’라는 권한으로 노동자를 길들이려 하고, 회사의 직접적인 매출과 상관없는 업무에 대해서는 ‘근무시간’으로 인정을 안 해주려 하게 되면, 이 “시간 되면”이라는 조건이 언제나 되어서야 충족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구. 그리고 이에 대해서 노조와 상의하려고 하면, 대답은 그냥 ‘다른 회사를 알아봐 주겠다’는 것뿐이었고 말이야.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기본권 중 하나인 행복추구권을 인정받으려고, 노조에 가입된 회사를 찾아 D 식품을 그만둔 것이었는데, 내가 느끼기엔, 노조는 노동을 통한 조합원들의 행복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더라. 아니,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에 나와 다른 정의를 내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둘 중 어느 것이든, 내가 더 이상 지역 냉동 노조 UA5*6과 관계를 가질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D 식품을 그만두면서 내세웠던 이유 중 하나였던 4년차 수업도, 지금 이 시점에서 그걸 위해 회사에 계속 남는 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싶더라. 노조에 가입된 회사건 비노조이건 간에 일단은 체계가 잡혀 있는 회사, 그래서 불만이 생길 경우 불평을 할 수 있는 채널이 있는 회사를 찾기로 했어. 가능하면, 비록 일하는 시간만큼 돈으로 보상받는 트레이드 직종이지만, 돈만 제대로 준다면 직원들의 일상생활을 언제든지 침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아니길 바랬고 말이야.
그러던 중, 두 군데의 회사와 연락이 닿아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J 컨트롤’이라는 회사의 경우 처음에는 냉동기계 온도 제어시스템 개발로 시작해서, 이제는 전 세계 최신식 빌딩의 공조, 화재, 보안 등 통합 제어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가 되었는데, 마침 이 건물 공조시스템 컴퓨터 제어 (DDC) 기술자를 찾고 있더라구. 같은 냉난방 공조 기술자이지만, DDC 기술자들은 비교적 힘쓰는 일이나 지붕에 올라가는 일이 덜하고,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한 직업이었거든. 내 경우엔 이전에 DDC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지만, 그래도 컴퓨터 수리에 관한 몇 가지 자격증을 참작해 주더라
또한, ‘G 시설관리’라는 회사의 경우는, 기술회사라기 보다는 부동산 시설관리 전문 회사였는데,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아무래도 빌딩관리라고 하면, 냉난방 공조 시설이 덩치가 크다 보니까, 공조시설 수리 경력이 있는 기술자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일단 이력서를 넣고 봤다. 그런데 알고 보니 ‘G 시설관리’에서 찾고 있던 사람은, ‘3급 (level 3. 숫자가 높을수록 상위 레벨) 유지보수 기사’ 였더라구. 말하자면 고층빌딩 관리사무소에 상주 하면서 각종 시설들을 유지 보수하는 기술자를 말했던 거였어. 그리고, 이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은 4종 파워 엔지니어 (Power Engineer 4th Class : 한국의 ‘에너지 관리 산업기사’와 유사. ‘종류’를 표현하는 Class는 숫자가 낮을수록 상위 레벨) 였지만, 냉동/공조 기술 어프랜티스 경력자도 지원자격에 포함하고 있던 거였어.
솔직히 말하자면, 두 회사에서 채용을 하는 두 직업 모두, 이력서를 넣을 당시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어. 요즘은 어느 회사든지 인사과에서 포스팅을 하는 채용공고에 차별에 대한 문제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중립적인 문구를 사용하는데 더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채용공고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거든. 그냥 두 회사 모두 대기업이고, 냉동/공조 및 컴퓨터 경력자를 뽑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이력서를 써넣었고, 면접을 가서야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얘기를 듣게 된 거지.
그리고, 둘 다 냉동 트레이드 직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냉동/공조 어프랜티스 연수시간은 더 이상 인정되지도 더 적립되지도 않게 되는 거였어. 다른 말로, 근속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급여체계에서 이제 벗어난다는 의미였고, 실제로 B 냉동에서 마지막 받은 시간당 급여에서 대폭 떨어지더라구.
사실, 급여가 삭감되는 것보다, 이제껏 고생하면서 적립해둔 연수시간이 무용지물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좀 안타까웠지. 그리고, 지구력을 가지고 일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느낌도 들어서 왠지 자책감이 들더라구.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4년, 5년 동안 어프랜티스 연수를 마치고 저니맨이 되려는 것도,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직업 (학교 강사, DDC 기사, 빌딩 상주 관리인 등)을 갖는데 도움이 되려는 이유였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계획보다 최종 목적을 일찍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냥. (물론, 냉동 기사 국가 공인 자격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급여 차이는 크겠지만 말이지)
그리고,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내가 냉동/공조기사 어프랜티스로 일했던 지난 5년간, 단지 저니맨이 되기 위해 모든 걸 바쳐 투자만 했던 건 또 아니었거든. 어프랜티스라고는 하지만, 돈도 제법 벌었고, 기술도 많이 배웠고,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멋진 인연도 많이 만들었잖냐. 게다가,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내 개인 생활을 희생하면서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어프랜티스 연수시간을 포기하는 게 그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더라구.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하기 싫은 등산을 몸 상해가면서 했던 게 아니라, 올라가면서 호수 구경도 하고, 야생화들도 보고, 사슴도 토끼도 보고 하면서 올라간 거라서, “날씨가 안 좋다는 이유 만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정상 정복을 포기할 수 있어?!” 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던 거지.
두 군데 모두 면접 결과는 좋았지만, G 시설관리에서 먼저 채용 연락을 주더라. 아니, 사실 면접 당일 팀장한테 채용 통지를 받았어. 면접을 갔더니 이란계 이민자인 노인이 나를 맞이했는데, 거의 30분간 자기 인생 역정에 대해서 일장 훈시를 하더니, 나에 대해선 별로 묻지도 않고 “너, 합격. 난 한국사람 좋아해.”라고 말하는 거야. 그리고는 “우리 사무실은 가족과 같은 분위기야. 난 가족처럼 일하는 걸 좋아해”라는 말을 덧붙이더라구. ‘가족 같은 직장 분위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 속에선 반사적으로 “이건 아니야, 이건 정말 아니야, 빨리 달아낫!!” 과 같은 비명소리가 계속 울렸지만,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면접만 세 번을, 그것도 면접관이 계속 바뀌면서 봤던 ‘U 대학교’나 ‘J 컨트롤’의 면접까지는 아니더라도, ‘G 시설관리’ 역시 그 회사들 못지않은 대기업인데… 처음엔 그냥 건물 관리실 할배가 한가해서 장난치나 보다..라고 생각했었지.
그러더니, 이틀이 지나고 실제로 오타와 본사에서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 관련 서류 및 추천인 명단 제출을 요청하는 전화더라구 (추천인 서류제출은 보통 최종 확인단계인데, 여기까지 오게 되면, 이전 회사에서 딱히 중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채용이 확정되었다고 보면 되거든).
알고 보니, 내가 지원했고 앞으로 담당할 건물은 국세청 등 캐나다 연방정부 몇몇 부처가 입주해 있는 빌딩이었는데, 그래서, 보다 구체적인 범죄기록 조회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나 참. 캐나다 와서 처음으로 열 손가락 지장을 모두 등록했네. 그리고 또, 나중에 들어보니, 추천인 체크를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 인사업무 전문기업에서 했다고 하더라구. 느닷없이 큰 스케일에 이게 다 뭔 일인가 싶더라.
G 시설관리 회사에서 관리하는 빌딩 – 내가 앞으로 일해야 할 빌딩은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었는데,, 그곳으로 출근하기 위해서 전철 개찰구를 지나면서, ‘아… 이제 다시, 내 돈을 내고 출근을 하는 시대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그동안 트레이드 일을 하면서 답답한 상황도, 너무 바빠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회사 차량 덕택에 그래도 출근 교통비는 굳었었는데, 이제 교통비만 한 달에 $200 가까이 들게 된 거지. 그러고 나니 지난 5년간의 일들에 대해 어쨌거나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전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서울 직장을 출근하면서 중산층 진입을 꿈꾸는 회사원이 된 것 같아서 설레는 마음 가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