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사나 다들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 테고, 물론 이 회사 역시 예외는 아니야.
먼저, 끊이지 않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들이 참 답답 하게 만들고 있지. 사실, 회사 입장에서 볼 때 건물 시설 관리 계약 자체는 그다지 수익이 남지 않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자꾸 새로운 리노베이션이나 프로젝트와 같은 수익사업을 만들어내려는 것일 테고, 고객인 연방정부 입장에서도 예산 집행이나 고용 창출 및 지역 경제 활성화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텐데, 하지만, 한 사람의 납세자 입장에서 볼 때는, ‘세금을 너무 방만하게 쓰는 거 아닌가 …’ 싶을 때가 많더라. 가장 만만한 구실은 최근에 유행하는 ESG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에 조응한다는 건데, 멀쩡한 사무실을 다 뜯어내서 새로 집기를 교체한다든지, 깨끗한 벽도 새롭게 벽지를 바른다든지 하는 일들이 꾸준히 있었어.
그리고 또, 건물에서 일하는 시설 관리 기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왠지 프로젝트를 한번 하고 나면 꼭 건물에 문제가 발생하더라구. 멀쩡한 사무실 한 층 전체를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공조시설을 건드려 온수가 역류하는 일도 있었고, 에어컨을 옮기다가 DDC 시스템이 다운되는 적도 많았었어. 기존 화장실 수도시설을 뜯어낸 후 최신식 움직임 감지 수도꼭지를 달아놨는데, 보증기간이 지나자마자 고장이 나더라. 센서 문제인지 밸브인지, 아니면 전력계통인지 알 수가 없는 거야. 최신 장비라서 현재 건물에 여벌 부품도 없고. 도대체 뭘 위한 리노베이션인지 모르겠는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개인적인 불만으로는, 2년 반 가량 이 건물에서 일하고 그동안 자격증도 하나 땄는데 뚜렷한 급여 인상은 아직 없는 거야.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이 직업의 업무 중 하나가, 비상사태를 대비해 현장에서 대기하고 시스템을 계속 점검하는 일이어서 그냥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주요 직무 중 하나인데, 단지 내가 이런 종류의 업무에 익숙하지 못한 것일 뿐일 수도 있지만, 일반 트레이드의 노동강도로 환산해 볼 때 하루에 약 2시간 내외 만의 육체 노동이 필요한 셈이거든. 말하자면,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 자리를 없앨 수도 있다는 거지.
물론, 연방정부로부터 정부청사 관리 계약을 수주할 때부터 내 임금을 포함해서 견적을 냈겠지만, 적어도 내 능력으로 만들어낸 성과가 얼마인지,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하는지가 회사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업무실적이 경제적 보상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 거였어. 이 직업을 계속 한다면 내 능력과 성과가 어떻든 간에, 난 견적서에 쓰여 있는 만큼만 돈을 받을 것이고, 급여 인상을 원한다면 회사 내에서 다른 직종으로 옮겨야 하는 거였지.
드러내 놓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업무상 질환을 고백 하자면, 처음 몇 달 동안은, 갑자기 앉아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체중이 급격히 늘더라. 그리고 고정된 자세로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너무 오래 보고 있다 보니 목 디스크도 왔다. 물론, 단지 업무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후로 신경을 써서 식사 양을 줄이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몸을 일부러라도 움직이는 등 노력을 하게 되더라.
또 다른 업무상 질환은… 나도 모르게 자꾸 완장질이 몸에 배는 거였어. 아무래도 고장 수리나 프로젝트 진행 등 때문에 트레이드 기술자 들과 같이 일하는 – 그들을 감시 감독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마냥 우쭐하게 되더라구. 처음 여기 일을 시작할 때는, (나 역시 막 얼마 전까지 출장 수리 일을 해왔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건물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온 배관공이나 전기기사 들을 대하는 팀장의 태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거든.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갑질 – 완장질을 강요하는 팀장의 지시가 무척 곤혹스럽기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어느새 그런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고 놀라게 되었지.
반백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감독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워. 내가 살던 때의 한국은 (신세대니, X세대니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권위주의가 팽배했었는데, 사는 동안 그걸 혐오할 줄만 알았지 다른 대안을 찾을만한 기회가 영 없었으니까. 또 개인적으로, 다른 팀원들을 이끌고 협업을 해온 경험보다는 나만의 재주와 기술로 혼자서 일해온 경험이 더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 뭐 사실, 나뿐만 아니라, 워낙에 리더십이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히딩크 리더십’, ‘정은경 리더십’, ‘펭수 리더십’ 등을 공부하는 것이겠지.
아무튼, 팀장처럼 상대 트레이드들을 무시하거나 공갈을 치면서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해서 얕잡아 보이거나, 트레이드들의 엉성한 일 처리를 보고도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보니까 저절로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가더라. 예전에 ‘D 식품’에 다닐 때, (사장의 아들인) 서비스 부사장이 항상 무표정-포커페이스로 일관해서 사람들의 험담을 종종 듣고는 했었는데, 이제 내가 그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더라. 그 역시, 다른 사람의 업무를 감독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딱히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던 거야.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라든지, 동종업계 평균보다 적게 받는다는 사실이 천천히 스트레스를 주긴 했었는데, 일 자체가 너무 편하긴 해. 근무시간 짬짬이 공부를 하거나 이렇게 글을 쓸 만큼이나 여유가 있는 거야. 팬데믹 경제에서 물가가 천정부지 치솟고 내 수입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곤두박질했지만, 그리고 팀장과의 갈등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한번 이렇게 편한 일을 시작하고 나니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할 듯 싶더라.
그러던 중, 이전에도 정유회사나 식품가공업체 등에서 시설 관리 일을 많이 해 온 직장 동료의 얘기를 들어 보니까, 원래 이 직종 자체가 이렇게 한가하다고 하는 거야. 매일매일 관리해야 할 기계들을 꼼꼼하게 점검만 하면, 무슨 비상사태가 터지지 않는 이상 평소에는 원래 이렇게 여유로운 분야라고 하더라구. 그러고 보니, 밴쿠버 종합병원이나 BC 질병관리센터의 그들도 아주 한가해 보이긴 했었어 (다시 강조하지만, 이 한가하다는 감정은 아주 상대적인 것으로, 바로 직전까지 정신 없이 바쁜 트레이드 직종에 있었던 내 기준에 따른 것이지, 보편적으로 놀고 먹는 직종이라는 뜻이 아니야). 그래서 용기를 내 몇 군데 다른 직장에 이력서를 내보기도 했지만, 아직은 현 직장에 머물고 있어.
일을 바로 시작하고 나서도,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났어도, 여전히 나는 건물 시설 관리 팀의 막내야. 막내 대우를 받고 막내가 하는 일을 하는 거지. 급여도 제일 낮고 그만큼 가지고 있는 책임도 제일 적어. 아직 당직 대기 리스트에도 들지 않았고. 파워 엔지니어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어.
건물 시설 관리라는 건, 사실 교과서나 시설 관리 매뉴얼에 나온 그대로 되는 법이 없고, 공식적으로 기록 에는 안 남겨두지만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통하고 있는 어떤 비밀 사항들 같은 게 많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그 모든 것들을 숙지하기 전까지는 막내가 될 수밖에 없는 거야. 마치 병장을 달고 나서야, 행정관들만 알고 있는,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부대 내 물자나 병기들의 상태에 대해 다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다 보면 금세 팀장이 은퇴하고, 나 역시 당직근무 리스트에 들어갈 만큼 건물에 익숙 해질지도 모르겠다. 하긴 뭐, 당장 내년에는 다른 직장을, 혹은 아예 또 다른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고. 하지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이제는 좀 나만의 (‘리더십’이라고 하긴 낯 간지럽고) 훈장질 / 완장질 스타일을 찾고 싶다고 생각해. 안타깝게도 ‘저거다!’ 싶은 본보기를 아직 겪어본 바가 없으니까 내가 직접 망가져가면서 만들어낼 수밖에 없겠지. 앞으로 있을, 수많은 시행착오의 피해자가 될 각종 트레이드 기술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뭐,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려고 해. ‘아차’ 하는 순간에 ‘휘릭’ 하고 괴물이 될 수 있는 직업이니까. 그런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