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

새벽에 일어나 아침 7시까지 이것저것 하다가 다시 잠이 들어 11시 다 되어서 일어났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정말로 시차적응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2년 전만 해도 팔팔하게 잘 다녔는데… 하긴 그 때는 매일 같이 밤 늦게까지 돌아다녔었고 밤에는 매일 술을 마신 후 잠에 들었기 떄문에.. 잘 적응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젊을 떄가 좋았지… 라는 식의 타령 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 “오늘은 바로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내일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오늘은 바로 훗날 내가 그리워하던 젊었을 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운동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서 계속 젊게 살려고 해야겠다.

3월부터 한달간 머물 아파트의 주인 킴의 전화를 받고 느즈막히 일어나 재빨리 씻고 나갈 준비를 한다. 어제 의외로 많은 일들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다운타운에서 몇가지 서류업무를 보려고 한다. 사회보장번호도 받고, 카드 신청도 하고, 의료보험도 신청하고.. 자동차 운전면허도… 등등… 가능하면 밖으로 나가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대중교통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떄문에 밖으로 나가야 하는 업무는 하루에 몰아서 처리하는 것이 이득이기 떄문이다. (아무래도 차를 장만하기 전까지는 이런 잔머리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근데.. 도대체 주유소는 어디에 있는 거지?)

일단 관련 서류며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는데 딸기가 화장실에 가려고 난리를 친다. 사실 침대에서나 방에서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닌 것만 해도 기특하기 그지 없지만.. 이 동네는 화장실 바닥에 하수구가 없기 때문에(그리고 공동이 쓰는 화장실이기 떄문에) 가능하면 밖으로 나갈 떄 문제를 해결해주면 고마운 것이다. 결국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딸기는 화장실 바닥에 한 바가지 쏟아붓고.. 아내는 투덜대며 치우기 시작한다. 바빠서 아침은 못먹을 것 같다. 일단 딸기만 밥을 주고 우린 재빨리 준비를 하며 나선다.

딸기는 이곳이 얼마나 좋을까? 떠나기 전에 장인어른께서 가족들에게 “얘네들 개 교육시키러 이민 가는 거야”하며 농담을 했었는데.. 정말 아침부터 이렇게 계속 같이 잔디밭 길을 걸어다녀도 된다니 꿈만 같을 거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식당에서 청소하는 할머니 조차도 일단 가방 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지만 귀여워 했다) 귀여워 해주니… 경쾌한 딸기의 발걸음을 뒤에서 지켜 보고 계속 따라 나선다. 어느덧 E.Hastings St. .. 바로 이곳이 아내가 싫어하는 unpleasant zone이다. 노숙자들이 경찰청으로부터 무료 급식을 받는 도서관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길거리에 누워있고 쾡한 눈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E.Hastings가 그런 것은 아니다. W.Hastings 접경에 있는 곳만 그렇고 나머진.. 그냥 그런 황량한 거리이다. B&B의 관리인 게이꼬가 알려준 unpleasant zone을 피해갔지만, 사람들이 별로 없고, 여기저기 문을 굳게 닫은 상가들을 보고 아내는 여전히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보기 싫은 광경이야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 어디서든 마추칠 수 있는 것이기 떄문에, 그런 일로 굳이 우리가 갈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W.Hastings에 있는 싱클레어 센터에 가서 일단 SIN 카드 신청을 하기로 한다. 뭐.. 큰 문제없이 잘 처리 되었지만.. 의료보험을 만들 수 있는 MSP(Medical Service Plan)의 경우는 다운타운에 있는 사무실이 폐쇄되었다는 정보를 듣는다. 아내가 전화를 해보니 왠만한 신청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일단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가기로 한다. 그전에 일단 식사를 해야겠지.. 건물 아래에 있는 푸드코트 중국식당에 가서 탕수육, 동파육, 아채데침, 볶음밥 세트를 먹는다. 우리 나라 돈으로 5천원 남짓한 돈으로 둘이서 먹어도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이 나라의 음식값이 싼 거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건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다른 식당보다 이런 푸드코트가 여러모로 편하다.

이곳의 튀김요리는 정말 지존이다. 지존.. 지난번 여행 떄도 느꼈던 건데.. 정말 맛있다. 어제도 KFC의 신상품 양파너겟을 먹었지만.. 모든 걸 떠나서 방금 꺼낸 튀김 맛은 비교거부였다. 밀가루가 맛있어서 그런가?? 가장 가능한 추정이다. 일단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밀가루들은 대개 몇 달간 바다에서 푹푹 썩어서 온 것들이니까.. 환상의 탕수육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난 후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간다.

다운타운의 운전면허 발급소는 대법원과 같이 있다. 주소만 달랑 들고 갔다가 이곳 경찰이 막아서서 운전면허는 옆으로 가라고 가르쳐 준다. 갔더니 담당 할머니가(이곳의 공공기관에는 정말이지 근무자 중 여성이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50%는 노인들이 현직에 종사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영사관이나 공증소에서 운전면허를 번역한 후 공증을 받아오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2년 전에 랜딩한 사람들은 한국면허증만 제출하면 그냥 캐나다면허증으로 교환해주었다는데 이민법이 바뀌면서 여러가지가 달라진 것 같다. 다시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여기 전화번호도 차선배가 가르쳐 주었다. 정말 우리가 이 땅에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위치를알아낸 후 그쪽으로 또 걸어간다.

놀랍게도 영사관 업무는 수수료가 필요했다. 물론 캐나다에 이민올 때에도 Landing Fee라고 해서 인당 80만원을 내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간사한지라 공항에 도착한 후 여러가지 공공기관업무를 보면서 무료로 처리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런데 교민들을 상대하는 한국 영사관에서는 캐나디안 달라로 수입인지를 만들어가면서 까지 수수료를 챙긴다. 공증료 인당 3불.. 복사를 하려면 종이를 사야하는데 종이값은 장당 25센트이다. 흐음… 놀라운 일이다. 다행히 IT강국 답게 인터넷은 공짜로 쓸 수 있도록 단말기를 공개해두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아내는 여기서 의료보험 업무를 함께 본다.

참… 두번 말하면 잔소리가 되는 말이지만.. 여성과 남성이 일을 하는 스타일은 정말 다르다. <비빔툰>이라는 만화를 보면, 다운이라는 아이와 함께 물건을 사러 가는 아빠와 엄마의 차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먼저 아빠가 엄마한테 다운이랑 같이 간장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엄마는 다운이와 함꼐 동네 강아지와도 인사를 하고, 친구들과도 인사를 하고, 풀잎과 꽃, 곤충 들도 구경하고.. 다운이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해서 돌아온다. 그럼 아빠가 엄마한테 “뭔 간장 하나 사가지고 오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 메주를 쑤어 오나?!” 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다음에는 엄마가 아빠한테 간장 심부름을 시킨다. 다운이는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구경하고 싶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그런데, 강짜를 부리는 다운이의 팔목을 끌고 가는 아빠의 머릿속에는 가게에 도착할 때까지 간장 간장 간장 뿐이다. 간장을 사자 아빠의 머릿 속엔 집 집 집 밖에 없다. 결국 집에 도착하면 간장은 무진장 빨리 사왔지만 다운이는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다. 엄마가 아빠한테 “무슨 간장 하나 사오는데 애를 그렇게 울리고 그래?!”라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뭐가 더 나은 방법인지.. 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이런 업무 스타일의 차이로 좀좀 대립이 생긴다. 오늘도 그렇다. 난 일단 영사관에 갔으면 먼저 운전면허 업무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도 이것저것 눈에 띄는 대로 일을 처리 했다가 나중에 2가지나 업무를 누락시키게 되었다. 첨부터 순서대로 시간에 맞춰서 하는 것이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아내는 공짜 인터넷이 눈에 띄자 모든 걸 팽개치고 의료보험 신청을 한다. 게다가 의료보험 홈페이지가 로딩이 늦어지자 우리 홈페이지에 가서 게시판에 올린 글들을 읽고 좋아라 한다. 그리고 나 보고도 와서 같이 보라고, 메일 확인도 하라고 한다. 난 일단 운전면허 번역작업을 하고 공증을 받는다. 아내는 의료보험 신청이 인터넷으로 안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우편으로 신청을 해야겠다며 관련 서류들을 준비한다. 시간은 3시에 가까워 간다. 어제도 SIN 업무가 3시 30분이 지났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또 슬그머니 초조해진다. 아내는 서류작성을 하다가 뭔가 궁금한 점이 생겨서 또 다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나는 필요서류들을 영사관 민원실 복사기를 이용해 복사를 한다. 1장에 25센트다. 비싸다고 아내에게 얘길 했더니 “아휴! 그럼 여기서 하지말지!!”라고 해버린다. 도대체 그럼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은 무슨 시간낭비인가? 양면 복사를 해서 뽕을 뽑았다고 아내를 안심시킨다. 3시를 넘어섰다. 빨리 서류를 챙겨 나선다. 아내는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서 가자고 한다. 참다 참다 아내에게 살짝 일을 할 떄 한가지씩 하자고 얘기 했다가 결국 말다툼을 한다. (사실 말다툼을 하면서도.. 내가 보기엔 아내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이해시킬 방법이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이건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남녀의 대립인 것이다.

결국 우편으로 의료보험신청을 하고.. 다시 운전면허갱신소에 갔더니 어이없게도 PR카드를 받은 후에 오라는 얘길 듣는다. 참.. 나.. 내 방식의 가장 큰 단점은 이거다. 한가지만 목표로 죽어라고 하다가 그것에 배신당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는 거.. 아내에게 미안해져서 스타벅스 커피를 사주겠다고 한다. 아내의 말로는 이곳 스타벅스의 가격이 서울보다 싸다고 한다. 오늘의 커피가 $1.66.. 스타벅스는 세계적으로 가격이 같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의 커피 가격은 매장 매니저가 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드럭스토어를 찾아 찬거리를 좀 마련해가려고 했더니 의외로 없다. 결국 숙소까지 와서 사거리 잡화점에서 햄버거용 참깨빵과 독일 감자 샐러드, 바바리안 소시지를 사 먹는다. 게다가, 이런!! 육게장 사발면이 이런 모퉁이 구멍가게에도 있다니.. 99센트의 저렴한 가격에… 감동을 하면서 냉큼 집어 올린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재빨리 끓여 먹는다. (그것도 집 밖 테라스에서… 흐음.. 어둑해지는 저녁에 거리풍경을 보며 테라스 벤치에 앉아 먹는 사발면이라..)

이것저것 하다보니 9시가 가까워졌다. 오늘은 왠지 제 시간에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 있는 책을 집어들고 읽어본다. 프렌차이즈에 관한 책들.. 숙소 주변 안내서들… 무사히 10시를 넘겨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12시에 깼다. 4시에도 깼다. 5시에또 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