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밴쿠버 국제 영화제

역시 밴쿠버인지라, 영화제 하나를 해도 동네 학예회 수준으로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프로그램은 한달 전이 되도록 개막작도 정해지지 않았었고, 극장도 단 하나의 상용 극장과 서너개의 아트센터에서 번갈아가면서 상영을 했다. 극장 시설도 후줄근 해서 <괴물>을 볼 당시 거의 5백명이 넘는 관객이 한꺼번에 봤는데, 그 옆 화장실에는 달랑 변기가 두개가 있어서, 영화가 끝나자 저 끝 매점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야 했다. 뭐 어쩌랴… 이렇게 소박하게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이 동네의 정서인 것을… 나름대로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애착을 가져주는 수 밖에.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20대 초반은 어찌나 그렇게 영화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을 수 있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밥은 굶어도,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타면서, 걸어 걸어 시네마 데크들을 찾아 다니곤 했었다. 사당동의 예술의 전당, 안국동의 프랑스 문화원과 일본 문화원, 남산의 독일 문화원을 설치면서 다녔고, 각 대학 영화제에서 재미있는 영화제를 하면 열심히 보러 다녔으며.. 한국에서 심의가 나지 않았거나 수입이 안된 외국 유수 영화 비디오를 돈 받고(!!) 틀어주던 (지금도 그런 공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엔 시네마 데크라고 했었는데) <영화사랑>, <영공1895> 등등… 그러고 보니까, 나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영화를 좋아했던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어떻게 한 자리 씩을 해먹으면서 자국 영화 점유율 50%인 한국영화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뭐 지금의 나로서는.. 벌써 밴쿠버 이민 4년차이지만.. 올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밴쿠버 영화제라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것도 예전 처럼 다른 나라의 신비한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어>로 대사를 치는 영화를 보며 좀 편하게 즐기기 위해서라는 불순한(!) 의도로 찾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 제 3세계 영화, 아니 비한국어권 영화는 아예 볼 생각도 가지지 않았다. 여간 재밌는 영화가 아니면 한편에 돈 만원씩 들여가며. 그 열악한 환경에서, 영어자막과 함께 볼 생각이, 열정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요즘은… (한국어 영화조차 단편 영화는 보지도 않았다는 –;;)

좌우간, 이민 첫해에는 돈이 없어서 가질 못했고, 이듬해에는 섬에 갇혀있느라고 가질 못했으며, 3년차 때에는 새로 잡은 직장에 충실한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쳐 버린 밴쿠버 영화제에서, 올해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3편의 한국영화였다.

괴물
한국에 갔을 때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봤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영화들을 자주 발견할 수가 없어서 예전에 봤던 영화들을 계속 반복해가면서 보게되는데, 이 영화 만큼 두번째 볼 때가 지루한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유사품인 <에일리언>이 되었든, 한국영화 가 되었든.. 모두 너무도 짜임새가 훌륭해서 다시 봐도 다시 봐도 감탄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어이없게도 지루하기 이를 떄가 없었다. 너무도 장르의 원칙에 충실해서 그런 것이 아닐지… 그러다보니 아주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마음에 남는 잔향은 약한 것 같다(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징하도록 좋았지만). 굳이 구분을 하자면, <박찬욱> 류의 영화보다는 <강우석> 류의 영화에 가까운 영화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떠나서, 왜 이렇게 헐리우드 영화와 똑같은 영화를 굳이 이런 싼마이 영화제에서 상영을 하려는 것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 내에서야 영화 마케팅을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냥 변방의 영화 중 하나일 뿐인데… 헐리우드를 닮은 변방 영화를 누가 굳이 보려고 할까(하지만 700석에 가까운 좌석이 3회 상영 전회 매진 되었답니다)

예의없는 것들
다시.. 왜 헐리우드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영화를 누가 굳이 영화제에서 보려고 한다고 기대하는 것인지.. 특별한 스토리가 없이 싼마이 인생을 사는 주인공 한명의 개성으로 끌고 가는 영화가 한참 유행일 떄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 지났군. 타란티노를 선두로 해서, <트레인스포팅>, <락스탁 투 스모킨 베럴즈>, <케미컬 제너레이션> 등등.. 그 당시에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구미의 문화조류를 잇는 영화가 극동에서 만들어졌다고 찬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 지금은 좀 아니지 않은가 싶다. 이미 장진 사단의 <묻지마 패밀리>, <킬러들의 수다>가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해변의 여인
세편의 영화중 비한국인들의 관람이 가장 많았고, 그들의 호응도 가장 좋았던 영화다. 홍상수의 영화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영화제 상영작스러웠고,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가장 진지하게(정숙하게 본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떠들고, 팝콘 먹으면서 봐도, 보고 나서 서로 영화에 대해 논의도 하는) 봐서 더욱 호응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감독은 <극장전>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이전의 스타일로 다시 돌아간 듯해서 좋았다. 뭐 그래도 첫 세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에 비해선.. 여전히 힘이 빠져 보이지만..

끝으로…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왜 이리 영어 번역이 개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편에 몇 십억씩 들여서 만들어놓고, 그런 사소한 것에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 세계시장을 포기하는 것인지… 정말 내가 막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이 또 다른 하나의 창작이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을 텐데.. 최소한 시나리오 각색 정도의 수고와 비용은 들일 각오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지. 더우기 연출의 치밀함 때문에 <봉테일>이라고 불리우며, 웰메이드 상영영화의 기틀을 잡았다고 하는 한사를 받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조차 감독이 관리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오역이 남발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영화 감독들이 자기 영화 영어번역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자기가 직접 번역을 할 수 없어도 자기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고 있는지 감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영화제를 다니는 영화감독들이 하는 얘기가, 외국 사람들이 웃는 부분과 한국 사람들이 웃는 부분이 다른 것에 재미를 느낀다고 곧잘 얘기들을 하는데, 그건 그대들이 번역을 엉망으로 해서 그렇다고 진실을 말해주고 싶다.

<해변의 여인>이 끝나고 어떤 백인 할머니가 다가와서 우리에게 주인공의 직업이 영화감독인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제야 알겠다는 미소를 짓더니, “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부를때 ‘Director Kim’이라고 해서 무슨 별명인줄 알았어”라고 한다. 그렇겠지… 우리가 사람을 부를 때 이름보다는 그 사람의 직책으로 부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어… 뭐 그래도 영화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그네들이 이해해줄 떄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좀 그네들의 정서에 맞게 번역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지… 최소한 “Mr. Kim”이라고만 해도 괜찮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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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 (2006-10-09 01:53:28)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을 찍은 사람이 1200명인데 괴물은 본 사람이 1300명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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