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 / 드라마들..

비열한 거리

정말이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 조인성을 내세워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만, 그리고 영화감독 친구 캐릭터를 넣어 뭔가 다르게 보이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떻게 잘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3류 깡패가 조직의 배신으로 처참하게 죽는다는 이야기. 어쩌면 이런 상투성은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 이후로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지 모르겠다. <초록물고기>가 절찬을 받을 때에도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한국 영화 평단은 깡패영화라면, 것도 책상물림 출신 감독이 만든 깡패영화라면, 리얼리즘이다 뭐다 하면서 조금 접어주고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싸움장면은 짜증이 날 정도로 지루했다. 왜 그리 사람 때리는 장면을, 그것도 전혀 재미없게 찍어놓고는.. 그걸 그렇게 길게 편집을 하는지…기본적으로 싸움장면 줄이고, 빤한 스토리 대충 정리하면 20분 안으로 축약될 수 있는 영화다.

아치와 씨팍

99년에 처음 기획된 이후로 구구절절 사연을 품고 간신히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뭐 처음의 싼마이 저예산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된 것에서부터 많이 달라졌지만, 초과된 예산은 작품의 퀄리티를 증진시키는 것에 집중되어서 사용된 것인지, 품질 수준만으로 놓고 봤을 때 ‘극장판’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내용도 썩 재밌는 편인데, 문제는 이런 종류의 코미디를 웃고 즐길만한 대상들은 애니메이션을 돈주고 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다시 말해서, 애초부터 몇몇 젊은 성인관객층을 대상으로 기획된 작품인데, 품질을 높이려고 제작비가 올라가는 바람에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게 된 작품이다. (사실 7년이라는 전체 제작기간을 놓고 보면 절대로 많은 예산이 들어간 영화가 아니다. 단지.. 역시 한국 애니메이션이라서, 공부하면서 만드는게 힘들었던 것일 뿐이다.)그렇다면.. 결국 살아남을 길은 해외배급 뿐인데.. 아쉽게도 영어자막이 그리 훌륭하지 못한 편… 정말, 나라도 팔 걷고 나서서 영어자막 다시 만들어서 해외 배급을 도와주고 싶은 아쉬운 영화다. 분명 해외에서도 충분히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루즈체인지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있거나, 사건 배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다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무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누가 그랬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왜 그랬을까’와 이 사건으로 인해서 ‘누가 가장 이익을 봤을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 그런 질문에 대해 훌륭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정도로 과학적인 분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낮은 것을 보면, 참…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버텨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뭐… 부시가 재선되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디파티드

양조위, 유덕화 주연의 홍콩영화 <무간도>가 헐리우드 리메이크판으로 만들어진다니!!… 그것도 리얼리즘 깡패 영화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다니!!… 게다가 ‘잭 니콜슨’까지 나온다니!!.. 아마도 그 소식만으로 열광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는 연출에 배우들의 호연만 돋보이는 영화였다. 물론 전작 <뉴욕의 왕>에서 처럼 아일랜드계 깡패들과 이탈리아계 깡패들의 반목을 적절히 가미해서 ‘스콜세지 영화’처럼 보이려고는 했지만, 왠지 <뉴욕의 왕>과 <애비에이터>이후 이 사람 영화는 뭔가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리 따져봐도 잘 만든 영화임은 틀림없지만, 왠지 걸작이다라고 추천하기가 힘든… 그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로버트 드니로’처럼 자신의 페르소나로 만드는데 실패를 거듭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시대극을 몇번 하다가 현실감을 잃어서 그런건지.. 어쨌건 그 예전의 치열함 속에서의 코미디를 잊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환상의 커플

재밌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 몇 편을 봤을 때는 여주인공의 배역설정이 그리 호감이 가지 않은 관계로 좀 보다 안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꽤 괜찮게 만든 트렌디 드라마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몇 가지가 아주 새롭게 느껴졌는데, 몇 장면 나오지 않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캐릭터가 너무나 리얼하다는 점.. 이제껏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제외하고) 이렇게 돈을 밝히는 초등학교 선생님 캐릭터가 적나라하게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정치가, 성직자, 언론까지 그 추악함이 공공연하게 등장하는 시대에서도, 왠지 (만만치 않게 현실적인) 초등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은 그 동안 저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못되고’ 돈 많은 여성이 ‘착하고’ 가난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사랑에 빠지는 설정도 드물었었던 것 같다. 이제 ‘카리스마’와 ‘미소년’의 시대를 넘어 드디어 ‘착한 남자’가 선망받는 때가 오는 것인지…

결혼 못하는 남자

최근에 본 몇 편의 작품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심각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주인공 남성은 잘나가는 건축 디자이너로서 (가정에서 가장 노동의 집중성이 높은) 주방을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설계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사람이다. 주인공 여성은 원만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을 가진 동네 종합병원 의사로 환자 뿐만 아니라 동료 직원들에게도 신망을 받고 있다. 뭐.. 그리고 이렇게 다른 성격을 가진 둘이 티격태격하면서 상대에 대한 감정을 키워나간다는 것이 이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직업과 거기에 걸맞는 성격설정이었다. 다시 말해 ‘만들어 내는 사람’과 ‘치료해 내는 사람’의 대립이 무척 흥미로웠던 것이다.

건축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그걸 먼지 하나 없이 관리해내는 사람이다. 맡은 일이 있으면 완벽하게 처리해내며 조금의 실수나 태만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관심은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의사는 항상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들의 사정에 관여한다. 그가 사는 세계에서는 ‘완벽한 사람’ 혹은 ‘완벽한 치료’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결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다른 사람들과의 융화를 통해서 조금씩 보완해 나간다. 그는 자기 자신과 함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실수를 하더라도 포용해내는 성격이다.

이 둘의 철학에 가장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것은 바로 ‘오코노미야키’(즉석 부침개)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였다. 자신의 건축설계 철학을 남들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고집을 피우는 건축가에게,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그 일로 곤란해지는 사람이 있기에) 의사는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렇게 한바탕 말다툼이 끝나자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 앞에 있던 부침개가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서 재밌는 것이, 건축가는 당연스럽게 타버린 부침개를 (실패작이라고 하며) 버리려고 하고, 의사는 어떻게 탄 부분만 걷어 내면서 먹어보려고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성격묘사를 기가 막히게 해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인가? 뭔가 만드는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했고, 그전에 창작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을 10년간 꾸며 자랐는데, 지금은 뭔가를 고치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성격은 이렇게 고치는 일에 과연 적당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만드는 일을 꿈꾸고 있는가… 애초에 뭔가 사회 부조리들을 고쳐보면서 사는 게 귀찮아서 나라를 등지고 떠났는데, 여기 와서 다른 사람들의 고장난 기계들을 고쳐주며 사는 것은 위선적인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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