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다 이민자들 탓!!

얼마 전에 2년 정도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밴쿠버로 돌아 온 친구와 오랜만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밴쿠버에 점점 늘어나는 강력범죄율과 교통난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사례를 들면서 ‘정말 걱정이야’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입에서 “이게 다 이민자를 너무 많이 받기 때문이야”라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친구 역시 이민자이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친구의 남편과 시아버지가 2대째 연방경찰로 일하고 있는 터라, (아니길 바라지만) 그 의견이 가족의 영향을 받았다면, (정말 아니길 바라지만) 그 가족의 의견이 회사 동료들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 나라의 백인 경찰 공무원들의 이민자에 대한 입장이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철없는 나의 즉각적인 반박에, 그 친구는 (자기나 우리와 같은) 한국 이민자를 포함해서 이야기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고, 실제로 인도계 이민자와 베트남계 이민자가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써리’ 지역의 강력 범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각 인종의 인구수 당 강력범죄 비율을 따져 보면 여전히 백인의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장 우리가 ‘써리’에 살고 있을 때만 해도,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서 원조교제를 하다가 걸려 1달간 TV에 얼굴이 실린 친구도 백인이었고, 성인용품점에서 종업원 강간을 하거나, 여자친구가 도망갔다고 총질을 하다가 잡힌 친구도 백인, 캐나다 역사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지금 재판 중인 사람도 백인, 얼마 전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루었던 BC의 가장 악명 높은 차도둑 리스트에도 대부분 백인, 지난 해까지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서, 나한테 스노우 보드나 골프채 등을 팔려고 했던 장물아비 이웃사촌도 죄다들 백인이었으니, 아무리 이곳의 인구 50% 이상이 백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민자 때문에 범죄가 늘어난다는 점은 실증적으로 수긍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의 저변에는 다른 인종에 대한 뿌리깊은 경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물론 이런 경시는 기본적으로 우국충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내가 한국에서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여성에 경시, 돈 없는 사람에 대한 경시, 힘든 일을 하는 직업에 대한 경시, 나이 적은 사람에 대한 경시 등에 비해 그 정도나 빈도 모두 현저하게 적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성격의 문제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한국에서 겪었던 것과) 복합적으로 등장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있는 동네의 경우 나름 부촌으로 이란계 이민자가 많이들 모여사는데, (회교 혁명시 자산을 모두 싸들고 도망왔을 것만 같은) 몇몇 이란계 고객들이, (백인)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에게 매우 모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니다. 그리고 역시, 백인 고객들 또한, 자기가 얼마나 높은 사람들을 알고 있으며, 시간당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 바쁜 사람인 줄 아느냐 따지면서, 스페셜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하자면, 인종차별은 단지 “차이점에 대한 존중의 결여”에 대한 문제 만이 아니라, 그 “차이점을 바탕으로 서열을 매기고 (자신들의 기준에) 낮은 서열에 대한 거침없는 멸시”를 기저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의 안전을 걱정하는 점잖은 인종차별이라 할지라도 본질은 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니 도대체 왜 그게 다 이민자 탓인가? 인프라에 비해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게 이민자 탓인가? 많은 조사결과들이 이민자들의 자본과 노동력의 유입으로 인프라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도? 굳이 연관을 짓자면 이민 자본과 노동력을 통한 성장이 있는 만큼, 그 성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 안전장치가 덩달아 성장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쉽게 예를 들자면, 예전에는 1억원에 살 수 있던 집이 지금 십억은 줘야 한다. 경제의 활황으로 일자리가 많아지고 급여 수준이 올라간 것은 좋지만, 집 값이 뛰고 있는 것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가 성장을 하자 당연스럽게 노동강도가 강해진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금융과 부동산과 같은 자본 집적의 산업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게 되자, 소규모 상인들과 일반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한다. 예전에는 대충대충 즐기면서 살아도 별 생각없었는데, 지금 보니 떼돈을 빌려 집을 사고, 또 그걸 평생 일해서 갚아 나가지 않으면 영원히 대열에서 낙오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사정이 이러니 성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심정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우윳값을 걱정하는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밖에 나와 담배를 하나 물면서(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담배들을 피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담배값 비싼 이 나라에서..), 언제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팍팍해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이렇게 복지가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이민자 탓인가? 자본 중심의 부동산 시장이 급성장한 것이 이민자들 탓인가? 엄연한 의회가 존재하고 기업과 시장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먹고 살기 바빠서든, 놀고 먹기 바빠서든.. 아님 영어가 안되서든) 현실적으로 사회나 시장 정책 결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이민 1세대 들에게 왜 혐의를 씌우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돈과 노동력을 이용해가면서 거침없이 부를 축적해가는 한 편, 신자유주의의 조류를 타고 복지 정책을 과감히 줄여가는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최소한 3~4 세대 전에 토착민들을 쫒아내고 자리를 잡은 <영국 왕정 충성파>들 아닌가?

좌우간 이런 편견과 빈곤의 악순환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여기서도 누가 지하철에 화염병을 던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뱀꼬리 하나,

적어놓고 보니… 간단한 말을 오해받기 딱 좋게 쓴 것 같군요. 지우려다가… 것도 일이라… 변명으로 정리를 하자면,

1. 밴쿠버에서 발생하는 최근 사회문제의 원인을 이민자의 증가에 원인을 돌리는 의견이 존재하는데,
2. 이는 이민자의 천국이라는 이곳 캐나다에서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분명한 인종차별이고
3.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은 혼자만이 아니라 여타의 ‘신분차별’과 성격과 행동을 같이 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적대행위이며
4. 최근 사회 문제의 원인은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못잡기 때문이라고 봐야 맞지 않을까?

뱀꼬리 둘,

이렇게 잘난 척을 했지만 저 역시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미국 만세 영화를 수도 없이 본 사람이라, 지하철에서 검은 터번을 휘두르고 각진 수염을 기른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바로 옆에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인형같은 아가씨가, 연신 욕을 해가면서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나를 더 괴롭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죠.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조건 반사가 나오더라도… 최소한 부끄러워 합시다. 그리고 그런 어처구니 없는 감정이 비인간적인 짓이라는 걸 거듭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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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성 (2007-03-03 01:09:09)
역시 지구상에 어딜가나 인간이란 종족들이 모여사는 곳에서는 항상 부조리가 생기기 마련인가 보네…… –; 역시 사바세계는 어쩔수 없는 것인가? (절망… 또 절망…. ㅜㅜ)

두성 (2007-03-03 01:12:14)
다시 생각해보니 인간을 탓하는 것은 역시나 보수적인 생각인것 같군. 진보주의자는 항상 시스템을 직관해야 하지…. 역시 문제는 지금 이 시스템 바로 이 자본주의, 이 죽일놈의 신자유주의가 아닐까? (내 말이 너무 단순하다면 용서하게나)

MADDOG Jr. (2007-03-10 16:16:40)
글쎄.. 체제가 바뀐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에 평등해지진 않을테고… 굳이 “품성”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자기와 다른 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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