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와 삶의 질

2001년 부터 쭈욱 업데이트를 해오던 개인 홈페이지가 있는데, 이러 저러한 이유때문에 모든 글과 사진들을 대기업 블로그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몇 천개에 달하는 글과 사진들을 단순히 copy – paste 하는 일이니 얼마나 지겹겠냐마는, 간만에 옛날 일들을 하나씩 들추어 본다는 기분으로 즐겁게 하려고 하고 있다.

 

뭐.. 홈페이지라는 게 그렇듯이 대부분 즐거운 일들만이 쓰여있어서 그런 건지.. 어쨌든.. 6년 전에 한국에서 살았을 때가 지금보다 삶의 질이 훨씬 높았던 것만 같아서 … 좀 우울해진다.

 

남들은 밴쿠버가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1위다 뭐다 하며.. 좋겠다고 부러워 하고.. 자국에서 잘 나가던 지위를 모두 버리고 온 같은 독립이민자들 조차도, 밴쿠버 동네 슈퍼에서 일하는 것이 자국에서 변호사나 대기업 생활보다 삶의 질이 더 높다고 하는데, 왜 나는 전혀 여기서의 삶의 질에 대해서 만족을 못하는 건지..

 

도대체 뭐가 그 높은 삶의 질이란 말이냐.. 이민 오기 전 TV에서 한 이민자 가정을 소개했는데, 두 부부가 밤에는 건물 청소를 다니다가, 아침에 자고 낮에 일어나서 같이 골프를 치러가는 것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었다.. 뭐 그 때야.. 이민병 중증이었으니 그랬지만… 사실 우린 골프 안좋아한다. 모든 주위 사람들이 왜 밴쿠버에 살면서 골프를 안 치고 스키를 안 즐기느냐고 이상해 하는데, 비교적 싸다고해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걸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점에서 골프와 스키가 대중화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삶의 질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다.

 

내가 개인 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책 읽고 영화 보는 일.. 물론 영어가 완벽해 진다면야.. 이곳의 훌륭한 도서관 설비가 삶의 질의 기준이 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걸 맘껏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 되질 못하고, 아직은 영화도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빌려서 영어 자막과 함께 보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 말인 즉은, 역시나 언어장벽이 나에게 있어서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건가?

 

뭐 꼭 100% 그것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초 생활 경제도 크게 다르다. 동네 편의 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먹거나 동네 식당에서 3천원 짜리 순대국을 사먹는.. 그런 즐거움이 없다. 길거리에서 떡볶이 2천원어치 사먹고 풍족해지는 그런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이곳엔.. 극장만 해도.. 한국에 살 때는 8시에 하는 2천원 짜리 조조할인 영화를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보러 갔었다. 천원 미만의 교통비로 극장에 가서 극장 옆 편의점에서 5백원 짜리 삼각김밥 2개씩 사서 아침을 해결하고 영화를 본 후에 집에 오곤 했고, 가끔은 극장옆 롯데리아나 맥도널드에서 2천원 미만의 햄버거로 아점을 먹기도 했다.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극장요금이 세금포함해서 만원에 달한다. 가면 허접한 핫도그나 팝콘들은 4~5천원에 판다. 버스를 타고 극장에 가면 최소 2천원씩은 든다. 1인당 5천원 수준으로 즐기던 영화를 여기선 2만원 정도 들여야 즐길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재작년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친구가 보여준 뒤로는 극장에 가보질 못했다. 아… 작년에 밴쿠버 국제 영화제에 갔었나? 그건 예외로 치고..

 

그 외에 (한국) 책을 빌려 보거나 외식을 하거나 ..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는 모든 일들이 모두 3배 이상 비용이 든다. 실제로 6년전 한국에서 벌었던 돈의 2배 넘게 (둘이 합쳐서) 벌지만, 생활 비용이 이렇게 되다보니 연신 쪼들리며 사는 형편이다. 물론 10% 정도 내던 세금을 여기선 25% 넘게 내고 있고, 돈이 굳던 전세 생활이 여기선 매달 주택융자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의 삶의 질을 위해 즐기던 문화 생활에 대한 비용이 너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더 벌더라도… 세금 꼬박꼬박 내고 비싼 주택 융자 이자를 갚아 나가는 월급쟁이 생활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내게 있어서 삶의 질이란… 얼마나 재미있게 살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과연 밴쿠버가 나에게 재미있는 도시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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