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밴쿠버 국제 영화제

여전히 썰렁하고 엉망인 진행에 한숨만 나온다. 둘째날 아침 10시에 놈놈놈 상영이 있었는데, 극장 문을 안열어서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려야 했고, 여기저기에 줄을 막무가내로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 자원봉사자들은 사전교육 없이 온 거라 물어봐도 나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부산 영화제에서 저런식으로 진행했다간 시의회에서 당장 청문회 감일텐데. 아무튼 그래도 영화제 덕택에 일년에 한번씩이라도 극장에서 한국 영화 보는 게 어디야. 결론부터 말해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우린 액션배우다>에 별을 몰아주고 싶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감독 김지운, 2008

영화 보는 내내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붕붕 날라다니고 총질해대는 영화만 보면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나 재미없는 영화.. 어쩌면 저렇게나 많은 훌륭한 배우들을 데리고 저렇게 뻔하디 뻔한 쌈질 영화를 내어 놓을 수 있는지. 전작 “달콤한 인생”에서 이미 알아봤지만, 김지운은 장르 영화의 반복적인 관습에서 – 그 보다 장르영화의 뽀다구에서 – 전혀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나름 즐기고 있다. 그러니 죄다 어디서 한번쯤 본 장면과 내러티브가 반복할 뿐이다.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이만희의 만주 웨스턴을 존경하는 의미로 몇 장면을 차용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내 이름은 튜니티> 류의 코믹 웨스턴의 클리셰들이 더 많이 차용된 듯 싶다. 특히 마지막에 석유가 나오는 장면은 딘 마틴과 알랑드롱 주연의 <강 건너 텍사스> 마지막 장면과 거의 유사하다

우린 액션 배우다. – 감독 정병길, 2008

Action Boys 라는 거창한 영어 제목으로 부터 피가 튀고 뼈를 끊는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이, 중간에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최소한 1/3 은 나가게 될 것이라는 내 예상을 깨고, 영화를 보는 내내 소수의 관객이나마 열렬하게 지지를 하도록 만들었다. (굳이 ‘영화 현장’을 다룬 영화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생생한 삶의 모습, 땀냄새가 날 정도로 인물들의 삶에 가까이 가 있는 카메라가 좋았고, (몇 년간 백수로 살면서 비디오 감상으로 소일한) 감독의 연출능력도 아주 훌륭했으며, 감각적이고 재치있는 편집도 아주 좋았다. 그리고 이제껏 내가 본 한국 영화들 중에 가장 번역이 매끄럽게 되어서 이곳 현지 관객들의 좋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다크 나이트>, <월-E> 와 더불어 내게 있어선 올해 최고의 영화.

도쿄! – 감독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 2008

아마도 프랑스와 일본에서 합자를 해서 이 영화를 기획했을 때엔 나름대로 세계에서 천재 감독들이란 소리를 듣는 젊은 감독들을 모아 ‘동경’판 <뉴욕 스토리>를 만들어 보자.. 그런 생각이었을 듯 싶다(하지만 일본 감독이 없다는 건 좀 의외). 그도 그럴 듯이 저 마다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 전작들이 국내외적으로 찬사를 받았던 적이 있는 감독들이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봐서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심심한 옴니버스 작품이 되고 말았다.

미셸 공드리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이야기의 전개나 여주인공의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운 면이 있었서 좀 불친절했다고나 할까? (아님 불성실했다고 해야 하나) 암튼 얘기에 비해 분량이 좀 부족한 느낌이었고, 레오 까락스의 [Merde!]는 탁월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데니 라방>의 연기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대규모 스팩타클 특수 촬영은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고, 느닷없이 나타난 변호사와 처음으로 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너무나 지루했다.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너무나 말랑말랑한 연애이야기. 어쩐지 잘 빠진 뮤직 비디오 하나를 본 느낌. 왜 봉준호의 영화는 갈수록 세련되어지면서 동시에 재미가 없어지는 걸까? 그나저나.. 아… 과연 <아오이 유우>의 바닥까지 끄집어낼 수 있는 연출자는 없는 것인가?

1 thought on “27회 밴쿠버 국제 영화제

  1. 딸기네집

    어.. 사실 집에 좀 일이 있어서 들어간 거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안그래도 지난번에 이관이랑 통화하면서 대충 알고는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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