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y Music

1981년이니까, 내가 4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각 나라에서 마치 관광사업을 벌이는 것 마냥 별의별 국제행사를 개최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데,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라든지, 미스 유니버스 선발 대회, 국제가요제 등등 정체모를 행사들이 국가예산을 동원해서 개최가 되었었고, The Nolans의 “Sexy Music”도 그 해 동경 국제가요제에서 소개되어 전세계에 유행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한가로운 저녁.. 어머니, 누나와 같이 뭔가를 먹으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 얘기, 친구들 얘기 등등을 하다가, 당시 학교에서 친구들 간에 유행하던 Sexy Music이라는 노래에 대해서 얘길 꺼냈는데… 이건 뭐.. 이유불문하고 어머니께 정신없이 야단을 맞았다. 사실 그 때만해도 공공장소에서 “섹시”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주 민망하거나 천박한 일이었고, 어떤 사람(여성)에게 “섹시하다”하면 당장 성희롱이라고 간주되었던 시절이었으니.. 4학년 짜리 아들내미 입에서 느닷없이 섹시..뭐라는 단어를 나온 것을 들은 어머니 입장에서는 “정신이 번쩍 나도록” 훈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해서 그 뒤로 우리 집에서는 “쎅쎅 오렌지주스” 사달라는 얘기도 못하게 되어서 항상 “봉봉 오렌지주스”만 먹게 되었다는 슬픈 역사를 말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던 모든 일을 집에서 얘기할 수는 없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은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어른 들과 얘기할 때는 할 얘기 안할 얘기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어른이 지나가던 아저씨가 되었든, 자길 낳고 길러주던 부모가 되었든 말이다. 물론 살다 보면, 그 누구와도 자신의 맘을 100% 공유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래도 믿고 있었던 부모와, 믿고 있었던 자식과, 언젠가 진심이 담긴 대화를 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2년 만에 만난 조카는 어느 부분인가 확 달라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랄 나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걸 내뱉는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대화도중 왠지..핵심으로 갈 듯 갈 듯하다가 이리저리 엇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얘가 날 오랜만에 만나서 서먹해서 그런가.. 했는데, 이제 그런 걸 알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어른들과는 말을 가려서 해야한다는 것을 알 나이가.

처음에는 내가 그런 어른(꼰대)이 되었다는 사실과, 또 자신의 진심을 쉽게 열지 않는 상대가 또 하나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펐지만.. 뭐.. 결코 그런 걸 깨닫기엔 조카가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이기도 하고.. 또 사람은 그렇게 그런 식으로 부모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힘내라 내 조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네가 대화를 닫기로 한 계기가 된 그 말이 불과 십여년 후에는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에 하나가 되어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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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Sexy Music

  1. 트니맘

    벌써 캐나다로 돌아가신거에요?
    맞아요.어렸을땐 섹시라는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 였는데 어느순간부터 변한건지
    모르겠어요.
    전 요즘 길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 피워대는
    여자 특히 학생들을 볼때마다 넘 놀라워요.
    우리나라 말세다 싶고 저것들 커서 뭐되겠나 싶고
    그러다가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싶어서
    흠칫하기도 하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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