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Mexico All inclusive 후기 (Grand Sunset Princess) #8

여드레째

오늘도 무지 복잡한 꿈을 시리즈로 꾸면서 잠에서 깬다. 이제 집에 갈 날이다. 아침을 먹고 짐을 싸야겠지.. 라고 생각 하기도 싫은 일정을 잡아 본다. 어제 꽤 밤늦게 잠에 들어서인지, 오늘은 좀 느즈막히 일어날 수 있었다. 아이구야. 아직도 배, 허리, 다리가 땡긴다. 절대적인 운동부족이었던가. 특히 옆구리가 많이 아프다. 그러고보니 옆구리 운동은 딱히 한 적이 없구나, 아니 했어도 제대로 안한 것이겠지. 여기가 땡기는 게 처음인 걸 보면.
느릿느릿 식당으로 항한다. 오늘은 Omar의 휴일이라서 다른 서버가 우릴 맞아서 자신이 맡은 구역의 테이블로 안내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어라.. 여기 테이블엔 거미가 없네.. 그러고 보니 여긴 테이블보가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며칠 앉았던 창가 주변 테이블에는 테이블보가 없었다. 그래서 거미들이 득실했던게 눈에 띄었던가?

별로 식욕이 없어서 샐러드 위주로 담아 요기만 채우고 만다. 딱히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서글퍼서 식욕이 없다기 보다는.. 정말로 비행이 싫다. 요즘은 비행 전이나 탑승했을 때에는 술도 안마신다. 마시고 나면 극심한 갈증과 두통으로 견딜 수가 없다. 압력 때문인건지.. 아니면 낮은 상대습도 때문인건지. 모 광고에 의하면 사하라 사막보다 비행기 안의 습도가 낮다니까…

숙소로 돌아와 잠깐 씻은 다음, 다시 나가서 해변을 한번 더 걸어본다. 쨍쨍한 햇볕이지만 아직 강한 바람이 불고 있어서 빨간 깃발이 여전히 꽂혀 있다. 카리브해 안녕… 괜히 센티해져서 안찍던 셀카도 몇장 찍는다. 그리고는 라운지 풀에 들러서 잠시 앉아 있는다. 이미 양쪽 오두막이나 선베드는 가득 사람들이 차 있었지만, 테이블 옆의 소파는 좀 비어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오.. 생각보다 편하다. 왜 여길 몰랐지? Alicia가 반겨준다. 지난 이틀 동안에는 휴가를 내서 가족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내는 무알콜, 무설탕 모히토를, 나는 그냥 생수를 한 병 마신다. 비행을 앞두고 술을 마실 엄두는 아직 안난다. 그래도 이대로 기대 누워 있자니 우리가 아직까지는 휴양지에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건너편의 커플은 튜브로 만든 에어베드를 물에 띄운 후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좋겠다. 근데 저건 집에서 가지고 온 건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빌린 건가 궁금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깐 눈을 붙인 후, Alicia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좀 다녀봐서 그런지, 특히 캠핑여행으로 단련되어서 그런지, 이제 짐 싸는 거 하나는 선수급이다. 집에 갈 때까지 꺼낼 필요가 없는 짐, 공항에서 꺼내야 하는 짐, 공항 가기 전에 꺼내거나 써버릴 짐 등을 딱딱 구분해서 순식간에 싸낸다. 아직 체크아웃 시간까지는 30분 넘게 남았다. 그래도 뭐.. 먼저 가 보지 뭐.. 하며, 플래티넘 라운지로 나서는데, 옆 방에서 내놓은 룸서비스 그릇들을 코티 한마리와 우리가 예뻐했던 줄무늬 고양이가 함께 뒤지고 있다. 참 여기 동물들은 사이가 좋구나.. 먹잇감을 두고도 경쟁을 안 하네. 이것도 남국의 여유인가? 하지만 추접스러운 건 어쩔 수 없구나.. 등등 생각을 하며 고양이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근데 까였다) 리셉션에서 정산이 밀린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Checkout Pass라는 걸 끊어주는데, 이게 있으면 . 체크아웃을 했더라도 공항버스 타는 시긴 전까지는 시설물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메인 빌딩에 가서 짐을 맡기고 나서 자유시간을 가지면 된다고 한다. 마침 메인 빌딩으로 향하는 셔틀이 있어서 재빨리 잡아탔다.

메인 빌딩 선셋 로비로 가 보았더니, 마침 토론토행 비행기에 탑승할 승객들을 버스가 싣고 있었다. 게다가 항공편 탑승 예정자 두 명 정도가 아직 도착을 안했는지 이름을 소리쳐 불러대고 허둥지둥 정신이 없다. 첫날 여기 올때 우릴 버스로 실어다 주었던 (그리고 술을 팔았던) 친구를 발견해서 붙잡아 물어 본다. 짐은 그 앞 호텔 벨 보이한테 맡겨두면 된다고 하고, 버스 출발 10분 전까진 꼭 정문 입구에 와있으라고 한다. 짐 가방도 맡기고, 샤워장 위치도 파악해 두었고..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자.

리조트에서 마지막 식사인데.. 플래티넘 쪽 식당에 가서 a la carte 로 먹을까 하다가.. 속을 좀 비워두는데 좋을 것 같아서 그냥 메인빌딩 뷔페 식당으로 가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이쪽 뷔페 식당에 메뉴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제대로 즐겨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선셋 쪽 뷔페식당은 1시부터 영업이라서 리비에라 쪽 뷔페에 간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플래티넘 쪽 보다 훨씬 북적댄다. 그러다 보니 테이블을 잡아 앉을 때까지 누구하나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뭐.. 일단 음식을 집으러..

먹지마소 묵지마소

멕시칸 전채요리들

 

여긴 역시 메뉴가 좀 더 다양하다. 파스타 종류도, 소스도 더 다양하다. 페튜치니 면에 마늘, 올리브유만 가지고 볶는 알리오올리오를 주문한다. 그 옆 섹션에 시금치 페타치즈 샐러드가 있어서 같이 섞어 먹으니 제법 괜찮았다. 아내도 올리브 오일 소스에 페스토를 살짝 넣은 파스타를 먹는다.  아침부터 별로 식욕이 없어서 한 접시만으로 충분했다. 인터넷 리뷰를 보면 여기 피자에 관한 악평이 넘치던데.. 역시 명불허전. 호기심만으로 하나 집었는데.. ㅎㅎ 수수께끼를 하나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피자를 가장 비싸게 먹는 방법은? 멕시코로 날아와서 먹으면 된다는 거’.. 아내는 그 후로도 멕시칸 야채요리와 과일류를 한번씩 더 받아와서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에 한번 더 가보기로 한다. 가방을 이고 지고 걸어간다. 날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ㅎㅎ 이렇게 마지막날 해변산책을 하는구나. 가는 도중 크리스털을 만나서 인사를 한다. 어느 식당이 좋았는지, 그들은 언제 돌아갈 예정인지 등을 얘기 나눈다. 플래티넘 라운지 로비에 가서 비치타월을 빌린다. 제법 빗방울이 거칠어졌다. 이 비를 계속 맞으면서 가는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아쉬운 마음에 해변으로 향한다. 아니나 다를까, 해변 비치체어들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간헐적으로 빗방울이 거세지는데 어쩔 땐  바람 때문에 초가지붕 파라솔 옆으로 비가 들이친다.  왼쪽 선베드는 젖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아내와 각각 다른 파라솔 아래에서 각기 오른쪽 선베드에 자리를 잡는다. 바람은 거세지만, 구름은 끼었지만, 이런 날일 수록 카리브해의 색깔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단 철수. 가는 길에 라운지에 들러서 고양이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 라운지 풀장엔 사람들만 가득하고, 고양이들은 어디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비치타월을 반납한 후 메인 빌딩 쪽으로 향한다.. 거기에 비를 피하면서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있을지 알이보러 간다. 마침, Gym 근처의 아일랜드에 테이블과 소파가 빈 걸 발견하고 자리를 잡는다. 주변에 술병이 나동그라져 있는 걸 보니, 바로 좀 전 까지 누군가가 고성방가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의자에 뭔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음.. 집에 갈때가 되니 우울하긴 우울한가보다. 4시 30분까지 선셋빌딩 로비에 공항버스를 타러 가야하니, 4시까지만 여기서 삐대 보기로 한다. 어이구… 정말 할 일 없이 노는데 왜 이리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음악 듣고 글 좀 썼다고 벌써 네시다.

로비 가장자리에 있는 샤워장에서 양치질을 하고 옷만 갈아 입는다. 드디어 샌달을 싸 넣어버린다. 조용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좀 아쉽다. 난 오늘은 술을 안마시기로 했으니, 아내에게 마지막 모히토를 즐기라고 권유한다. 한 손엔 500ml물병과 한 손엔 무가당 무알콜 모히토가 든 텀블러를 들고서 공항행 버스를 탔다.

올 때는 밤이라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우리 숙소가 있던 곳은 리조트들이 여기 저기 모여 있는, 말하자면 관광특구 같은 곳이었다. 리조트 단지를 나서서 한참 동안이나 다른 민가나 상업지구는 전혀 안보이고, 가끔 주유소나 하나씩 보인다. 몇몇 리조트 단지는 높은 담에 철조망으로 둘러 쌓여 있다. 정문을 보지 않고 옆에서 보면 교도소 건물로 착각하기 딱 좋다. 그러고 보니, 시간 정해서 식사 공급 되고, 외부출입을 (어떤 이유에서든) 쉽게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딱히 감옥과 다를 바도 없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출발한 이날, 이 리조트가 모여 있는 관광특구 Playa del Carmen의 어느 나이트 클럽에서 총기난사가 있어서, 클럽에서 열리던 뮤직 페스티벌에 스탭으로 참여하고 있던 캐나다인 한 명을 포함 5명이 숨졌다고 한다.

깜빡 졸고 나니 벌써 공항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재깍째깍 시키는 대로 해서 첫 버스를 타서 그런지, 항공사 체크인 부스에 우리 앞으로 라인업이 하나도 없었다. ㅎㅎ 이런 일도 있네. 첫번째로 보딩 패스를 끊는데, (레귤러 석 중에선) 거의 제일 첫 열에 있는 자리를 받는다. 멕시코의 경우 비자가 필요없고 입국시 체류허가증(immigration card)을 받는데, 이걸 출국시 반드시 반납해야 한다더니 체크인 할 때 항공사에서 그냥 떼어가 버린다. 이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별탈없이  지나간다. 45분이 넘게 기다린다는 출국검사도 무지 쉬웠다. 여긴 겉옷 같은 건 별로 신경도 안쓴다. 랩탑도 꺼낼 필요가 없었다. 보딩패스와 여권 보여주고, 가방 X-Ray 통과 시키니 끝이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리 Cheesewiz를 뿌려 먹는 건지..

공항내 패스트 푸드점 요리가 리조트 요리보다 맛있었다. 특히 요 케사디야..

그래서 모든 걸 마치니 6시 정도. 7시반 부터 보딩이라고 하니까 한시간 반 정도 남았다. 면세점에서 아내 회사 동료들을 위한 초콜렛 선물을 사고, 술 구경도 하고, 식사제공이 안되는 항공사를 타는 거라서 미리 허기도 좀 채워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외노선 출국장에는 죄다 햄버거, 아니면 미국계 프랜차이즈 식당 뿐이어서 다시 국내선 출국장으로 돌아가 이곳 로컬 패스트푸드 식당으로 보이는 곳을 찾았다. 식당 이름도 ‘Guacamole’ ㅎㅎ. 나초와 베지터리언 케싸디야를 주문했는데, 오랜 만에 이렇게 갓 만들어준 음식을 받으니 조금 감격이었나, ㅎㅎ. 리조트에선 뷔페에서도a la carte에서도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음식들을 미리 만들어 두었었다. 그러고 보니 오믈렛이 가장 정성스러운 요리였구나.  근데 나초는 이번에도 Cheesewiz에 흠뻑 덮여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치즈를 빼달라고 하는건데.. 쩝.

밥을 먹고 나서니 얼추 보딩 시간이 되었다. 짐을 탑승장으로 옮겨 놓고 안내판을 다시 확인 하는데, 아직도 밴쿠버로 돌아오는 Sunwing은 몇번 게이트에서 탑승해야 하는지 결정이 안되었다. 그래도 보딩패스에 A8이라고 적혀있어서 그 쪽 대기석 앞애서 짐 정리를 다시 했다. 탑승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안내 방송도 없고.. 아니 방송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칸쿤 공항의 장내 방송은 정말 개미 소리 민큼 작다. 휴가를 마친 사람들, 칭얼대는 아이들 때문에 주변도 시끄러워서 더더욱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는 도중, 누가 어깨를 톡톡 두들긴다. 허걱. 올 때 옆좌석에서 오지랖을 떨던 그 마플 할머니였다. 내 어깨를 두들기며 한다는 말이 ‘우리 저쪽 게이트로 가란다’라고 한다. 와… 고맙긴 무지 고마웠지만.. 정말 오지랖 짱입니다.

게이트를 옮기고도 한참을 기다린다. 이곳 공항에서 장고 끝에 배정한 게이트가, 마침 다른 항공기로 입국하는 사람들 행렬이랑 겹친 것이다. 와.. 뭔 놈의 컨트롤 타워가 이러냐. 어쩌면 이렇게 빠짐없이 비효율적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전 세계의 공항이 이제 이렇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기사에서 봤더니  항공노선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서 정시출발 도착률이 낮아졌다고 한다. 암튼 15 ~ 20분 정도 더 기다리란다. 한참 짜증을 내고  있자니, 옆에서 아이들과 씨름을 하던 다른 가족들이 말을 건다. 밴쿠버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느 숙소에 묵었는지, 어디가 더 좋았는지.. 아직 이 공항에 있는 사람들에겐 휴가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들뜬 마음을 가지고 와글벅적 떠들어대고,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면서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을 반추한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 날 출근길 정체를 뚫고 자기 책상에 앉아도, 이들 마음 속에서는 당분간 휴가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탑승을 마치고, 비행기는 출발한다. Sunwing의 조종사는 항상 급발진이다. 항공모함 전투기 편대 출신 파일럿들인가.. 부아아아앙 하고  미끄러지듯이 비행기가 뜨더니, 올 때 봤던 멕시코의 교통정체가 저 아래에서 다시 반짝인다.

내가 다음에도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고싶을까? 글쎄.. 역시 그건 취향의 차이이다. 품팔이 하면서 더 싸고 좋은 품질의 쇼핑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코스트코가 추천하는 상품을 집어오는걸 더 좋아하는것 처럼.. 일단 비용적인 면에서 볼 때 과연 싼 것일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리조트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120% 이용한다면 더 싼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즐겼던 것은 무제한의 술공급도, 무제한의 뷔페 음식도 아니었다. 수영도 즐기지 않았고… 그냥 해변이나 풀장에서 비치 체어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잠에 들거나, 산책을 하거나,.. 주로 그런 거 였으니까… 우리에게 과연 비용 효율적인 휴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쿠바의 바라데로.. 비슷한 퀄리티, 어메니티의 4.5성급 일반호텔(올인클루시브 리조트는 어메니티 때문인지 등급 설정을 실제보다 좀 높게 하는 듯)에서 7박을 한다고 했을 때 항공권 포함해서  $2500내에서 가능할 것 같고, 하루에 괜찮은 식당에서 식사로  $150 정도 식비로 쓴다고 했을 때, 이게 한 천불 정도.. 결국 비용면에서는 비슷하다는 결과다. 물론 돌아오자 마자 미친듯이 외식을 해댔던 것은 리조트 음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만이 쌓였던 거겠지. 그래서 밴쿠버로 오자마자, 제대로 된 중식, 제대로 된 맥주 등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의 100% 스트레스 프리 였다는 점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더 비용 효율적인 휴가를 위해 뭔가를 따져본다거나, 본전 생각을 한다거나 그럴 필요가 전혀없었다. 그냥.. 아무 계획없이, 아무 고민없이.. 푹 쉬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다. 거기에 가장 큰 미덕이 있다. 암튼… 이번 휴가 처럼 그렇게 계획없이 생각없이 쉬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듯 하다.

어이구야.. 이놈의 비행은 끝나질 않는 구나. 좌석 위치는 좋았지만 좁은 건 어쩔 수 없다. 출발도 늦긴 했지만, 캘로우나 중간 경유 포함해서 거의 8시간 반정도 걸린 것 같다. 캘로우나에선 날개에 얼음이 생겨 그걸 녹이느라 또 지체 된다. 날개에 얼음이라니.. 캐나다에 왔구나. 다리가 퉁퉁 부어 신발에 발이 안 들어간다. 근데 Sunwing에서는 물도 잘 안준다. 컵이 다 떨어졌다고 뭐라 그랬던 것 같은데.. 좌우간 캘로우나 경유 후에는 좌석에 좀 여유가 생겨 그나마 어깨는 펴게 생겼다.

밴쿠버 도착하니, 새벽 2시반 정도.. 우린 체크인한 짐도 없다보니 또 일착으로 나온다. 도착장에 나오니 일군의 아이들 (20대 초반?)이 격하게 반겨준다. 환영한다며 포옹을 한다. ㅎㅎㅎ 이런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기에 밴쿠버가 아직 살 만 한 거 겠지. 알고 보니 혼자 칸쿤에 놀러 갔다 온 친구를 마중 나온 아이들이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연착에 연착을 거듭한 이 비행기를, 이 새벽에 기다리고 있느라고 얼마나 지겨웠을까..ㅎㅎ 그러다가 우리가 도착장으로 나오니, 칸쿤에서 오는 비행기인지 확인하고 반갑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막상 공항 밖으로 나오니 Jetset장기주차장으로 가는 셔틀 정류장을 찾으려고 해맨다. 한참을 찾다가 공항직원에게 물어보니 정류장은 국제편 도착장에서 길을 건너 건너, 그러니까 Hourly 주차장 입구 근처에 있었다. 그렇다고 Jetset이라고 간판이라도 달린 것도 아니고, Courtesy Shuttle Parking이라고 써있다. 그러니까 공항 셔틀이 아닌 다른 모든 셔틀, 호텔, 장기 주차장 등등의 셔틀이 정차하는 곳이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아냐고..  작은 안내판 하나라도 붙여놓으면 뭐 큰일이라도 나는가? 참.. 나.. 이곳에 14년을 살아도 이렇게 정보제공에 있어서 불친절한 걸 보면 역시 캐나다다.. 싶기도 하다.

출발하는 날..  우리 차를 주차해둔 장소 사진을 찍어뒀는데, 설레는 마음에 확인도 안하고 그냥 셔틀에 올라탔더니..  사진이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는다. 막상 필요한 정보인 주차장 구역 정보가 뿌옇게 촛점이 나가 있었다. 이게 D인가..E인가.. 아무리 봐도 H같다. 근데 주차장엔 H 구역은 아예 없다. ㅋㅋ.. 셔틀에서 D에 내리려고 하다가 그냥 E까지 가본다.. 근데 D 였네. 또 짐을 끌고 지고 꾸역꾸역 걸어간다. 셔틀 기사는 우리가 뭐하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ㅎㅎ

새벽의 밴쿠버 도로는 정말 한산하구나.. 3시 15분쯤 주차장에서 나와 4시쯤 집에 도착했다. 눈은 녹아서 운전에 불편은 없었지만, 추위는 가시지 않는구나. 아직 영상 1도 정도 였다. 휴가 가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청소를 해두고 갈 필요가 있을까 했는데, 막상 집에 도착해 깨끗한 집을 보니 기분이 좋다. 일단 빨래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해야 겠다. 그리고 전기장판을 켜고 좀 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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