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토피노 6

밤새토록 화장실로 출퇴근을 반복했더니 굳이 오늘 아침엔 화장실 때문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구나. 배탈의 순기능이네. 대충 정리하고 아침에 커피를 만들어서 마시다보니 아내가 오늘 아침에는 울프인더포그 Wolf in the fog에 가보자고 한다. ‘토피노 가 볼 곳’ 혹은 10 things you must do in Tofino 라고 구글 검색을 해보면 반드시 순위권에 오르는 토피노 다운타운에 위치한 레스토랑인데, 방대한 칵테일 셀렉션으로 유명한가 보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데 식당이라기 보다는 펍 같은 느낌. 그래서인지 브런치 영업을 하는데에도 전망 좋은 2충 테라스는 닫아놓고 바가 있는 1층 테이블에만 손님을 받았다.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게 훨씬 편할지는 몰라도 널널한 2충이 뻔히 쉬고 있는데도 따닥따닥 붙어 있는 1층 테이블에 몰아 넣어지는 건 그다지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이 집 브런치 메뉴는 뭐.. 컨티넨털 브렉퍼스트나 프렌치 토스트 등 꽤나 정통 아침 식사 메뉴여서 유지방에 탈이 난 뱃 속을 달래기 힘들었 것 같아, 하나 특이해 보이는 요리 – 한치 튀김과 페퍼민트 차를 주문하고, 아내는 해산물 차우더와 빵을 주문했다. 차우더는 도무지 맛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쪽으로는 쳐다 보지도 않았는데, 아내의 첫인상은.. Sobo가 훨씬 낫다!! 빵은 매우 탔더군.

한치 튀김은 잘게 썬 양배추 샐러드 + 이탈리언 드레싱과 같이 나왔는데.. 으음.. 미묘했다. 흩뿌린 실란트로는 개인 취향으로는 이탈리언 드레싱에도, 한치 튀김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듯. 음.. 뭐.. 관광지에 가면 이렇게 과대평가 된 식당이 하나 쯤은 있는 법이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그런 식당 쯤은 골라낼 줄 아는 줄 아는 선구안이 생긴줄 알았는데..

어제 꼴랑 하루 날이 좋더니, 오늘도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원래 유명 트레일 한 곳을 돌까 했다가.. 이번 여행의 컨셉은 멕시코야…라는 아내의 의견에 500% 동의 하면서 느릿느릿 주변을 돌아 다닌다. 그나저나 속은 아직도 더부룩하니 불편하기 그지없다. 어디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는 것도 끊임없이 냄새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기념품 가게를 보러 다니다가 카약 가이드 투어를 해주는 곳을 발견했는데 아내가 들어가 보더니 오늘 예약은 이미 다 찼다고 아쉬워 한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그 카약집에서 같이 경영하는 커피샵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그곳은 마침 카약 투어에 참여하기 위한 대기석이자 실내 교육이 진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어떤 식으로 투어가 진행되는지 무료 오리엔테이션을 꾸준히, 아주 줄기차게, 비가 그칠 때까지, 계속 감상했다. 그리고 결국 다음날 오후에 예약을 잡고만다. 오..ㅋㅋㅋ 내일은 간만에 카약이다. 예전에 몇차례 2인용 카약을 타고나서 싸웠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절대 각자 1인용을 타자고 한다. 타 보고 재밌으면 겨울에 세일할때 하나 사자고 하다가, 그러면 도대체 어디다 둘거냐고 하는 둥,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가 비가 잦아들자 다시 길을 나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Kuma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저기 로컬 아트샵이나 돌아다니자고 한다. 아내는 마음에 드는 티셔츠를 하나 사고, 난 트레일러에 붙일 스티커를 두 개 샀다. 그렇게 3시 반에 Kuma가 오픈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돌어다니다가, 결국 마지막 5분을 못참고 식당 파티오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 오픈 간판을 걸러 나온 웨이트리스가 날 보고 깜짝 놀랐는데 가볍게 인사하고…

지난 번에 왔을 땐 점심 메뉴 중에선 카라아게만 먹고 나왔는데 김치-삼겹살 돈부리가 매우 궁금했었다. 마침 유지방 과다 섭취로 속이 뒤집어지던 중이어서 뜨끈한 사케와 함께 얼른 주문한다. 아.. 또.. 뜨거운 술이 들어가니까 위장이 따끔따끔해진다. 아.. 좋다.. 곧이어 나온 김치-삼겹살 돈부리는 반숙 달걀과 양배추 샐러드와 같이 나오는데 (비록 삼겹살은 딸랑 한조각이 나오지만).. 으허헝.. 간만에 김치랑 계란에 밥 비벼 먹으니까 눈물 나오려구 해. 김치의 유산균으로 뱃속의 유지방이 녹아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으흐흐흐허허헝.. 김치덮밥.. 날 다 가져요..ㅠㅠ. 지난번 프루비오에서도 백김치 느낌의 절인 배추쌈 요리가 있었고 다음날 가게 될 타코피노 푸드트럭에서도 김치-돼지고기 베이스 타코 그링가가 있던 걸로 보아, 김치가 북미 젊은 힙스터들에게 건강식으로 조금씩 인정을 받아가는 느낌이다. 타코피노는 김치를 직접 자기들이 담가 만든다고.

오늘은 일찍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조금 쉬었다가 저녁놀을 구경하기로 한다. 윤종신이 마지막으로 녹화에 참여했던 ‘라디오 스타’를 보고나서 천천히 해변으로 걸어 내려갔다. 아.. 뭐..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 저녁놀은 매일매일 다르구나. 날이 잔뜩 찌뿌려 해가 어디로 지는지도 보이지 않지만, 해가 넘어가기 직전 하늘이 최고로 붉게 물든 때가 되면, 롱비치 특유의 갯벌도 붉은 하늘을 그대로 반사해낸다. 사는게 즐겁고, 인생이 명랑해지면 작가에게서 좋은 글이 더이상 안나온다던데, 이렇게 멋진 저녁 하늘이 있는 동네 마다 화가들이 많이 사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글과 그림은 창작 방식이 조금 다를지도.. 아니면, 아무리 자기가 근사한 시각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문학이 되었든 회화가 되었든 간에 예술적 창작 욕구는 또 다른 인생 경험으로부터 충동질 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해가 완전히 넘어 가고 캠프 사이트로 돌아 와서 마지막 캠프 파이어를 즐긴다. 어제 유클렐레 시내에 가서 잡아온 불쏘시개용 박스들이 훌륭한 역할을 했다. 별이 보이는 걸 보니 내일은 맑을 에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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