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토피노 8


오늘도 7시 반쯤 저절로 눈이 떠진다.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좀 걱정했었는데, 아직까지는 하늘이 잔뜩 찌뿌려졌을 뿐, 빗방울 떨어지는 건 없다. 그래도 비 맞으면서 캠핑을 철수하는 것 만큼 찝찝한 건 없으니 미리미리 집에 갈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커튼들 다 뜯어내고, 콘덴세이션 다 닦아내는등 대청소가 되어 버렸다. 뭐.. 이렇게 또 2년만에 큰 청소 한번씩 해주는 거지 머. 캠핑 철수시 짐 싸는 요령은… 뭐 딱히 없다. 무조건 빈자리부터 채워 넣는 것. 캠핑 시작할 땐, 이것저것 금방 쓸 것은 쉽게 손이 닿는 곳에 두는 등 머리를 좀 써야하지만..끝날땐 무조건 채워넣는 것이다. 우산 정도나 맨 나중에 얹어 두는 걸까나

엊저녁을 푸짐하게 먹어서 아침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오늘 아침은 마침 간만에 사발면을 먹기로 한 관계로 신이 나서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날을 잔뜩 찌뿌려져 있고.. 여기에 얼큰한 국물 한모금과 뜨거운 국수를 후루루룩 밀어 넣으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아.. 이걸로 이번 먹거리 여행의 화룡점정이 되는구나. MSG 조미료 광고에서 ‘고향의 맛’이라는 광고 카피를 사용했던 것이 대번에 이해가 갔다. 

어느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캠핑장을 비워 줄 때가 되었다. 이제… BC 페리 특별 프로모션 스케줄로 와서 올 때 승선료를 50불 가량 아꼈는데, 갈 때에도 그 혜택을 받으려면 저녁 5시 반 페리를 타야 한다. 그때까진 시간이 많이 비는데.. 그래도 일단 50불 정도니.. 저녁까지 어떻게든 기다렸다가 타기로 하고 일단 출발했다. 다행히 악명 높은 4번 국도가 가는 길에는 날씨가 그렇게 까지 나쁘진 않았다. 몇 군데 공사 구간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제법 원활하게 포트 알버니까지 왔다.

포트 알버니는 밴쿠버 아일래드를 종단하는 17번 고속도로에서 나와 토피노로 가는 4번 국도를 타면 중간쯤 있는 도시로.. 나름대로 큰 공장도 있고 산업시설이 있어서 여기까진 도로 사정이 나쁜 편이 아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포트 알버니에 도착했다는 건 이제 어려운 운전은 끝이 났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토피노로 가는 길의 중간 휴양지라는 정체성도 있고 해서 커다란 RV 들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된다. 그러고 보니.. 2006년에 왔을 때에도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갔었구나. 금룡반점도 그대로 있네… 추억여행 삼아 금룡반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어젯밤, 아내가 사전조사를 한 바로는.. 얼마전에 금룡반점의 주인이 바뀌었고.. 그래서인지 더이상 오믈렛과 샌드위치가 메뉴에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막상 가보니.. 창가 테이블과 의자는 그대로인데.. 이렇게나 넓었었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왔을 때가 13년 전이니.. 그 때 내 나이가… 아.. 참 젊었구나. 아니. 내가 지금 많이 늙었구나… 생각이 든다. 그때보다 차도 커졌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다니지만… 더 행복한 평온한 나날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100살 시대면 아직도 한참 더 살아야 하는데…

신금룡반점엔 뷔페메뉴가 생겼다. 이미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 뷔페 트레이마다 그득하다 보니 주인이고 종원원이고 뷔페를 먹으라고 은근히 압박한다. 경험상 이런 시골 중국식당 요리가 그렇게 특별하게 맛있는 것이 없었고, 딱히 후딱 먹고 나가야 하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 뷔페 먹지 머… 이렇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지난 인도식 뷔페에서 아내가 의외로 많이 먹는다는 사실도 알았고.. 

음식수준은… 딱 기대한 만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음식이 냉동식품을 그대로 데워나온 것 같았다. ㅎㅎ 뭐.. 믹스커피도 사실은 대기업에서 최고의 바리스타들을 고용해 레시피를 만든 거라니까.. 냉동식품 역시 최고의 셰프들이 모여서 만든 걸지도.. 그나저나 지난 일주일간 결핍되었던 MSG를 오늘 하룻동안 단박에 보충하는 구나. 그래서인지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한시간 반 정도 더 운전하기 전에 찐한 에스프레소 한잔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곳은 아직도 비가 안온다.  

한블럭 정도 지나자 Mountain View Bakery 라는 빵집이 나왔다. 딱 보기에도 동네 사람들이 득실득실하고, 건강이라고는 전혀 연관되지 않아 보이는 하얀 밀가루 빵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가게 실내에는 “몸무게를 늘리는 것이 유괴당할 확률을 낮추는 좋은 방법이다. 애들 케잌 먹여!”. “절대로 빼빼 마른 베이커 (빵 굽는 사람?)를 믿지마라” 등의 재밌는 격언들이 즐비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고 구석에 편해보이는 의자에 몸을 파묻어 잠을 청해 보았지만.. 졸린데 잠이 안드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 아내는 초코 슈크림빵을 하나 사서 먹더군.  

 아.. 안되겠다. 차로 가자. 차에 가서 잠깐 눈 붙인 다음 운전하자.. 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마침 차를 둔 주차장이 강변이라 원주민 동상이며 이것 저것 볼거리가 많았다. 강에는 만만해 보이는 물고기들이 있는지, 아니면 강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많이 남기고 가서 그런건지, 갈매기들이 여기 저기서 정신없이 저공 비행을 한다. 일단 차로 와 눈을 붙이니 30분이 휙 지나가 버렸다. 아.. 이제 정말 집에 갈 시간이구나.. 

집에 갈 때도 듀크 포인트에서 배를 타기로 한다. 이 항구는 이번에 처음 이용하는데 19번 고속도로 끝단에 있다보니까, 고속도로에서 항구 진입하기, 아니면 그 반대로 항구에서 고속도로 진입하기 너무 쉽다. 특히 트레일러를 달고 운전을 한다면 밴쿠버 섬 다른 어떤 항구보다 운전하기 좋다고 할 수 있겠다. 

페리에 올라 타 어제 남은 부리또를 전자렌지에 데워 먹은 후 뒷자리로 옮겼다. 어떻게 마지막 석양을 볼 욕심이었는데.. 날씨가 워낙 궂다 보니까 7시 20분까지 기다려도 하늘이 붉어질 요량이 안보인다. 에이.. 포기하자 하고 차로 내려 갔더니, 우리 차가 페리 맨 앞에 위치한 터라 오히려 여기서 보는 트와슨의 야경이 더 볼만하다. 도크로 진입하는 페리가 마치 우주선 도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참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으니 왠지 Space Oddity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캠핑 경험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겠지만, 뒷정리가 끝날때까지 캠핑은 끝나는게 아니다. 짐을 다시 나르고, 설거지와 빨래를 돌리고, 아이스 박스를 비우고 음식들을 다시 냉장고로 밀어넣고, 다람쥐의 공격을 받은 음식들을 골라 내어 버리고, 그걸 보고 또 한번 빡치고, 바닥에 흘린 것들을 닦아내고 청소하고… 등등을 하다보니, 벌써 밤이 늦었다. 씻고 남은 맥주들은 마저 마시면서 사진들을 슬라이드쇼로 쭉 본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이지만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들을 반추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여행에 대해 얘길한다. 항상 이런식이다. 뒷정리가 끝나기 전엔 캠핑이 끝나는게 아닌데, 뒷정리가 끝나기 전에 이미 다음 캠핑을 준비한다. 어쩌면.. 13년 전 금룡반점에 있었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이런 무한반복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계속 반복되겠지. 우리 트레일러 뒷쪽엔 지난 캠핑들의 역사로 이렇게 한줄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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