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너도 알다시피, 내가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지만, 어느 한 회사에 진득하니 오래 붙어있는 성격이 아니었잖냐. 애초에 일이라는 걸 처음 접할 때부터 “프리랜서”라는 말에 선망 같은 게 있었고, 벼랑에서 살아 올라오는 자식만을 키운다는 사자의 얘기를 어릴 적부터 줄곧 믿어왔을 정도로 능력주의자였기 때문에, 슬렁슬렁 일하면서 월급날 만을 기다리는 직장생활보다는, 내가 하는 만큼, 내 능력만큼 빡세게 벌고, 그 다음은 내 맘대로 쉴 수 있는 직장을 더 선호했었던 것 같아.

반대로 얘기하자면, 처음 사회생활 시작하고 한동안은, 나보다 훨씬 일도 못하고 게으르고 사고만 치는 사람이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가는 걸 보면 화가 난 적도 있었고, 저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던 철부지였었던 거지. 타인과 내 입장을 계속 비교하면서 내 행복지수를 판단하는 습관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남아있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직장 동료와의 불화 때문이라든지, 또라이 직장 상사 때문에 사표를 던지거나 하는 일은 없어진 것 같아.

그리고 생각해보면.. ‘아.. 띠바… 정말 더 이상 못 다니겠다’ 하며 사표를 던지려는 내 발목을 잡았던 건 번번이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관계였었어. 누군가는 주말에 땀 뻘뻘 흘리면서 산에 올라가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뭐, 그 많았던, 근심, 미움, 후회들이 순간적으로 하찮게 보이게 된다던데, 내 경우엔 정상에 올라가면 금방 내려가는 길 걱정을 또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거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고고한 취미보다는 주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술 마시고 시시한 농담에도 깔깔거리며 웃고… 그렇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왔던 것 같아. 물론 그게 회사의 경영방침을 바꾸거나, 내 업무를 덜어주는 일은 없고, 그저 일시적인 진통제 같은 거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계속해서 취업사이트를 들락거리거나 이력서를 썼었지.

돌아보니, 아르바이트나 단발성 프로젝트 계약직을 제외하고 월급봉투를 받고 연말정산을 하면서 일을 했던 회사가 이제껏 열네댓 군데 되는 것 같은데, 모든 회사를 떠날 때마다 분명한 징후가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 같아.

처음에는 (뭔가 고쳐달라고 요구하기에도 치사하게 보이는) 짜잘하고 지속적인 불만이 먼저 생기더라. 어느 회사에서는 그게 직속 상사와의 관계일 때도 있었고, 어느 회사 에서는 급여가 제때 안 나오거나 불규칙적으로 지급된다 는 것도 있었다.

D 식품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지급한 업무용 전화기가 너무 구려서 서류 작업 (D 식품은 작업 기록이나 업무 시간 청구 등의 모든 서류 작업을 스마트폰으로 하게끔 되어 있었다) 할 때 시간이 너무너무 많이 걸린다는 거였어. 몇 차례 회의시간에서, 혹은 매니저들을 만나서 직접 건의를 해보기도 했는데, 회사는 유지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바꿀 생각이 당장은 없고 2년 약정이 지나면 전화기 교체를 고려해보겠다고 하더라구.

물론, 구린 전화기 성능 때문에 서류 작업이 느려진다고 해서 서류 작업을 하는 동안의 노동시간을 보상 못 받는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지. 전화기가 계속 다운되어서 서류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고, 반복해도, 내가 성격이 좋은 인간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을 거야. 어차피 그걸로 발생하는 비용은 고객이 부담하는 거니까.

그러다가, 회사로부터 직접적인 (업무상 혹은 금전적)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하더라. 일을 하다가 다친다든지, 진급에 누락된다든지 하는 일 말이야. D 식품에서는 둘 다 발생했었는데, 전동 드릴을 사용하다가 실수를 해서 어깨가 돌아간 적도 있었고, 세븐일레븐 음료수 기계를 교체하는데 수십 개 시럽 튜브들의 절단과 연결을 반복하느라 손가락 인대가 망가진 적도 있었어. 아무래도 늙어가는 것도 있고 몸을 쓰면서 하는 일이라 소소하게 다치곤 했지.

그리고, 3년 차 수업을 마치고 와서 급여 인상을 받기는 했는데, 하는 일에 비해, 그리고 같은 일을 하는 다른 기사들에 비해 적게 받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급여를 맞춰달라고 요구를 해보긴 했는데, 3년 차 기사 치고는 많이 받는 거라면서 저니맨 자격증을 따고 오면 더 인상해 주겠다는 뻔한 말만 하더라. 뭐 애초에, 이 트레이드의 어프랜티스 급여 스케줄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자격증 유무랑 근속연수에 의해서 시간당 급여가 정해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업무량은 능력에 따라 배정되었지), 막상 현실로 맞닥뜨리고 나니 저으기 서운하더라구.

또한, 어프랜티스 근무 시간을 70%만 산정해서 등록을 해주는 것도 어프랜티스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BC 주 산업인력공단에 진정을 넣어봤는데, 오히려, 시간 산정은 회사 (Sponsor)의 고유 권한이라는 유권해석만 들었어.

여기에, 과도한 업무로 주말에는 집에서 드러누워 체력을 회복하고 싶었지만, 주말에는 나가 놀기를 원하는 아내와 번번이 다투는 상황이 이어졌고, 거기에 빈번한 당직근무 및 출장으로 인해서 아내와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졌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나에게 미래가 없다고 판단이 드는 사건이 생기게 돼. 한국에서 일할 때, 질질 끄는 영화 프로젝트가 도저히 회생할 기미가 안 보인다든지, 지방 소도시에서 일할 때엔 지역 내 카르텔에 내가 (혼인을 통한 가족관계 형성이 아니라면)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든지 하는 일 같은 거 말이지.

D 식품의 경우에는, 내가 이 시기를 버텨내서 저니맨 자격증을 딴다고 하더라도 내 인생이 좀처럼 편해질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구. 첫째로, 내가 할 수 일이 늘어나고 고칠 수 있는 기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 생활은 더욱 더 바빠지는 거야. 개인적으로는, 예전 같으면 고치는 방법을 모른다고 반송할 수 있었던 서비스 콜을 이젠 꼼짝없이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회사 입장에서는 내 시간당 급여가 올라갈수록 마진율이 떨어지니 날 더 부려먹어야 비슷한 규모의 수익을 낼 수가 있었던 것이겠지.

둘째로는, 내가 입사할 무렵만 해도 각 분야에 배치되어 전문 능력을 보여주던 경영진 들이 퇴사하고, 그 자리를 회사 대주주 가족들이 어느새 차지하고 있더라구. 하루 지나면 어느 대주주 아들이 부사장이 되어있고, 또 며칠 지나면 다른 대주주 사위가 어느 팀 대표가 되어 있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어느 해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신임 부사장들 (가족들)의 취임 축하만으로 진행되어서, 마치 대감마님 댁 잔치 뒷 귀퉁이에서 소반을 차려 먹는 노비들과 같은 느낌을 받았지 뭐야.

셋째로, 여기에 치명타를 가한 건, 그동안 당직근무의 피곤함을 가중시켰던 편의점들과의 악성 계약 (연간 구독 방식의 계약으로, 일과 후나 주말에 발생하는 서비스 콜에도 추가 요금 산정이 없다)을 맥도널드와 같은 다른 고객들에게도 확장하기로 하는 경영방침이었어.

캘거리 지사로 출장을 가서 ‘H 주방기기’의 신형 맥도널드 감자 튀김기 연수를 받는 동안, 회사 영업팀장이 직접 와서는, 이제 모든 수리기사들이 아주 바쁘게 일하면서 돈을 미친듯이 벌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데, 순간 정말이지 뛰쳐나가 한 방 먹이고 싶었다. 너야말로 미친 거 아니냐구 하면서.

근데… 갑자기, 혹시 바쁘게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걸 나만 싫어하는 거 아닌가… 라는 의혹이 들더라구. 다른 회사 IT 부서의 경우 서로 경쟁적으로 잔업을 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하기 때문에 잔업도 호봉에 따라 우선권을 준다고 하던데, 이 회사랑 나랑 그냥 안 맞는 건지, 아니면 이 세상이 나랑 안 맞는 건지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여전히 쉽게 사표를 내지 못했던 건, 같이 즐겁게 일했던 동료들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였어. 나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인격모독이고 노동자 착취로 생각되었지만, 이걸 이유로 대면서 그만두겠다고 얘길 하는 것이, 그동안 몇 십 년간 회사를 위해 일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걸 선택한 동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거든.

때마침, 2년차, 3년차 수업을 들었던 학교 JARTS가 해체되면서 4년차 수업 일정에 차질이 생겼는데, JARTS의 뒤를 이은 RTI에서는 가장 빨리 4년차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때가 2019년 3월이었어. 그래서 이 상황을 매니저에게 얘기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즈음에는 이미 여름 대비를 할 때라서 학교에 보내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구 (어프랜티스 기술 이론 교육은 스폰서 – 회사에서 승인을 해줘야지만 받을 수 있다).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야 급여를 올려준다고 해놓고는, 바쁘니 학교에 보내줄 수가 없다고 하는 1년차 때 상황이 또 되풀이되더라. 그리고, 나에게는 이 상황이, 이제 됐다… 라는 종소리처럼 들렸어.

사표를 내자, 회사 서비스 부사장이 직접 면담을 신청해서 즉각적인 급여 인상과 함께, 전화기도 바꿔주고, 학기가 시작하는 대로 4년차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더군. 퇴사를 결심한 표면적인 이유가 일한 만큼 대우를 못 받고, 학교에 안 보내주고, 전화기를 안 바꿔준다는 거였으니, 회사 부사장은 내 요구를 전부 다 들어주겠다고 나온 셈이었지.

사실 그게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지만, 그 앞에다 대고, “난 너희 가족들 배 불리느라, 더 이상 밤낮으로 혹사당하고 싶지 않아”라고 할 수는 없더라. 그것보다,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붙잡으려는 회사에게 약간이나마 고마운 느낌이 들게 되더라구.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다음에, 며칠 후에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서 사의를 확실하게 표했지. 단지, 이후에 직장을 구할 때 추천인으로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도 회사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나라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의사표시를 해준 거라는 느낌을 받아서였어.

마지막 날, (일감을 할당하는) 디스패처에게 부탁을 해서 오전에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오후 내내, 친하게 지냈던 동료 기사들의 작업 현장으로 돌아 다니면서, 내 사정 얘기를 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서로 개인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내가 예전에 L 마트에서 일할 때 다른 곳으로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서 느꼈던 소외감을, D 식품에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거든. 그리고는 회사 차량 열쇠와 컴퓨터, 전화기를 반납하러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마침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서비스 매니저나 서비스 부사장을 포함해서 사무직 사람들은 아무도 없더라구. 짧은 감사 인사를 담은 쪽지와 기기들을 매니저 책상에 두고 나오려는데, 회사 사장 (부사장 아빠)과 딱 마주쳤다. 오늘부로 그만두려고 기기를 반납하러 왔다고 하니 “그래?” 하며 시큰둥하게 되묻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더라. 하하하. ‘아항. 여기서 4년을 일했는데, 이 친구는 아직 내 이름도 모르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자,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이렇게 4년간의 D 식품 생활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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