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쉰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7~80년대에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문장이지.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쉰다”. 어디서 누가 이 말을 처음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런데, 학창 시절에 교사들이 항상 하는 얘기였고, 군대에선 고참이나 간부들이, 직장에선 상사나 사수들이 항상 강조하던 가치관이라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어. 보수 진보 이념을 떠나 누구라도 이런 마인드에는 굳이 저항할 필요를 못 느꼈을 거야. 열심히, 그리고 빨리, 집중적으로 일을 해치운 다음, 다 같이 맥주 한 잔 쭈욱 하고 나서 푸욱 쉬자는 것에 매혹을 느꼈을 수도 있고, 일종의 개인적인 성취로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겠지.

이거랑 반대되는 표현은 아마도 “하는 둥 마는 둥”일 거야. 누구는 “슬렁슬렁 (설렁설렁)”이라고도 하더라. 일을 집중해서 하지 못하고 놀며 놀며 하는 것을 빈정대듯이 말하는 거겠지. 사실, 일을 빡세게 하든지 아니면 슬렁슬렁 하든지, 그 판단은 관찰자 입장에서 내려지는 거라서 일하는 본인이 ‘나는 슬렁슬렁 일을 해야지’ 하며 결심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어쨌건 처음 캐나다에 도착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내 입장에서 보자면 캐나다 사람들의 모든 업무 스타일은 “슬렁슬렁” 이라는 점이었어

밴쿠버에 처음 와서는 여기 사람들이 뭐든지 한번 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이 너무 신기하더라. 처음 이사를 들어가서는, 우리 아파트의 카펫이나 몇 가지 시설에 이미 상처가 나 있었던 것을 아파트 관리인이 확인하러 오기로 했었는데, 결국 일주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사진을 찍어서 그에게 보여주기도 했었어. 슈퍼마켓에서도 계산대에 줄이 줄어들지 않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해보면 여지없이 직원과 구매자가 수다를 떨고 있더라. 별 내용도 아니었고, 계산대 직원이 바코드를 잘 찾지 못하면, 손님이 POS기 보면서 기계가 고장이 났는지 몇 년 된 기계인지를 묻고, 그럼 직원은 자기가 무슨 일이 있어서 피곤했었다든지, 오래된 기계를 회사가 안 바꿔준다며 회사 험담을 하든지 하면서 수다가 시작되는 거더라구.

처음엔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 물론 아직도 백 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고 말이야.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중에 최악의 경우 법정까지도 갈 수 있는 아파트 관리 상태 점검을 소홀히 한다든지, 계산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수다를 떨어도 마음속에 부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제 여기도 예전보다 전반적으로 노동강도나 근무태도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손님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경우는 많이 없어졌지만, 기본적 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 다른 건 여전했고, 결국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어. “얘네들은 참여유가 많아” 라면서 빈정대며 말이야.

하지만, 곧이어 그렇게 여유만만이라며 빈정댔었던 이곳의 문화에 감동받거나 도움을 받은 적도 많았다. 예를 들어, 밴쿠버 버스들은 입구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입구 바닥이 연장되어 휠체어나 유모차들이 쉽게 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런 핸디캡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탑승 우선권을 주더라구. 어쩔 때는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서 휠체어를 밀어 올리고, 안전한 자리에 고정해주기도 하는데, 당연히 다른 승객들은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거야. 이런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약간의 심쿵과 동시에, 사람이 살면서 여유를 가지는 건 좀 필요한 걸지도… 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

한번은.. 사고라면 사고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전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도중 열차가 도착한 듯한 소리가 났던 거야. 이를 놓칠세라 아내가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아… 언젠가부터 전철역에서만큼은 아내의 뜀박질을 쫓아갈 수가 없더라. 허겁지겁 승강장으로 따라 올라 온 나를 발견한 아내는 휑하니 열차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나 역시 그 옛날 TV시리즈 <맥가이버> 오프닝 타이틀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슬아슬하게 (사실은 문에 한 번 낀 후에) 열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

그런 소란을 피우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아내와 나는 득의의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열차가 출발하기 전, (아슬아슬하게 열차를 놓친 것으로 보이는) 한 아줌마가 차창 밖에서 문을 똑똑 두드리며 나를 부르더라구. 왠지 승자의 얼굴로 그분을 쳐다봤는데, 문 아래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거야. 아마도 내가 뭘 흘렸다는 얘기 같았어. 온 몸을 더듬더듬해보니.. 아뿔싸.. 맥가이버 흉내를 내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린 거 있지. 옆 자리에 앉은 중국인 아저씨는 (득의만만하게 웃다가 갑자기 온 몸을 뒤지며 사색이 되어버린) 나를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해 숨 죽인 채 어깨를 들썩이고, 아내와 나는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침착한 척하면서 서로 역할 분담을 하고 다음 역에서 헤어졌지.

정신 없이 되돌아와 봤더니 내가 맥가이버 짓을 했던 그 승강장에서 한 역무원이 무전기로 누군가와 얘기를 주고 받으며 서있더라구. 그에게 “나 여기서 핸드폰 잃어버렸는데.. 혹시..”라고 묻는데 어디서 익숙한 전화벨이 울리더라. 철로에 떨어져 있었더라구. “저 핸드폰 내 껀데..”하며 울상을 지으며 말을 이었더니, 역무원은 걱정 말라고 하며 열차가 하나 더 지나가면 자기가 주워주겠다고 하더라. 일단은 안심을 하면서, 어떻게 여기 핸드폰이 있는 줄 알았냐고 물어봤더니, 누군가가 통제실에 전화를 했다고 하는 거야.

추정을 해보면 이런 거지. 그 때 나에게 알려준 아줌마가 우정 자기 시간을 들여 승강장 벽에 비치된 응급전화로 통제실에다가 어떤 아시안이 철로에 핸드폰이 떨어뜨린 채 가버렸다고 전화를 했겠지. 그걸 보고 역무원 하나가 출동해서 전화기를 주우려고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내가 나타난 거였고.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역무원은 매 순간마다 통제실에 보고를 하면서(예를 들어 “103호 열차 지금 도착했다.” “103호 열차 지금 출발했다”, “지금 철로로 들어가겠다”, “지금 주워서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만족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결국 철로로 들어가 핸드폰을 주워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아내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돌아올 수 있었지.

아내는 나랑 헤어지고 나서 다음 열차에 올라 타서 그 아줌마가 없는지를 살피던 중에, 어떤 아저씨가 전화를 빌려 주면서 잃어버린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빨리 해보라고 해서 내게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구 (철로에서 울리던 전화가 그 전화였던 거야). 당시엔 휴대전화 통화료도 비싸서 그렇게 먼저 권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정리하자면.. 내 전화가 떨어진 걸 보고 통제실에 전화해준 아줌마, 아내에게 핸드폰을 빌려준 아저씨, 몸소 철로로 내려가 주워다 준 역무원 들이 일을 하면서, 그들의 여유와 오지랖이 덜떨어진 맥가이버의 핸드폰을 무사히 찾게끔 도와준 거였어.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가뜩이나 눈꺼풀에 캐나다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은 때였었는데, 그런 일을 한번 겪고 나니.. 아.. 정말이지.. 충성을 다짐하게 되었다.

작년에 팬데믹이 터지고, BC 주에도 한국의 정은경 청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BC 주 PHO(Public Health Officer : 공공보건 감독관)가 매일 코로나 현황을 언론을 통해 브리핑하거나 주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주말에는 이 브리핑이 없었고 월요일에 3일치를 몰아서 발표해왔어.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 거지. 뭐, 팬데믹 상황이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코로나 감염 현황이라는 집계도 매일 매일의 변화보다는 7일간의 평균 수치가 분석에 유의미한 데다가, 아무리 보건위기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위기를 관리 총괄하는 PHO도 휴일에는 쉬어야 하는 거지.

이런 게 당연하게 느껴지니까, 오히려 한국의 방역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이나 정은경 청장의 개인적인 희생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라. 한국에서 30년간 익혀진 마인드가 이민생활 십 수 년이 지나면서 이렇게 차츰 옅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여전히 슈퍼 계산대의 줄이 줄어들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다른 여러 캐나다 문화나 시스템의 만만치 않은 만만디를 겪고 나면 지치게 되긴 하지만, 앞으로는 가능하면 ‘얘네’와 ‘여유”라는 단어를 쓰면서 비웃는 일을 줄여 보려고 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BC 주 PHO Dr. Bonnie Henry의 말을 빌어보자면, “We do not know everybody’s story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서로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 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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