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눔의 전쟁 같은 영어

“난 영어를 못하지만 영어가 무섭진 않아.”

B섬에서 직장 동료로 만난 S 씨는 가끔 멋진 말을 하곤 했는데, 특히 저 말은 아직도 생각이 나곤 해. 사실 여기서 만난 많은 한국인들 – 특히 한국인 남성들의 경우 영어로 대화를 하는 걸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영어회화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버벅거리면서 엉터리 영어를 쓰는 자신이 바보처럼 보이는 게 두려운 것일 거야. 이게 꼭 허세 부리려는 게 아닌 것이, 사실 남들 앞에서 자신이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그 누가 좋아하겠어? 태어날 때부터 개발인 나 역시 누가 족구라도 하자고 나서는 일이 생기면 얼른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인데.

특히, 좀 까칠한 상대라도 만나게 되면, 조금만 추측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굳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What?” “What?”을 반복하는 걸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왠지 주눅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지지.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괜히 자기 발음을 못 알아듣는 아이폰의 ‘시리’나 아마존의 ‘알렉사’한테도 짜증을 내게 되기도 하고…  결국은 주변에 만만한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게 되는데, 대부분 같이 데리고 온 자기 자녀들을 닦달해가며 대화를 시키게 하더라. 마치 자녀들 영어 연습을 시키는 것처럼 핑계대며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남들에게 자신이 바보처럼 보이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건 사실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해. 영어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지녀야 할 용기 이기도 하고.

2001년, 이곳으로 답사 차 여행 왔을 때나, 이민자로 공항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에도 그리 언어문제로 크게 손해 보거나 한 적은 없었어. 생각 외로 말이 잘 통했고, 다행스럽게도 여긴 워낙 이민자들이 많은 도시라서 그런지, 상대의 발음이 아무리 거지 같더라도 꼼꼼히 알아듣기 위해 노력을 해주는 친절함이 사람들 몸에 배어 있었거든.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 신용카드 개통 등 복잡한 일들도 있었지만, 영어 때문에 그리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이민 첫해 동안 항상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점은 “우리가 과연 영어를 잘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 이었지. 당장, 여기서 어릴 적부터 자라 온 사람들끼리 빠르게 얘기하는 걸 슬쩍 엿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거든. TV에서 외화를 보더라도 50% 이상은, CSI 같이 전문용어가 많으면 70% 이상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고.

뭐.. 좋아. 이런 건 결국 영어로 생활을 해가면서 얻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러나, 2001년 여행이나 2003년에 처음 정착해서는 일단 우리가 주로 돈을 쓰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친절하게 우리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천천히 말해주고 했다지만, 우리가 물건을 환불하거나 돈을 버는 일을 할 때는, 과연 상대가 얼마나 성의를 가져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저버릴 수가 없었어.

그러다 몇 개월이 지나고 영어에 (정확히 얘기하자면 영어로 살아가는데) 조금 자신감을 얻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하루는 슈퍼에서 물건을 샀는데 우리가 미리 본 가격과 다르게 찍히는 거야. 그래서 점원한테 따졌더니 점원은 유기농 과일이라서 원래 비싼 거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구. 그래 봤자 삼백원이었지만… 분명 우리가 봤던 가격과 달랐고, 여기서 삼백원 가지고 쩨쩨하게 구는 게 창피하거나 귀찮다고 물러선다면, 앞으로도 대충 타협하거나, 지면서 사는 것이 습관이 될 것 같았어.

 그래서 매니저를 불러서 얘기를 했지. 그런데, 그 역시 유기농 운운하며 똑같은 설명을 하더라구. 우린 여전히 진열대에서 가격을 보고 말하는 거라고 반복해서 항변을 했어. 그랬더니 매니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가서 직접 확인을 하겠다고 아내와 같이 진열대에 갔었어. 그러더니 돌아와서는 아주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 사과를 하더라. 이번에 특별 할인 이벤트를 하면서 바코드 데이터를 미처 바꾸지 못한 부분이 있다나?? 어쨌건, 그들한테는 우리가 삼백원에 목숨 거는 짠돌이 아시안 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우린 그날 처음으로, 영어로 우리 의견을 말해서 상대를 설득시키고 정의를 구현했다는 기쁨을 나누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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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자기 권리를 영어로 주장하는데 자신감을 얻게 되더라. 얼마 후에는, 60% 할인 때문에 충동구매로 산 고급 드라이버 세트를 환불 받기도 하고, 며칠이 지나서는 또 칼라 프린터를 환불 받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영어로 뭔가를 주장하는 대화를 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워서, 아내와 서로 미루기를 반복하긴 했었지.

물론 모든 일이 잘 풀린 것만은 아니야. 우리가 처음 캐나다 핸드폰을 구입했을 때, 모든 계약을 마치고 대리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걸고 있는데, 우리가 계약한 대리점 직원이 몸소 나와서는 우리에게 5월까지 4달간 무제한 통화라고 귀띔해 주는 거야. 그래서 “오. 개이득” 하며 마음 놓고 핸드폰을 열심히 썼는데, 4월에는 요금이 7만 원 돈이 덜컥 나오더라구. 원래 계약은 3만 원 정도 내고 월 150분 쓰는 요금이었거든.

당장 이동통신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따졌더니, ‘우리 요금제도에서는 4개월 무제한 프로모션 같은 게 없는데..’ 하면서, 대리점에서 잘못 전해줬을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또 따져보니, 그 직원이 오늘 비번인데, 왜 걔가 그렇게 말했을까.. 하며 너스레를 떨더라구. 그들이 직접 언급은 안 했지만, “당연히 영어 못하는 너희들이 잘못 알아들은 거겠지..” 하는 뻔한 의심이 자막으로 보이는 듯 했지.

그 때는 기가 막혀서 더 이상 영어고 한국어고 생각이 나지 않더라. 일단, 전화를 끊고, 차근차근 원고를 써서 다음날 그 직원 출근하면 찾아가 따지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4개월 무제한은 그냥 구두로 전달받은 거였고, 약관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거였어. 그래서 막상 그 직원이 오리발을 내밀면 아무 대항을 할 수 없겠더라구. 결국 포기를 하고 말았지. 이런 경우 정말 사기 당한 기분이 들면서, ‘이것들이 또 인종차별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거지. 하하.

사실 그래. 아내는 처음 여기 와서 방범이나 보안에 관련된 부분 – 우편물을 분실했다든지, 창문이나 베란다, 현관문의 잠금쇠가 부실한 거라든지 – 에 꾸준히 걱정을 했었는데, 정작 내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어.

방범이나 보안은 어차피 사람이 하는 짓이라서 한국에서도 충분히 유사상황에 대한 걱정도 하고 대안도 생각해왔기 때문에 별로 염려는 안 들었었는데, 정작 우리와 쓰는 말이 다르고 성장환경, 문화가 다른 애들을 설득하거나, 그들에게 뭔가 보상을 받아내는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가장 걱정스러웠었거든.

세월이 흘렀고, 고객 서비스 업종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영어로 상대를 다독이거나 설득하는 일도 많이 해오게 되었지. 여전히 영어로 100% 커뮤니케이션을 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영어 때문에 쉽게 주눅이 들거나 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해.

상대가 못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는 척을 하게 되면, 일일이 스펠을 하나하나 말해주는 경우도 있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소통을 하려고 한 적도 있어. 일단 ‘내가 영어를 못하거나, 영어 발음이 후진 건 인정을 한다. 하지만 그게 지금 우리가 같이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라는 사실을 상대가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여전히 종종 ‘삼백원’처럼 별거 아닌 일에 자존심 세우고 전쟁도 불사할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결국 의사소통이란 쌍방이 서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해. 한국 방송에서 한창 유행했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자신의 노래를 청중들에게 진정성있게 전달하려는 노력에, 꼭 화려한 기교나 짱짱한 가창력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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