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정말 제대로 하는 데서 못 먹어봐서 그래

설탕과 버터의 조합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못 먹는 편이다. 알레르기…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먹는 도중에는 머리가 아프거나 메슥거리고, 먹고 나면 쉽게 배탈이 난다. 그러다 보니 생일 케이크는 잘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 기념일에 저녁 외식을 가더라도 디저트는 항상 아내 몫이다. 어릴 적에도 ‘빠다 코코넛 비스켓’, ‘버터링 쿠키’, ‘샤브레’ 같은 건 먹지도 않고 오직 ‘새우깡’ 만 애정했었다. 이등병 때에도 ‘초코파이’는 먹지 않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 때 길거리 음식의 탑을 찍던 ‘크레페’나 ‘와플’에 대한 거부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같이 다니던 사람들은 “참, 별종이다…” 하면서 혀를 끌끌 찼지만, 거기에 기가 죽어서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거나 하진 않았다. 종종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그냥 자신의 짜증을 토해내는 것이지 타인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비난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산다. “엉? 내가 그랬어? 아유 농담한 거지~” 혹은 “너랑 나 사이에 어떻게 그런 걸 진담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 뭔 뒤끝을 그렇게…” 하는 적반하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항상 그런 의구심은 있었다. 내가 혹시 제대로 된 걸 먹어보지도 않고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 ‘카리야 테츠’의 <맛의 달인>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은가?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 활어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선입견을 깨 주는 그런 것.

그래서인지 둘째 날, 나름 근사한 호텔로 아침 식사를 하러 가서 메뉴판을 봤을 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제대로 된 와플을 먹어보겠나 싶었다. 토피노에 올 때마다 들르게 되는 이곳 ‘위카닌니시 호텔 (https://www.wickinn.com/)’의 ‘The Pointe’ 레스토랑은 마치 오늘 밤 주인이 되는 것처럼 호사스러운 외식 경험을 전해주는 저녁 코스도 좋지만, 아침 브런치 역시 원형 벽을 가득 채우는 통창 너머 ‘체스터맨 해변 (Chesterman Beach) 풍경과 함께 적절한 가격에 수준 높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는다. 대신 아침 메뉴의 경우 주방의 작업 부담이 적은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는 편이다. 심지어 작년에는 있었던 햄버거도 올해는 메뉴에서 빠져있었다.

아내의 훈제연어 로스티 (Smoked Salmon Rosti 에그 베네딕트와 유사한 구성이지만, 잉글리시 머핀 대신 해시브라운 포테이토로 감싼 음식)도 내가 주문한 콘밀 와플도 보기에는 근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첫 입을 대자마자 상큼한 깍두기 생각이 간절해졌다. 다행히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총각김치를 싸왔으니 캠핑장으로 돌아가면 어느 정도 해결될 예정이었다. 오십 줄이 되어도 여전히 자신의 입맛을 의심했다는 사실이 좀 어리석었다 싶기도 했지만, 사실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날은 E 님, D 님 부부가 캠핑에 합류하는 날. E 님은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마늘빵을 에어 프라이어에 돌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덩달아 짜디 짠 미국식 바비큐 소시지에 칼집을 내어 구워서 같이 먹었더니 느끼한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빵에는 역시 마늘이죠.

요즘 둘이서 캠핑을 갈 때는 예전처럼 싸우거나 하지 않는데, 아마도 이제 각자 하고 싶은 건 알아서 하고, 상대가 하기 싫은 걸 강요하는 일이 없어서 그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둘이서 캠핑을 가면 그냥 불멍, 물멍을 때린다던가, 태블릿으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차를 내려 마시거나 커피를 내려 마신다. 한 사람이 피곤해서 들어가 살짝 낮잠을 자더라도 다른 사람은 맥주와 과자를 먹으면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또 여럿이 가면 그것대로 재미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각자의 생활과 생각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어쩌나 내 생각이나 우리 생활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가워서 즐겁고, 다른 이야기를 들어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신기한 즐거움이 있다. 알고리즘을 통해 그저 끼리끼리 뭉치기만 하는 SNS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어쩌면 한 사회 내에서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목소리가 쟁쟁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는데 필요한 건 단지 예의와 관용’ 일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와 다른 저 사람들의 요구가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선, 혹은 다른 사람의 주장 때문에 내가 피해를 받는다는 피해의식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함께 공권력의 적절한 중재가 필요하겠지만….

‘그린포인트 캠핑장 Greenpoint Campground’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모닥불 용 나무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만일 있을지 모를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다른 국립공원의 경우 자체적으로 땔감을 제공하는데, 캠핑장 예약을 할 때 Fire Permit이라고 해서 일박에 $9.25 (2022년 현재)을 별도로 부과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캠핑장에 장작을 쌓아놓고 있고 그걸 마음대로 얼마든지 가져가서 땔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끼질할 체력이 안된다거나, 모닥불 연기가 싫다거나, 비가 와서 모닥불을 피울 수 없는 경우도 있을 텐데, 국립공원 캠핑 예약 시 파이퍼 퍼밋 요금을 무조건 내야 한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하지만, 이곳 ‘그린포인트’의 경우에는 그렇게 사전에 미리 파이어 퍼밋을 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장작을 들여오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캠프파이어를 원한다면 캠핑장 한편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이 지역에서 베어낸 나무를 사서 때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사시사철 축축하고 비 오고 그런 동네가 되다 보니 장작 역시 축축하기 그지없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곳의 나무로 모닥불을 붙이는데 최소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은 고생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과감히 모닥불을 패스하자고 했는데……

지난밤 캠핑장 산책을 하다가 장작 판매소를 슬쩍 훔쳐봤더니 장작들이 의외로 뽀얀 하얀색이다. 잘 말라 보인다 (이때까지는 젖은 나무들은 약간 분홍색이라는 선입견이 왠지 모르게 있었다. 그리고 완전 오해였다는 걸로 곧 밝혀진다). 게다가 가격도 괜찮다. 요즘 캠핑용 장작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 주유소나 하드웨어 매장에서 구입을 하면 (번들 할인 없이) 한 팩에 15불까지 달라고 하는데, 여기선 한팩에 10불, 4팩에 30불 (2022년 현재)이라고 한다. 거의 반값인데 이러면 왠지 불을 안 때면 대박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게 된다.

마침 현금이 60불 있어서 8팩을 사 왔다. 뭐 여기 있으면서 적어도 이틀 밤은 때지 않을까 했는데, 차에 싣기 위해 첫 팩을 드는 순간 어이쿠… 실수다 싶었다. 잘 마른 장작일수록 숯처럼 가벼운데, 이 묶음들은 무겁기 그지없다. 아… 이렇게 약간 아이보리 빛을 띠는 장작도 습기 가득일 수 있능거구나. 흑…

아내가 불을 피우려고 온갖 고생을 했지만… 역부족이다. 기름 먹은 배추 박스 조각을 깔아보기도 하고, 부채질도 연신 해대 보지만 종이에만 잠깐 붙다가 금세 꺼진다. 장작불에 고기 한번 구워보려 했는데 이러다가는 해가 지게 생겼다. 경험상, 이럴 땐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장작을 가능한 얇게 얇게 쪼개는 수밖에. 하지만 젖은 장작은 그것도 쉽지가 않아서 막판에는 거의 결 따라 찢다시피 해서 직경 10센티 정도의 얄팍한 불쏘시개들을 만들어 두었다. 그런 후 박스지를 바닥에 넣고 그 위에 불쏘시개를 쌓은 후, 또 그 위로 박스에 불을 붙여 계속 집어넣는다. 이러다 보면, 결국 젖은 나무에 불이 붙는 온도에 도달하게 된다.

이번 캠핑 내내 비가 오지 않아서, (밤에 영화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사실 모닥불의 난방이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모닥불에 둘러앉아서 술을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희한하게도 별 시시한 기억조차 다 튀어나와 두런두런 이야기의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그리고 장작불 위에 구운 고기는…… (츄릅)

일몰 구경을 위해 해변으로 내려가려면 화재 예방을 위해 모닥불을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하지가 바로 엊그제여서 그런지 도무지 어스름이 내릴 생각을 안 한다. 캠핑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간신히 잡은 인터넷 신호에 의하면 이날 일몰시간은 9시 30분. 그럼 9시 15분경에 내려가 보면 되겠지 하면서 천천히 가봤더니… 해 위치만 서쪽 바다 위에 걸쳤을 뿐 아직도 강렬한 햇살은 한낮과 같다. 어제처럼 강한 바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아내는 “아이구.. 선글라스를 안 가져왔네…” 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토피노에 5년째 캠핑을 오고 있는데도 이렇게 화창한 저녁은 처음이다. 나 역시, 동네방네 “토피노는 항상 비 와요. 노상 비 와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우중 캠핑해요…”라고 광고를 해댔는데, 막상 이런 쌩쌩한 저녁노을을 보고 있자니 계면쩍기 그지없다. 하긴, 뭐, 연평균 203일 비가 온다면, 적어도 백일 정도는 화창한 날도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흐린 날, 해무와 구름과 석양이 섞여 만들어내는 거무튀튀, 붉그스레, 푸르둥둥, 누리끼끼한 하늘도 좋지만, 이렇게 푸른 하늘에 쨍한 저녁 태양의 일몰도 보기 좋다.

토피노에 자주 온다고 하더라도, 이제껏 늦봄이나 늦여름 동안에 총합 2달이 안 되는 기간을 경험했을 뿐인데, 뭘 그리 빠삭하게 안다고 자부했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정도 반복되고 비슷비슷한 경험에 싫증이 났었던 것 같다. 심지어 볼 만큼 봤으니 이제 당분간 안 와도 된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오만이 한심하다. 바로 우리 집 앞 풍경도 지난 몇 년 간 천지개벽하듯 바뀌었는데, 토피노 여행이 그 나물에 그 밥일 거라고 예단했던 건 완전 착각이었던 것이다.  

캠핑 5일 차엔 천막과 자전거를 들고 해변에 나가서, 하루 종일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파도를 가르면서 자전거도 타고, 컵라면 먹고, 맥주 마시고 놀았다. 튜브를 안 띄우고 수박만 없었을 뿐이지, 이렇게 본격적으로 논 건 30년 전에 태안 앞바다에서 친구들과 다 같이 캠핑 갔던 이후로 처음인 듯싶었다. 그것도 캠퍼들 만을 위해 마련된 그린포인트 전용 해변이라니… 한편으로는 너무나 한가로운 마음이었고, 한편으로는 지금 이 상태가 너무나 즐거워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잔을 부딪히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입을 모았다. 내년에도 꼭 또 오자고……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낮잠에 들기 위해 자리에 누웠더니 얼굴을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바람이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듯했다. “니들이 정말 제대로 된 토피노를 못 봐서 그랬던 거야”.https://play-tv.kakao.com/embed/player/cliplink/rv5zia8ytgvhhj5y0cim87hz0@my?service=daum_brunch&section=article&showcover=1&showinfo=0&extensions=0&rel=0

가까운 시내 : 토피노, 유클렐레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극히 부분적

프라이버시 : 2/5 ~ 4/5 (사이트마다 크기나 모양이 다양하다)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4/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 4/5

나무 우거짐 : 5/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2/5 ~ 4/5

P.S : 참고로 토피노는 서울과 함께 타임지가 선정한 “World’s Greatest Places 2022”에 선정되었습니다 (https://time.com/collection/worlds-greatest-places-2022/6194492/tofino-british-colum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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