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2019, KBS)

얼마전 아내와 얘기를 나누던 도중 서로에게 다짐하던 게 있다. 우리가 뭐라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지 말자고.

사실 항상 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에 그리 많은 관심을 둔 적이 없다. 당연히 누군가를 불쌍하게 생각한 적도 없고.. 그리고 왠지 그런 생각을 가지는 순간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두려웠던 것이었지 (노다메가 그랬다. 동정할 거면 현찰로 달라고), 측은지심 그 자체에 도덕적 위화감을 가져서 그런 게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2020년 전세계를 덮친 팬데믹 때문에,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소식을 접하다보니까, 왠지 우쭐해졌다. 어떻게, 정말 운이 너무 좋게도 직장도 계속 다닐 수 있고, 건강하게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쥐뿔도 가진 것 없이, 뭐 하나 잘한 일 없이 사는데도 이런 행운을 얻게되자, 내가 당장 뭐라도 된 것 마냥 다른 사람들 사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예나제나 쥐뿔도 없는 건 여전한데 .. 그러다보니, 커피 한 봉지를 사마셔도 동네 소규모 브루스터를 돕고, 외식을 하더라도 동네 식당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말이지

어제 정주행했던 2019년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박복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 ‘동백’, 6살때 엄마한테 버려져서 고아원에서 자라고, 스물 두살부터는 남친과 헤어진 채 미혼모로서의 삶. 이일 저일 전전하다가, 지방소도시에서 술집을 차리면서 자리를 잡게되자, 이젠 동네 사람들로부터 술집여자라는 소리를 (6년째) 들어가면서 손가락질 당하고.. 이후엔 치매 걸려 돌아온 엄마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까지.. 이제는 자신 팔자를 비관하며 사는 걸 넘어서,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좋은 일이 생기면 오히려 두려워 하며 살고 있었다. 그 때, 그녀 앞에 ‘황용식’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얘기한다

“동백씨, 약한척 하지 말아요. 고아에다 미혼모인 동백씨.. 모르는 놈들이 보면 동백씨 박복하다고 쉽게 떠들고 다닐지 몰라두요. 까놓고 얘기해서 동백씨 억세게 운좋은 거 아니예유? 고아에다 미혼모가 필구를 혼자서 저렇게 잘 키우고, 자영업 사장님까지 됐어요. 남 탓 안하고요, 치사하게 안살구.. 그 와중에 남보다 더 착하고 착실하게 그렇게 살아내는 거, 그거 다들 우러러 보고 박수 쳐줘야 하는 거 아니냐구요.”

우리가 타인을 동정할 때, 과연 상대에 대한 우월감을 배제한 채 해낼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안다고 그러는 걸까? 도대체 자신은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는 걸까? 어쩌면..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었던 지독한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평생을 자기 자신이 계급 사다리 바닥에 있다고 분노해 하면서 살다가, 아주 미약한 우연에 의해 (스스로 쉽게 판단하기에)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게 되어 유쾌해 하는 것이 아닌지. 만일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다면, 그리고 그것에 동정이 간다면, 그렇게 어려움에 처한 이유를 같이 알아내고.. 그걸 해결하는데 자기 자신의 손실을 무릅써야 하는 거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소파에 누운채 핸드폰 버튼을 눌러 저개발 국가 아이에게 기부금을 보내면서 만족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상대에 대해 더 알려고 하는,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과,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신에게 주어진 우연한 행운을 나누려는 의무감이 없다면, 그 어떤 측은지심도 지옥에 사는 사람들의 자위행위가 아닐지.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이라는 단체와 논란거리가 되고, 뒤늦게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사람들이 온라인을.통해 밝히고 있는 모양이다. 이 역시 그들의 사회 기부활동이 홈쇼핑 방송을 보고 상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해왔던 것이라는 걸 반증한다. 소비자 불매운동을 하듯이 하면서 배신감을 시위하기 보다는, 정작 후원을 결정하기 전에 그들이 과연 정대협과 정의연에 대해 얼마나 알려고 노력했었는지를 반문해야 한다. 왜 정대협이 ‘제국의 위안부’라는 도서와 ‘박유하’라는 한 학자를 그렇게 무너뜨리려 노력했는지 의문을 먼저 가졌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다른 나라를, 조롱하는 것도, 동정하는 것도, 사실 교만함 가득찬 정신병이다. 지금 필요한 건 타인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 삶이라는 기적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걸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