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오브 더 락 – 2월 6일

뉴욕에서 최초로 중국계 이민자 모임이 창설되었다는 Mott 거리를 따라 걸어 올라 오면서 리틀 이태리를 들러 보는데, 여긴 완전히 소래포구나 광안리 횟집 거리 같아서 식당 밖으로 사람들이 나와 호객 행위를 한다.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캐나다에서 전혀 못 보던 이런 광경을 보면 좀 놀랍기도 하다. 

일몰시간에 맞춰 잡은 록펠러 센터 옥상 전망대 관람 예약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한동안 소호 거리를 걸으면서 모마 팝스토어 등 가게 구경을 좀 하다가 Drip Drop cafe 라는 후미진 골목 안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전세계 재즈 뮤지션의 성지 뉴욕 블루노트 입구를 잠깐 서성댄 후 (버거 26불), 워싱턴 스퀘어 공원으로 향한다. 

나에겐 워싱턴 스퀘어라고 하면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89)>에서 첫 장면에서 나오던 음악이다. 이 외에도 ‘당신은 모르실거야’, ‘새드무비’ 등 주옥같은 음악을 사용했지만, 아마도 당시 관행상 저작권 해결 없이 사용했을 것 같다. OST음반이 안나왔던 걸로 보면. 아무튼, 해외 팝송을 선곡해서 영화에 삽입한 걸로 최초 성공한 작품이다. 조영욱 음악 감독의 <접속>보다 훨씬 먼저. 

워싱턴 스퀘어는 이름 값 답게 독립문이 서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비둘기 모이 주는 사람들, 공연하는 사람들, 보드를 타고 점프를 연습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서 그런 것들을 구경하는 사람들 등, 일반적인 북미의 공원 같다. 우리도 잠시 앉아서 사람들 구경을 좀 하다가 지하철을 타고 50가 역으로 향했다. 거기서 록펠러 센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 갈 예정.

록펠러센터 전망대 (top of the rock)로 가는 안내판을 따라서 갔더니 작은 문 앞에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4시 20분 예약이었고 4시 7분에 도착했지만 미리 들여보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예약시간에 늦게 온 사람들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때문이리라. 입구에서부터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은 마치 SNL에서 출연진들이 무대로 가는 길처럼 조명을 만들었다. 이 건물에 NBC가 입주해 있어서 일지도. 

70층  전망대 서편으로는 이미 노을을 보기위해 자리 잡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화장실은 68층에만 있었지만. 68층, 69층, 위 아래를 좀 더 돌아다니다가, 노을이 시작되면서 아내는 70층 나는 69층에서 노을을 감상했다. 전망대 서편 바로 앞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저 멀리로 원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보였다. 어스름이 깔리면서 마천루들에 불이 하나 둘씩 켜지는 것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한번 본 걸로 족했다. 5시 50분 정도 되어서 석양은 끝이 났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젊은 한국인 커플들이 사진을 찍는 걸 보고 사진 찍어 줄까 제안을 했다가 개무시 당해서 기분이 안 좋아졌다.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려는데, 익스프레스 레인이 따로 있었고 그 표를 가진 사람들은 일찍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로비에서 15분 정도 더 기다리는 건 딱히 큰 일은 아니었다. 록펠러 센터에서 나와서 (이런 곳은 꼭 기프트샵을 거쳐서 나오도록 동선이 설계되어 있다), 타임스퉤어까지 걸어가 본다. 굳이 타임스퀘어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또 다시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이 때 몰아 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늙어서 그런지, 감동도 재미도 없었다. 현란하고 어지럽기만 하고. 군데군데 코스프레 한 사람들이 다가와 사진을 같이 찍겠다고 하는데 돈이 드는 일이다. 약간의 멀미를 느껴 30분도 안되어 금방 빠져 나온다. 전철타고 집으로. 

뉴욕은 밴쿠버와 달리 짝퉁 파는 행상과 호객행위만 많은 줄 알았더니, 어린아이를 업은 소녀가 전철 안에서 초콜렛도 판다. 이건 뭐. 80년대 한국인가? 갑자기 무척 슬퍼졌다. 이런 도시가 세계의 경제를 좌우하다니. 

감기 기운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아내도 약간의 증상을 보여 오는 길에 홀푸드에 들러 에키네시아와 프로폴리스를 사야했다. 그래도 아내는 맥주를 한 잔 더 하고 잘 수 있었는데, 나는 이 때 왠지 술을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프로폴리스를 목에 뿌렸더니 같이 술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