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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차 아저씨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아내가 날 죽이려 들겠지만, 난 올해 결혼 기념일은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아내도 잊고 있다가 다이어리를 보고 발견한 것 같은데..–;;) 아니 한 7월달 쯤에는 기억이 나서 다다음달이면 결혼한지 3년이 되는구나…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9월달 들어서면서부터 시간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사실만을 깨닿고 그날 그날이 무슨 날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이번에도 이곳 한인 방송국 대표와 만날 약속을 월요일에 해놓고, 아내가 월요일에 학원 가야한다고 하길래 다시 화요일로 수정한 후 맘을 놓고 있었는데, 그 전날이 되서 아내가 음침한 얼굴로 내일 무슨 날인 줄아냐고 시작되는 집요한 취조에 간신히 떠올리게 된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냥 그냥 지나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9월이 되면서 교통량의 증가로 차량정체가 엄청나게 지속되기 시작하는데, 이 넓은 땅에도 도로사정은 딱하기 그지 없어서 한번 사고라도 나면 다리 진입로 같은 곳은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당연히 35분이면 되는 출근길이 2시간 가까이 되는 날이 허다하게 되고, 그만큼 일찍 출근을 하려다 보니까 몸이 피곤해진다. 어떻게든 영업장 근처로 이사를 하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나 역시 취업을 하더라도 이쪽이 더 출근 길에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취업..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얘기를 털어놓자면, 이곳은 생각보다 너무도 일자리를 갖기가 어렵다. 처음에 아내와 농담을 하기를 이곳에 직업차별이 없다면 그건 아무리 허접한 직업도 갖기가 너무 어렵기 떄문일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건 사실이다.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식당 주방일이라든지, 자재 운반과 같은 단순노무직은 흔히 찾을 수는 있지만, 그건 대개의 경우 한국인이 경영하는 사업체가 많고, 당연스럽게(너무도 뻔뻔스럽게) 현금으로 급여를 받는 직종이라서, 고용보험이나 세금과 거리가 먼 직종들이다. 그러고 보면 캐내디언들이나 다른 타 민족들이 경영하는 곳에서는 주방 도우미 자리조차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기네들 신문에만 살짝 광고를 하겠지, 현금급여직종일테니까.. 게다가 한국인 사업체의 경우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떼어먹거나 체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소문이 났다. 한국어 신문에 나온 구인광고 중에도 ‘유학생 환영’이라는 광고가 많다. 이곳 실정법상 유학생들은 일을 할 수가 없는데, 그런 유학생들에게 일을 시킨 후 임금을 체불하기 위함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인간들인지 모르겠다. 생각같아선 당장 이곳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지만.. 정말이지 귀찮아서 참는다.

‘젊은 여성, 고소득 보장, 유학생 환영’ .. 이런 구인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한국인이라는 게 쪽팔리기 그지 없다. 이곳에도 그놈의 룸살롱이니 단란주점은 존재한다. 물론 주고객 역시 돈 많은 한국인 (남성)유학생들과 이민자들이다. 엊그제 우리 동네에서 성범죄자가 한 명 체포되었는데, 가출한 10대 여자아이 3명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른바 원조교제를 한 셈인데, 단지 그 혐의를 받고 체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이틀째 뉴스마다 얼굴과 실명이 요란하게 실리고,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나..하는 인터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마리화나가 합법적이 되고, 위생적으로 헤로인을 주사맞을 수 있는 곳이 생기고, 자기 집에서 매춘을 하는 것은 법으로 보장을 해주어도(매매춘은 체포된다), 여전히 10대에 대한 성범죄나 성추행 등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일인 것이다. 만일 이곳 언론에 한국식 단란주점과 룸살롱이 보도된다면. 아마도 전체 한국인 이민자 유학생들을 변태로 보게 될 것이다.

얘기가 옆으로 샜지만.. 처음 이곳으로 정착을 결정하게 된 때에는 나름대로 사전에 일자리 문제가 결정된 것에 힘 입은바 크다. 한국방송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하기로 되었었는데, 막상 이곳에 도착해보니, 공급권 문제와 건물확장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 4월부터 일해야 할 것처럼 얘기를 듣고 왔지만, 건물 확장공사는 7월이 되어서야 완공이 되었고, 공급권은 끝까지 해결이 되지 않았다.(이곳도 한국방송 비디오 대여점이 너무 난립한 상태라서 이제 서서히 줄여나가려고 하는데, 우리가 들어설 써리 길포드 근방에는 이미 2군데가 있었기 때문에, 기존 업소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마침 당시는 한국에서 번역 일거리를 받아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짭짤한 수입이 있었고, 표면적으로는 선배와 의리를 지키는 척하면서 다른 취업을 알아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이곳 노동부에서 하는 구직과정을 수료한 후, 기왕 온 김에 북미 애니메이션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어 보자는 심정으로 이 회사 저 회사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집어넣어 보았다. 하지만, 막상 가장 크게 부딪힌 벽은 영어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노동환경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여긴 회사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아무리 정직원으로 채용되더라도 얼마나 버틸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넣기 전에 몇몇 감독급들과 예비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이력서를 보내고 다시 확인 전화를 했더니 그 감독이 해고되었다고 한다. 다른 업체도 여름이 지나자 인원감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무리 영상산업의 원조 북미지만, 이렇게 쉽게 목이 짤리는 나라에서 굳이 영상산업에 남은 젊음을 걸고 매달리기가 불안해졌다. 많은 이민자들이 소규모라도 자영업을 하는데에는 이렇게 이유가 있는 것이다.

8월이 되면서.. 아내와 상의를 해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애견샵의 사업범위를 넓혀보자고 결정을 했다. 대책없이 이력서를 날리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느니, 차후 경력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현금급여직업을 구해보느니, 어떻게든 애견관련 사업에 집중해보자는 것이 그 근거였다. 마침, 지금 하고 있는 미용업은 나름대로 고정고객도 있고해서 새로운 사업을 벌이더라도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미용을 마친 강아지들 사진을 찍어서 액자에 넣어 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재봉틀을 하나 사서 애견 파티복을 만들어보고 있다. 캐나다 사람들 자체가 생활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과연 비싼 애견의상을 구입할 여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4~50불씩 내면서 애견 미용을 받으로 오는 사람들을 보면, 시장 개척의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것도 같다. 결국 문제는 시장이다. 이곳 애견 전문 상가나 대형 유통업체에도 애견 의상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그게 어쩌면 수요가 아예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몇 가지 샘플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해 본 후 대량생산이나 수입판매등도 고려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