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July 2008

백옥란

각종 여행 전문가들이 전 세계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밴쿠버의 장점으로 손꼽고 있기는 하더라도, 사실 밴쿠버에서 괜찮은 외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단 너무 비싸죠. 한국은 괜찮은 순대국 한 그릇 사먹는데 아무리 비싸도 4천원을 넘지 않았었거든요. (물론 5년 전 얘기지만) 여긴 그런 종류의 대중 음식점을 찾기가 힘듭니다. TGI니 아웃백이니 하는 한국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부르는 곳들이 말하자면 여기서는 대중 음식점인 셈인데, 가격 수준도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과 그리 다르지 않는데다가, 세금에 팁까지 붙혀서 줘야 하고, 사실 먹을 만한 것도 햄버거 밖에 없는 형편이지요.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현재 북미 젊은 외식 시장을 휩쓸고 있는 초밥은 어떤가요? 캘리포니아롤에서 응용된 다이너마이트롤이니 뭐니 하는 엽기적인 김말이 초밥만 인기를 끌고 있고, 회초밥 혹은 주먹 초밥의 경우 여기서 먹을 수 있는 생선의 종류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지라(주로 연어, 참치, 도미 류), 한국이나 일본의 그 다양한 초밥 문화와 비교한다면 정말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저렴하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게 중국음식입니다. 물론 여기도 MSG첨가나 위생문제 덕택에 자고 일어나면 영업정비 먹은 식당들이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음식의 경우 값 싸고 양 많게, 그리고 입맛에도 잘 맞는 덕택에 우리 집의 주 외식 코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중국음식이라도 주방장(혹은 주인장) 출신 지역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고, 식당마다 그 음식 수준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같은 값이면 보다 맛있는 곳으로 가보는 게 좋겠죠.

백옥란
Chen’s Shanghai Kitchen
8095 Park Rd, Richmond
Tel: 604-304-828

백옥란이 위치한 리치몬드 시는 중국계 캐내디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신도시인 셈입니다. 물론 다운타운에 차이나 타운이 버젓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밴쿠버를 움직이고 있는 중국계 자본은 모두 리치몬드에서 나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만큼 아시아 전통 요리점들도 많이 성업 중이고, (북미 문화에 아직 홉합되지 못한) 현대 아시아권 문화에 가까운 상점이나 음식점들도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백옥란의 경우는 한눈에 봐도 전통 중국요리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외관은 허접하기 짝이 없습니다. (쥔장 말로는 상해식 중국요리라네요)

백옥란에서 반드시 먹어야 할 두 가지 요리는, 바로 소룡포와 탐탐국수입니다.


만화출처 : 서울문화사. 맛의 달인 12권. 이 만화의 저작권은 만화작가와 해당출판사에 있습니다.

소룡포는, 말하자면 중국식 찐만두인 셈인데, 그 안에 특유의 국물이 들어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유명한 집에서는 상어 지느러미에서 나온 젤라틴을 사용해서 국물을 만든다고 하네요. 통째로 입에 넣으면 국물이 팍! 터지면서 ‘앗 뜨거, 앗 뜨거’하며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예전에 맛의 달인에서 보고 한번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먹어보게 되네요. 아주 인상적인 맛이었습니다.

탐탐국수의 경우 사천지방에서 배달용으로 만들어진 비빔국수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데, 백옥란에서는 일본식으로 대중화된 국물있는 탐탐국수가 나왔습니다. 으깬 땅콩 가루를 얼큰한 국물에 섞어서 고소하게 만들어 국수와 함께 먹는 맛은 일품이지요. .

이외에도 오향장육이나 상해식 국수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음식을 보여줬습니다. 면 가락 하나하나가 제대로 쫄깃한 것이 아무래도 이 집에선 국수를 직접 반죽해서 쓰던지, 아니면 상당한 수준의 국수 손질 기술울 가지고 있던지… 아마도 30년 만에 먹은 것 같은 오향장육도 쫄깃한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근데 원래 따뜻하게 먹는 음식이 아니었나요?

전반적으로 가격 수준은 다른 중국 음식점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지만, 딤섬집이라고 생각하면 좀 비싼 것도 같네요. 우리 동네 미성에서는 딤섬 한접시에 $2.75 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선 소룡포를 $4.25 받았거든요. 하지만 퀄리티를 따져봤을때 싼 편인 것도 같고..

여타 다른 전통 중국 요리점 (특히 딤섬집) 들 처럼 영어가 잘 안통한다는 점이 치명적입니다. 종업원 입장에서는 말이 안통하는 손님들 서비스하기가 싫겠지요. 그래서 서비스 순위에서 밀려나는 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리치몬드에 볼 일이 없더라도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은.. 그런 집이었습니다.

사족. 짜장면이 메뉴에 있었는데.. 배불러서 못먹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