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이 드는 날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기위해 학살을 하거나 그것을 방조한다. 중동의 석유에 대한 지배권이 없다고 해서 서방국가들이 당장 망하거나 경제가 붕괴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석유를 원료로 하는 많은 1차 산업들의 운용이 어려워지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세계에는 개발조차 안된 유전이 썌고 썠다. 알라스카를 보라!!) 오히려 중동의 유전을 모두 사용불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다음 세계의 연료 지배권을 미국으로 하는 것을 공고히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전쟁의 타겟은..? 대체연료 개발국?

유럽과 중국, 러시아도 처음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듯 싶더니, 전쟁이 눈 앞에 닥치자 천천히 손을 빼고 있다. 애초부터 체면치레를 하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따 시키고 전쟁을 시작하려고 한 부시에게 삐진 것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전쟁을 막겠다던 유엔과 코피아난 역시 무기사찰단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키고 있다. 암묵적인 승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교황청에서 할아버지가 아무리 잔소리를 늘어놓아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자부하던 부시에게는 어느 작은 나라 수장의 의견일 뿐이다. 인간방패들도 되 빠져나오고 있다.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가 돌기 시작하고 부터이다. 정작 방패가 필요할 때는 달아나다니.. 그럴거면 왜 인간방패라고 자부하면서 사지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난 애초부터 시위가 싫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뻥카가 싫다. 이렇게 전쟁을 반대하면서 자판으로만 자위하는 내가 싫다. 인간이라는 것이 싫다.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갔다 온 어느 학생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라크 사람들은 요새 아침이 되면 상점에서 문을 열면서 창문을 닦는다고 한다. 상점 앞길을 쓴다고 한다. 무너진 담벼락을 수리한다고 한다. 그들 모두 조만간 미국의 미사일이 자신들 머리 위로 날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루 하루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란과의 끊임없는 영토 전쟁, 걸프전, 그리고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이미 전쟁이라는 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일까? 난 당장.. 내가 아프거나 내 아내가 아프거나 하는 것도 두려운데… 어두운 밤길을 걸어갈 때는 누군가가 공격하지 않을 까가 두려운데… 바로 몇 시간 후면 미국의 미사일이 날아와 내 목슴과, 내 가족의 목숨과, 그간 쌓아올린 문명을 싸그리 앗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무서울까? 어쩌면, 중동에서 끊임없는 종교분젱이 일어나는 것은, 현세에 사는 동안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살 수 없기 떄문이 아닌지..

세살 먹은 어린애가 들어도 미국이 주장하는 전쟁 당위성은 터무니 없다. 지난 대테러전쟁 때는 빈 라덴 하나를 잡겠다고 아프가니스탄 시민 수만명을 학살했다. 기본적으로 미국 미사일의 정확도는 20%… 10개를 발사하면 바그다드까지는 곧바로 날아가지만 그 중 2개만 군사시설에, 나머지 8개는 병원과 학교와 피난시설에 떨어진다는 얘기이다. 이번에도 역시 후세인을 잡아 죽인다는 명목하에 그 수많은 병력과 전투시설들을 이라크 시민들에게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중에 내 아이가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폭력이 있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보면, 약한 아이를 돕게 되면 너도 왕따 당할 수 있으니까 그냥 무시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옳다고, 옳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분명히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상대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후자가 사회에 대한 예의에 관한 것이라면 전자는 바로 생명에 대한 예의이다.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이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이든.. 인간은 행복하게 살아야하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함께 짓밟는 삶이 아니라.. 갈등과 대립이 있더라도 어떻게는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합의점을 찾아내어, 서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게 인간이 사는 길이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을 선택한 길은 그래서 인간의 길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이라크의 존엄성을 무시한 선택이었고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무시한 선택이었다. 그는 어쩌면 손자가 학교에 다니면서 왕따 당하는 급우를 도와주려고 한다면, 그냥 힘센 애 편에 서라고 야단칠지도 모른다. 그래야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가르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의 길이 아니다.

모든 걸 떠나서.. 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증오스럽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증오스럽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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