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비가 계속 왔고 집에서 빈둥대고 있다. 아무리 적응기간이라지만 너무 편하다보니 괜히 더 불안해진다. 아무리 식자재가 싸고 풍성하더라도, 아무리 우리가 흥청망청 안쓰고 절약하더라도, 수입이 없는데도 이렇게 편하게 잘 지내는 것이 왠지 깨름직 해진다. 생각보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생각보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그런 걸까? 말로는 백수체질이다하고, 몇 년간의 백수경력을 자랑하고 다녀도, 역시 대한민국 사나이처럼 뭔가 생산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쫌생이인 것일까..
일단 이민자를 위한 무료 영어학원에 등록을 하고나니(2주 후나 되서야 레벨테스트를 받는다. 여긴 뭐든지 이렇게 만만디이다) 더 이상 서류작업을 할 수 있는게 없어졌다. 이제 PR카드를 받고 나서 운전면허를 신청하고… 뭐 차 사는 건 수입규모가 잡히면 알아보고.. 이제야 정말로 당장 할 일이 없어진 상태이다. 그러고 보니까 영주권이 나온 후 본격적인 이주준비를 시작면서 서류준비와 짐싸기, 사람 마나기를 반복한 이후로 이제야 진정으로 한가해진 셈이다. 아침에 딸기 산책과 오후에 식자재 구입 및 산책을 제외하면, 영어공부 한답시고 TV를 줄창 보고.. 가족들에게 소식을 남긴답시고 인터넷을 줄창 보는 일이 일과이다.
며칠 전에는 심심해서, 이곳 인터넷 쇼핑에서는 얼마나 물건을 싸게 파나..생각이 들어, 한국의 <옥션>에 해당하는
근데 여기 사람들의 반응은 귀엽다. 그 사이트가 그렇다는 사실을 안 것도 내가 입찰한 사실을 지나가는 누가 보고나서 편지를 보내서였다. “뭐.. 나랑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네가 입찰한 경매는 실제 카메라가 아니다. 난 쓸데없이 돈을 잃는 걸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라고 하면 누가 훈수쪼로 메일을 보낸다. 당장 e-bay에 신고를 하고, 한편으로는 판매자에게 입찰을 취소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먼저 판매자로부터 답장이 오는데, “걱정마세요.. 귀하의 입찰은 어짜피 최고액이 아니기 때문에 효력이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나선 e-bay에서 메일이 와서 “귀하가 입찰한 경매는 실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기 떄문에 취소되었습니다”라고 한다. 판매자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매우 신속한 조치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잘못된 일을 보고 일일이 훈수해주는 사람들이 귀엽다.
온지 보름이 넘었는데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 부분을 또 공개해본다.
1. 뱅쿠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한다.
– 천만에.. 처음 여기와서 사회보장카드를 신청하러 공공건물에 갔었는데.. 정말로 한국의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와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운행층수표시에 고정되거나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모텔 복도에서 마주치는 다른 숙박객들도 슥- 무시하고 지나간다. 오히려 내가 먼저 하이~하고 인사하게 된다. 도대체 나는 어디서 이런 주변머리를 배웠을까? 대신 딸기를 데리고 다니면 90퍼센트는 딸기가 귀엽다고 하면서 말을 건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다보면 그것보다 저게 더 좋은 거다.. 라고 훈수를 두는 아저씨도 있기도 하다.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것 중 하나는 슈퍼 계산대에서 꼭 인사를 받는 것이다. “ HI there.. how are you today?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어땠어요)?” 그럼.. 어떻게 대응을 해야하는지 아직 적응이 안되는 것이다.
그냥 한국 정도의 인사치레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국에서도 딸기를 데리고 다니면 아줌마들이 와서 무뚝뚝하게 “어머 얜.. 털을 바짝 잘랐네..춥겠다..”라며 말을 걸기도 했다. 아무래도, 여기는 이민사회인 것이다. 모든 민족과 인종이 같이 살면서, 문화가 조금씩 섞이고 바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적응하기도 더 쉬워지는 것 같고…
2. 뱅쿠버 사람들은 자원을(특히 물과 전기를) 아낀다.
– 글쎄… 여기 왠만한 건물들은 낮에도 실외등을 항상 켜둔다. 슈퍼에서 냉장식품이나 냉동식품을 고를 때에도 냉장고 문을 연 채 고른다. 기본적으로 형광등보다는 백열등, 가스렌지보다는 전기렌지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나이아가라가 있어서 그런 걸까? 가전제품에 당연히 붙어있을 법한 전기효율표시도 없다. 물도 마찬가지.. 세탁실에 있는 세탁기는 물 높이 조절이 없다. 양말 한켤레를 세탁하든지 잔뜩 세탁하든지 어짜피 세탁기에 물은 한 통 가득 차는 것이다.
3. 동물을 인간처럼 대우한다
– 이것도 사실 신뢰가 안가는 말이다. 물론 딸기를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너무나 귀여워 한다. 가방에 넣고 다니면, 어떤 사람은 지나가면서 “그럼 걔가 답답해해요”라고 한마디 한다. 하지만 막상 동물과 같이 사는 것은 싫은 모양인지,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는 공공주택이 많다. 애완동물이 허용되는 아파트에서는 대개 흡연도 허용이 된다.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과 흡연자를 동격으로 대하는 셈이다. 말로는 동물들의 천국이라고 하고, 동물을 사람처럼 대우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동물병원에서 기본접종 외의 특별한 주사 한 방이라도 맞을라면 20만원 가까이 줘야 한다. 딸기처럼 피부병을 달고 다니는 개는 차라리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오는 것이 쌀 것이다. 다행히 딸기는 공기좋은 곳에 와서 그런지 다 나은 것 같다. 장애인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나라는 장애인이 살기 편하도록 모든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것 만큼,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라면 동물을 부양하는 사람들의 부담을 많이 줄여줘야 하는 게 아닌지…
IP Address : 64.180.200.94
김석진 (2003-03-17 17:49:54)
요즘 계속 마음이 바쁘고 급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야 들어와본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고, 타지에서 항상 몸조심하고 건강해라.. 또 들리마..
MADDOG Jr. (2003-03-18 04:37:28)
고맙구만.. 이렇게 들러서 글까지 남겨주니…
민 (2003-03-19 13:02:46)
다 알고 있겠지만…How are you? 하면…’Pretty good’ 한마디 해주면 됨…^^; 내가 3년전 바로 아랫동네에서 했던 고민과 넘 똑같길래…
MADDOG Jr. (2003-03-22 16:11:29)
민이형 방가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