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은 가라앉고..

시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다. 우째우째다 보니까 여기로 이사온지 벌써 한 달이 되었고, 캐나다 땅에 발을 디딘지 2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2달이라… 한 때 사교계의 총아였을 때 누군가를 만나기 시작하면 2달 째가 가장 좋았던 것 같은데, 그게 이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확실히 느끼는 것은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흥분이 많이 가라앉았다는 거…

일단 처음에는 여기 하늘을 보면 감동해서, 매번 귀뚜라미 보청기 광고의 한장면 처럼 “어머 아름다워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좋은 꽃놀이도 한 두 번이라.. 어딜 가도 맑고 널찍한 하늘이 펼쳐져 있는 것이 이제는 당연스럽게 여겨진다. 오히려 버스를 탈 때는 하늘과 나무와 하늘과 나무와 주택과 하늘과 나무와…의 연속이 되다 보니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비단 자연경관 뿐 아니다. 물론 아직도 새록새록 새로운 경험에 몸서리 치고는 있지만 이제 뭐가 신기한 일이 있어도 그렇게 태연하게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음식의 경우도 처음 모텔에 들어가서 오븐을 봤을 때는 너무 재미가 있어서 매일매일 새로운 음식을 개발해서(매일저녁 음식재료만 만원 이상씩 사와서) 먹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미역국, 스파게티 등등, 예전 한국에 있을 때의 식단과 비슷해져 간다. 가구나 기타 집기를 사들이는 것도 많이 줄어들었다. 말하자면 소비가 줄었다는 건데.. 뭐.. 좋은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겠지.

사람들의 친절함에 대한 감동도 줄어들었다. 며칠 전.. 사고라면 사고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전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올라가는데 열차가 도착한 듯한 소리가 난다. 이를 놓칠세라 아내가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아… 언젠가부터 전철역에서 만큼은 아내의 뜀박질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정말이지 전철에만 있으면 용솟음치는 한국 아줌마들의 괴력은 놀랍다). 허겁지겁 플랫포옴으로 따라 올라 온 나를 발견한 아내는 휑하니 열차안으로 뛰쳐 들어가고, 나 역시 그 옛날 TV시리즈 <맥가이버> 타이틀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슬아슬하게(사실은 문에 한 번 낀 후에) 열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소란을 피우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아내와 나는 뻔뻔스럽게 득의의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열차가 출발하기 전, (아슬아슬하게 열차를 놓친 것으로 보이는) 한 아줌마가 문을 똑똑 두드리며 나를 부른다. 간발의 차이로 테이프를 끊은 100M경주 우승자의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자 문 아래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아마도 내가 뭘 흘렸다는 얘기 같다. 온 몸을 더듬더듬해보니.. 아뿔싸.. 맥가이버 흉내를 내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린 것이다. 옆 자리에 앉은 중국인 아저씨는 (득의만만하게 웃다가 갑자기 온 몸을 뒤지며 사색이 되어버린) 나를 보더니 웃음을 참지못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아내와 나는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침착한 척하면서 서로 역할 분담을 하고 다음 역에서 헤어졌다.

정신없이 뛰어서 다음 역으로 찾아갔더니 내가 맥가이버 짓을 했던 그 승강장에 전철회사 경비대원(이곳에서 버스나 전철 등, 모든 대중교통수단은 ‘Translink트렌스링크’라는 회사가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여기서의 방범활동도 이 회사 경비대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경찰과 같은 권한이 있다고 한다)이 무전기로 누군가와 얘기를 주고 받으며 서있다. 그에게 “나 여기서 핸드폰 잃어버렸는데.. 혹시..”라고 묻는데 어디서 익숙한 전화벨이 울린다. 철로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저 핸드폰 내 껀데..”하며 말을 잇는다. 경비대원은 걱정말라고 하며 열차가 하나 더 지나가면 자기가 주워주겠다고 한다. 일단은 안심을 하면서, 어떻게 여기 핸드폰이 있는줄 알았냐고 물었더니 누군가가 통제실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추정을 해보면 이렇다. 그 때 나에게 알려준 아줌마가 승강장 벽에 비치된 응급전화로 통제실에다가 어떤 아시안이 철로에 핸드폰이 떨어뜨린채 가버렸다고 전화를 했겠지.. 그걸 보고 경비대원 하나가 출동해서 전화기를 주우려고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내가 나타난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경비대원은 매순간마다 통제실에 보고를 하면서(예를 들어 “103호 열차 지금 도착했다.” “103호 열차 지금 출발했다”, “지금 철로로 들어가겠다”, “지금 줏어서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만족하고 있다” 이런 식의) 결국 철로로 들어가 주워서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아내와 약속한 장소로 돌아오자, 아내는 또 우리가 탔던 열차의 다음 열차에 올라 타서 그 아줌마가 없는지를 살피다가, 어떤 아저씨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으면 일단 내 전화로 빨리 해보라고, 친절하게도 전화를 건네주는 바람에 내게 전화를 했단다(철로에서 울리던 전화가 그 전화였다) 여긴 통화료가 분당 200원 꼴인데.. 그런 친절이 쉽지 않았을텐데..

정리하자면.. 내 전화가 떨어진 걸 보고 통제실에 전화해준 아줌마, 아내에게 핸드폰을 빌려준 아저씨, 몸소 철로로 내려가 주워다 준 경비대원, 그리고 트랜스링크의 응급시스템이 덜 떨어진 맥가이버의 핸드폰을 무사히 찾게끔 도와준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한번 감사..

웃기는 것은, 예전같으면 이런 일이 있으면 정말정말 감동을 받아서 여기 저기 떠들어대고,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해가면서 글을 올렸을텐데 (물론 창피한 일이라서 그런 거 였겠지만) 왠지 그리 진한 충격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이러다가 서서히 재미없는 카나디안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어제 차를 샀다. 모델명은 KIA RIO RX-V CONVENIENCE(기아 리오 웨건형).. 여기까지 와서 왠 한국차냐..?? 싶겠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이곳에서도 가격대 사양비가 가장 좋은 차는 한국 차인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 중 가장 후진국이었다. 돌려 말해서 비슷한 수준의 나라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인 것이다). 이곳의 자동차 가격은 언뜻 한국에 비해 아주 비싼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구입한 차와 비슷한 사양의 모델의 한국 판매가격은 9,490,000원, 이곳의 가격은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약 14,500,000원.. 거의 5백을 더줘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옵션으로 추가해야하는 사양 – 에어컨, 파워핸들, 동승석 에어백, 오토 등 250만원 어치 – 이 기본으로 제공되고 있는데다가, 배기량이 1600CC로 조금 높으니 어느정도 가격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야하겠다. (그 외에 미국 도로 안전법을 통과하기 위해 설치해야 할 눈에 안보이는 내부 안전장치 등을 포함하면… 글쎄..?)

어쩄건 여기에… 상당히 비싼 수준의 보험료와 세금.. 운반비 및 기타 안전장치 등을 다 포함하고 나니 2천만원 정도가 계좌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다. (애석한 사실은… 이곳에서는 이게 가장 싼 차의 축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뭐.. 일단 안전제일주의인 아내가 중고차를 절대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로 새차를 산 까닭에 이런 대규모 지출이 생기게 되었지만.. 이곳에서 차..라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소득 등과 비교해 볼 때) 결코 싼 소비재라고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일반적인 현지 젊은이들이 리스(임대)제도를 활용해서 적은 이자에 월불입으로 차를 임대하는 반면(이럴 경우 5년 임대에 월 17만원 정도만 불입하면 된다), 우리의 경우 막 이민온 사람들이라서 리스 이자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결국 현금 일시불로 구입을 할 경우 리스에 비해 4백만원 정도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질러 버렸다.

애초에 최대한 늦게 차를 구입할 예정이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런 대형사고를 치게 되었다. 우선, 여기 대중교통 제도가 심각할 정도로 불편해서 여러가지 시간적 금전적 손실이 많다는 점, 지금 다니는 영어학원의 경우도 차를 몰고 가면 10분이면 가는 곳을,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1시간 먼저 출발을 해야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집을 나서기 전에 반드시 버스 스케줄을 확인해야하고, 무슨 일을 볼 떄에도 버스 스케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급하게 서둘러야 하는 그 런 일이 많았던 것이다. 더욱이 여기 대중교통비용은 제법 비싼 편이어서 가장 저렴한 상품인 1구간 1개월 정기권도 한국 돈으로 6만원 돈이 되고, 1구간을 벗어날 경우 짤 없이 천원 이상의 추가요금을 물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생각지 않았던 사실 중 하나는, 이곳에 일자리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이 경영하는 중소규모의 회사에서는 많이 사람들을 뽑고 있다.(하지만.. 이곳의 급여수준은 대체로 낮은 편이다. 그래서 이곳 젊은이들 모두 평생직장보다는 자영업을 추구한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원래 우리가 가져간 돈을 투자해서 공부를 한 후, 현지에 직장을 가질 계획을 세웠었지만 생각보다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비싼 돈내고 학원을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이곳 젊은이들 처럼 작은 직장에서 경험이나 기술을 축적한 후 점차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거나 자영업을 준비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아내는 이곳에서 사귄 친구의 소개로 취직이 되었다!! 애초 계획인 관광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치기공소에 말이다!! 비록 수습이라서 급여는 최저임금이지만, 일단 아내는 한국에서 연전연패의 구직경력을 극복하고 취직이 되어 의기양양이다.(아내는 옆에서 짤릴지 모른다는 얘기를 첨부해달라고 난리다) 게다가 아내가 주구장창 원해왔던 기술직으로 취업이 된 것이었으니!! 여기에, 아내의 직장이 집에서 먼 거리라서 차를 구입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거기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월 정기권이 10만원정도.. 시간이 2시간 걸리는데, 차를 몰고 가면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이쯤되면 차를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쨌건.. 난생처음 새 차를 몰고 다니니, 발에 안맞는 신을 신고 다니는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새 차의 경우 출고 당시 엔진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엔진 헤드 부분에 기름칠을 한다고 하는데, 때문에 처음 주행을 하면 기름이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린 어제 집에 오면서 갑자기 뭔가 타는 냄새가 나서 기겁을 하고 말았다. 타이어 역시 이틀동안 60킬로 정도 달렸는데도 뺀질뺀질 윤기가 흐르는 것이 썩 석연치 않다. 내가 생각하는 타이어는 시커멓고 거친 고무덩어리인데도 말이다. 그 외에도 각종 편의시설들이 새 차임을 증명하고 있지만.. 아직 적응이 되려면, 좀 오래 걸릴 것만 같다.

여기 사람들 운전은 매우 점잖은 편이다. 춘천에서 잠시 머물면서 운전을 했을 때에도 느낀 바있지만.. 역시 여유로운 운전을 만드는 것은 운전자들의 성격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인구밀도가 가장 중요요인 중 하나 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땅덩이에 비해 차량 수가 적으니 여유로워질 수 밖에 없다. 절대 여기 사람들이 순하거나 준법정신이 강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준법정신에 대해서 말하자면.. 정말 이곳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도 법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살지는 않는다. (문화의 차이에 있어서) 운전할 때 가장 겁이 나는 부분은 바로 무단 횡단이다. 철저하게 보행자를 우선으로 하는 문화 때문에 어떤 큰 길에서든지,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서있으면 노란불, 건너고 있으면 빨간불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행자들… 정말 아무 곳에서나 마구 튀어나온다. 어린 아이들 노인들 할 것 없다.

보행자들 만큼이나 황당한 건 좌회전 차량들이다. 캐나다 법 적용이 ‘네가티브’라고 해서.. 예전부터 들었던 적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 다른 건 다 하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해야하는 ‘포지티브’라고 한다면, 캐나다에서는 하지말라는 것만 뺴고 다 해도 되는 ‘네가티브’ 스타일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곳도 교차로 중에 좌회전 신호가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 좌회전 신호가 있는 곳에서만 좌회전을 해야하는 반면, 이곳에서는 좌회전 신호가 있는 곳에서는 신호가 나야지만 좌회전을 할 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모두 비보호 좌회전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자신의 차량 앞으로 좌회전 차량이 튀어 나올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물론 이곳 사람들은 좌회전 신호가 있는 교차로에서도 무조건 비보호 좌회전을 한다. 그러다가 보행신호에 걸려서 교차로 한가운데에 좌회전 차량이 서있는 경우가 있더라도, 직진차량은 결코 경적을 울리거나 하는 법이 없다. (속으로 무지 욕은 하더라도) 자기 집 앞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있으면 중앙선을 넘어서 휙 좌회전하는 것도 예사다. 그렇게 좌회전 하려고 짱을 보면서 멀쩡한 차선 한 가운데에 서있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하는 법이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진득히 기다리고 있다.

아내의 첫출근은 아마도 6월1일이 될 것 같다. 나 역시 그 때 쯤부터는 바빠지게 될 것이다. 차도 생겼고 하니.. 게다가 사은품으로 받은 휘발유 500리터도 있는데, 그 때까지 도시락 싸가지고 놀러다녀야겠다. 혹시 뱅쿠버로 놀러 오실 분… 6월 전에 오시면.. 확실하게 모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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