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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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2개월차에 들어서면서 달라진 점.. 아내가 여기서 할 일을 일단 정했고, 차를 샀으며, 여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좀 더 알게되었으며..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변화는 영어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것..

뭐.. 재작년 이곳으로 답사차 여행왔을 때나, 이민자로 공항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에도 그리 언어문제로 크게 손해보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생각외로 말이 잘 통했고, 다행스럽게도 여긴 워낙 이민자들이 많은 도시라서 그런지, 상대의 발음이 아무리 거지 같더라도 꼼꼼히 알아듣기위해 노력을 해주는 친절함이 사람들 몸에 베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몇 차례 – 신용카드 개통 등등 – 민감한 사안 빼고는 그리 어려움을 겪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항상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점은 “우리가 과연 영어를 잘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었다. 당장, 여기서 어릴적부터 자라 온 사람들끼리 빠르게 얘기하는 걸 슬쩍 엿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TV에서 외화를 보더라도 50% 이상은.. 전문용어가 많으면 70% 이상을 알아듣지 못한다. 뭐.. 좋다. 이런 건 결국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서 얻어내는 수 밖에 없다고 치자.. 하지만, 재작년 여행이나 이번에 처음 정착해서는 일단 우리가 돈을 쓰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가 친절하게 우리 말을 귀담아 들어 주고 천천히 말해주고 하지만, 우리가 물건을 환불하거나 돈을 버는 일을 할 때는, 과연 상대가 얼마나 성의를 가져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저버릴 수가 없었다.

최근 몇 가지 사건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지난번은 슈퍼에서 물건을 샀는데 우리가 미리 본 가격과 값이 다르게 찍혔다. 그래서 점원한테 따졌더니 점원은 유기농 과일이라서 원래 비싼거다라고 얘기를 한다. 그래봤자 몇 백원인데.. 분명 우리가 본 가격과 달랐고, 여기서 귀찮다고 물러서면 대충 지면서 사는 것이 습관이 될 것 같아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로 했다. 곧이어 매니저를 불러냈고, 그 역시 유기농 운운 하며 똑 같은 설명을 했지만 우린 진열대에서 가격을 보고 말하는 거라고 분명히 항변을 했다. 매니저는 자기가 가서 직접 확인을 하겠다고 아내와 같이 진열대에 갔다오더니, 매우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 사과를 한다. 이번에 특별 할인 이벤트를 하면서 바코드 데이터를 미처 바꾸지 못한 부분이 있다나?? 어쨌건, 그 놈들한테는 우리가 몇 백원에 목숨거는 짠돌이로 보였을지 몰라도, 우린 그날 처음으로, 영어로 우리 의견을 말해서 상대를 설득시키고 보상을 받았다는 기쁨을 나누었다.

얼마 전에는, 60% 할인 때문에 충동구매로 산 고급 드라이버 세트를 환불 받았고(여기서는 환불이나 교환 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있다. 문제가 생기면 즉각 교환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어떤 사람들은 고교 졸업 무도회에 입고 나가는 드레스를 구입한 후 무도회가 끝나면 죄다 환불한다고도 한다), 오늘은 엊그제 산 칼라프린터를 환불 받았다. 칼라 프린터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하자면… 이 곳 역시 정품 프린터 잉크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잉크를 리필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어쩄건 칼라 잉크젯 프린터 기계 자체는 엄청나게 저가에 판매되고 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운송비 만원 정도 주고)가져온 프린터가 고장이 나서 새로 4만5천원 짜리 프린터를 구입했는데, 여기에 흑백 잉크가 안들어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USB케이블도 안들어있었다. 핸드폰 구입 이후 또 한번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워낙 싸구려 프린터를 구입했으므로.. 뭐.. 잉크 하나 사주지.. 하는 마음을 먹고 할인마트에 잉크 사러 갔더니.. 그 프린터에 맞는 흑백잉크가 4만5천원.. 프린터 기계값을 하는 거였다. 세상에 이런 날강도 같은 경우가 어디 있으랴.. 그럼 아예 잉크를 넣어두고 9만원에 팔든지.. 기가 막혀서 결국 환불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프린터를 사서 급한 마음에 박스를 이미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린 이후였던 것이다. (여기선 환불시 구입과 동일한 박스포장상태가 반드시 요구된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 통을 다시 뒤져 박스를 찾아냈지만 이미 빗물에 젖고 구겨지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망가진 박스를 스카치 테이프로 이어 붙인 후 기계를 다시 담아 오늘 구입처에 다시 가서 환불 요청을 했다. 일단 외관상태를 보더니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눈치이다. 뭐가 문제냐고 묻길래 (나 스스로도 놀라웁게도) 구구절절, 프린터 값과 똑같이 하는 잉크가 안들어 있었는데, 내가 구입할 때 점원한테 물어봤을 때는 들어있다고 했다.. 등등 얘기를 했더니, 박스를 뜯어 내용물을 좀 더 살피다가 순순히 돈을 내어 준다. 확률이 반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 말이 설득력을 가졌던 것 같다. 어쨌건 이 일로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뭐.. 사실 황당한 경우도 많았다. 좀 전에 언급했던 핸드폰 사건은.. 우리가 핸드폰을 구입했을 때, 모든 계약을 마치고 대리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걸고 있는데, 우리가 계약한 대리점 직원이 몸소 나와서는 우리에게 5월까지 4달간 무제한 통화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마음놓고 핸드폰을 열심히 썼는데, 4월에는 요금이 7만원 돈이 덜컥 나온 것이다. (우린 3만원정도 내고 월 150분 쓰는 요금이다) 당장 이동통신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따졌더니, 우리 요금제도에서는 4달 무제한 서비스 같은게 없다고 하면서, 대리점에서 잘못 전해줬을 거라고 한다. 그래서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또 따져보니, 그 직원이 오늘 비번인데, 왜 걔가 그렇게 말했을까..하며 너스레를 떤다. 기가 막혀서 더 이상 영어고 한국어고 생각이 나지 않더군.. 일단 차근차근 원고를 써서 다음날 그 직원출근하면 찾아가 대판 할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걔가 오리발을 내밀면 아무 대항을 할 수 없는지라(사실은, 그 날 친구를 만나서 술을 너무 많이 먹어..) 이내 포기를 하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정말 사기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전 세계의 통신회사들은 오쩌면 이렇게 똑같이 나쁜 놈들인지..). 뭐 액땜한 셈치지만…

사실 그렇다. 아내는 여기와서 방범이나 보안에 관련된 부분.. – 우편물을 분실했다든지, 창문으로 누가 돌을 던졌다든지, 창문이나 베란다, 현관문의 잠금쇠가 부실한 거라든지 – 에 꾸준히 걱정을 했었지만, 정작 내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방범이나 보안은 어짜피 사람이 하는 짓이라서 한국에서도 충분히 유사상황에 대한 걱정도 하고 대안도 생각해왔기 때문에.. 별로 염려는 안들었지만, 정작 우리와 쓰는 말이 다르고 성장환경, 문화가 다른 애들을 설득하거나, 그들에게 뭔가 보상을 받아내는 일이 가장 걱정스러웠었던 것 같다. 나 뿐 아니라 여기 이민 온 많은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 같은 것이, 그런 문제에 대해 대처한 경험에 대해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든지..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걸 보면 그렇다. 어떤 이는 3시간 여에 걸쳐 줄기차게 소리도 지르고 설득도 하고 해서 보상을 받기도 하면서, 어짜피 여기도 한국과 같다.. 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다른 뭔가가 남아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제 오늘은 이틀간 골든이어(Golden Ear)라는 주립공원에 갔다왔다. 1박을 한 것이아니라.. 어제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 가서.. 멋진 광경을 봤으나 왠지 아쉬운 마음에, 오늘 또 간 것이다. 역시나.. 여기도 정말 절경은 숨어있었다. 일반 시내나 동네 공원도 좋긴하지만.. 뭔가 아쉽고 그런 게 있었는데, 골든이어의 숲들을 보고 나니 마치 별천지에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나무들이 뺵뺵히 들어서 있고, 산 중턱에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시치미를 떼고 덜렁 들어 앉아있다. 아.. 아무리 자신이 생기고 그래도 역시 우린 이민 2개월차.,. 아직 캐나다는 넓고 볼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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