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혹은 진실 3

27. Aug. 2003

어느덧 여름이 훌쩍 가버린다. 위도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태평양의 멕시코 만류 때문인지 이곳의 여름과 겨울은 정말 순식간처럼 느껴진다. 한국과는 반대로 점점 봄과 가을만 존재하는 나라가 되어가는 듯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리 만만치가 않다. 워낙 일교차가 큰 탓에 하루동안에도 여름과 가을이 공존한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게다가 겨울엔 비만 지겹게 퍼붓게 되겠지) 점차적으로 해도 짧아져 가고…

아버지의 병세가 다행히 호전되어가는 듯하다. 어제는 화상통신도 할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많이 여위셨지만… 이제 수술한지 한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완쾌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억척스럽게 암과 싸우고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제 이민 생활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이 나라에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만일 30년을 더 살게 된다면 60분의 1이 지나간 셈이다 다시 말해 1분 중에서 1초가 지나간 셈이다. 이러고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처음엔 땅덩이가 넓어서 받는 혜택에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고 청,청,한 하늘을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나서 몇 차례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숙련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익혔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뭐.. 30년을 살아왔던 한국에서도 끝까지 적응하지 못한 채 나라를 떠나고 말았으니..) 요새는 이민사회, 다민족 사회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사실이 눈에 띄는 것 같다.

1. 캐나다 국민들은 준법정신이 강하다.
– 글쎄.. 일단 이민사회의 특성이라고 보고 싶다. 적어도 (대한민국 군대처럼) 타의에 의해 수용되어진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좀 더 윤택한 삶을 위해서 각자가 선택한 나라가 바로 캐나다일 텐데, 때문에 이곳에 온 이민자들은 모두들 이곳의 규칙을 알아서 지키려고 애쓰는 편이다. 단지 규칙 뿐 아니라, 관습이나 규범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선배이민자인 백인들보다 아시안과 같은 신규이민자일수록 이런 규칙과 관례에 대한 존중은 더욱 심하다. 우리 애견샵에서도 팁을 주는 사람들은 대개 중국인들이지 백인들은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곳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들만이 팁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대형 시스템에서 결정한 일은 무조건 따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따르는 것이다. 공권력에 대한 존경심도 아마 캐나다 사람들이 높은 편일 것이다. 대부분이 이민자들이고, 그들의 머릿 속에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서, 때때로 부당한 일을 마주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얼마 전 이곳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서 우리 집이 인터넷 사용량이 많다고 경고를 하면서 계속 많이 쓸 경우 정지를 먹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나는 당연히 그런 규칙이 어디에 써있냐고, 계약 전에 언제 나에게 통지를 했었냐고 핏대를 올리며 싸워댔는데, 이들의 대답은 어이가 없다. 회사에서는 이런 고객 사용의 지침을 사전에 모두 알려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의 지침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소비자 단체에서 난리를 쳤을 문제다. 더 황당한 것은 다음 달에 일어났다. 그 동안 했던 인터넷 서비스에서 케이블 TV번들 서비스로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이 때 이 회사에서는 추가적인 설치비 부담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 왠걸, 이전 인터넷 서비스의 철거비용이 떡하니 계산서에 붙어서 나온 것이다. 당장 고객센터에 전화 걸어 알아보니까 역시 대답은 한심하다.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에서는 모두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희들은 자꾸 왜 따지냐는 것이겠지.. 누군가가 했던 농담 한 구절이 생각난다. “캐나다인 20명을 풀장에서 동시에 나오게 하는 방법은?” “그냥 ‘풀에서 나오시오’라고 말하면 된다”

2. 캐나다 생활은 자잘한 스트레스가 없다.
– 이 문제는 1번 문제와 연관이 있다. 스트레스가 없는 이유는 그냥 지키면서 그러려니 하며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는 또 이민자로서 자신이 선택한 나라의 일원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융해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자잘한 스트레스가 많은 이유는… 첫째가 법과 국가, 공권력, 규칙에 대해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조금만 목소리가 크면, 조금 더 악질적으로 우기면, 조금 더 날렵하고 영리하면서 기회 포착을 잘하면 더 잘살 수가 있다. 속고 살지 않을 수가 있고, 당하고 살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좀 더 영리해지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반면에 이곳 이민사회에서는 그냥 바보가 되든 말든, 당하고 살든 말든, 그냥 하라는 대로 하고 지키면서 사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로 며칠 고민한 적이 있다. 나는 이곳 인터넷 회사의 부당한 요금 청구를 보고 화를 내고 전화를 걸어 싸우고 있는데,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인지… 혹시 이것이 이 나라에 적응을 못하는 모습이 아닌지.. 예전에 만났던 캐다나인 친구인 낸시 하이네는 캐나다에선 사람들이 뭔가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젊은이들이 나라를 끊임없이 바꾸려고 하는 한국이 훨씬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다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그 때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게 제대로 사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3. 캐나다인들은 자상하다? 냉정하다?
– 이 나라 TV에도 ‘몰래카메라’와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황당한 상황을 꾸며놓고 시민들이 놀라는 반응을 몰래 찍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저런 짓거리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례한 상황도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마음 좋은 웃음을 짓고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캐나다인 들의(물론 민족들마다 반응이 달라서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특징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례가 있다.

어른인 A가 B라는 아이에게 옷을 맡긴 채 자리를 떠난다. 물론 그 옆에는 일반 시민이 함께 있다. A가 사라지자 마자 B는 A의 옷을 뒤져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그리고는 신분증과 카드 등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현금은 자기 주머니 속에 집어 넣는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일반 시민의 반응을 몰래 카메라가 찍는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으면 어땠을까? 백이면 백으로, 그 시민이 아이를 나무라면서 옷과 지갑을 (완력을 써서라도) 뺏어서 아이의 장난을 막았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의 탈선을 나무랄 줄 알아야 한다라는 관례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 전에 그런 아이의 장난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곳 사람들의 반응은 어이가 없다. 물론 아이의 그런 장난을 보고 아주 황당해 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조금 적극적인 사람이래 봤자 “No”라고 말할 뿐이다. 아이를 막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은 쓰레기 통에 던져진 카드나 증명서를 다시 꺼내려고 분투를 하지만 역시 아이를 막거나 돈을 다시 뺏거나 나무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이를 괴롭히면 당장 아동학대로 체포되기 때문일까? 어쨌든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막상 A가 돌아오자 줄줄이 고자질하는 것은 잘한다. 이들은 이런 것이 자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궁금하다.

물론 집을 나서면 아파트 근처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모두 친하게 지낸다. 서로 인사하고, 딸기도 아주 귀여워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애니메이션 경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자 어디어디에 지원해보라고 의견까지 이야기 해준다. 하지만 거기까지.. 더 이상 상대의 사적인 것을 질문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내의 동업자인 은정씨 얘긴데, 하루는 아침 일찍 카풀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껄렁한 놈이 와서 시간있냐고 추근댔다고 한다. 그래서 몇 차례 실랑이를 하다가 그냥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는데, 아내가 결혼했다고 말하지 그랬냐고 하니까 그런 사적인 얘기를 왜 낮선 사람에게 하느냐고 되묻는다. 역시나 이런 사생활은 아무에게나 얘기하는게 아닌걸까? 이곳에 와서 사귄 비한국인 친국 중에 아내 친구의 남편인 ‘필’이라고 있는데, 이 친구는 상대를 웃기는 것에 인생을 건 것처럼 필사적인 사람이다. 경찰공무원이지만 근엄이나 권위와는 거리가 멀고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주연배우의 농담이나 표정연기를 열심히 연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찬사를 듣는 게 기쁨이다.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거리낌없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만난지 3달이 지나고 대여섯 번 같이 술을 마신 후에야 비로소 필이 나에게 물었다.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는 뭐니?”… 여기 와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만난 지 5분 안에 하는 질문인데, 이 친구한테는 3달이 지나서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상대의 생활이나 생각에 깊게 들어가는 것을 꺼려 하는 것인데, 그게 상대를 위해서인지 자신을 위해서인지 알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 친구한테 수많은 농담을 듣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천천히 조금씩 듣게 된다. 이러한 미묘한 거리감 – 상대의 사생활을 배려하는 거리감이 자상함인지 냉정함인지 아직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석진 (2003-09-08 17:18:51)
얼마전 홈쇼핑에서 캐나다이민상품이 불티나게 팔려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한국에는 정말 비젼이 없는 걸까? 이민의 성공여부는 자신이 얼마나 만족하느냐겠지… 낼모래면 추석이다. 보고싶다 친구야!

MADDOG Jr. (2003-09-09 02:26:28)
그래.. 나도 슬슬 고향생각이 난다. 너희들이랑 키득대면서 술도 마시고 싶고 바보짓도 해보고싶다. 모든 선배 이민자들이 2~3년이 고비라는데.. 어쨌건 나도 보고 싶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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