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살아가는 법 2

지난 글에 이어 이민 1주년 기념으로 <밴쿠버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쓰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이나 이후에도 친척 친지들에게 일루 와서 같이 살자… 라는 식의 제안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캐나다가 한국보다 월등히 좋은 나라라는 확신이나 우월감에서 기인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물론 얘기 와중에 그런 뉘앙스가 풍겼을 수도 있고, 한창 이민병에 빠졌을 때는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제안의 배경에는 ‘당신들을 떠나는 것이 나도 섭섭하다’라는 뜻의 완곡한 표현 정도로 생각했었다. 이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정든 가족이나 친구들 등 인간관계 였으니까 말이다. 어쨌건 그런 제안들이 한국에서 오래 오래 잘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특히 한참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왜 이런 더러운 나라에 붙어 있으려 하냐?>라는 식의 비난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으리라. 이는 마치, 이곳에서 수준 낮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거기서 도대체 뭐하는 거야? 그런 거나 하려고 도대체 왜 그 나라에 붙어있는 건데?>라는 말과 양날의 검처럼 사용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이민 1세대들이 고국에서 하던 일에 비해선 형편없이 수준이 떨어지는 직업을 가지거나 사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실제 고국에서의 평가는 그렇게 받고 있는 것이다. ( 아.. 그러고 보니 송승환이 미국유학가서 시계 장사했을때, 나 역시 어른들에 부화뇌동하여 경멸한 적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선배나 친구들에게 그런 (무례한!!)제안을 했을 때, 그래도 많은 (착한) 선배들은 (화가 나는 걸 참고) 겸손하게 답해주었는데, 대개의 경우 <내가 거기 가서 뭘하겠어??>라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이민을 결정하기 전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고민을 해야 될 것인가를 고민을 했었다. 정리해서 말하면, 20대 초반에는 나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했다. 말하자면, 나 자신의 미래상을 잡아나가는 데에 있어서 내가 무슨 일을 할지가 제일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20대 후반 30대가 되어가자, ‘무엇’보다 ‘어떻게’가, What 보다는 How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는데, 이는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는 문제가 아닌, 내 삶을 어떻게 살지에 관한 문제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내가 이민을 결정하게 된 동기는 <내가 거기 가면 뭘하지?>라는 의문보다 <내가 거기 가면 어떻게 살지?>라는 방법론적인 질문에 천착을 하면서, 캐나다라는 나라가 내가 삶을 살아가는 스타일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그리고 이민생활에 적응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며칠 정육점에서 배달일을 하면서(그 정육점은 식당에 도매로 고기를 넘기는 것만으로 여름에는 하루에 3천만원이 넘는 매상을 올리는 큰 사업체인데), 밴쿠버 인근의 한인식당 비즈니스를 지켜 본 결과.. 정말 이민 생활에서의 비즈니스는 복불복이다. 어떤 곳은 자그마한 공간으로도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고기를 매입하는 반면, 어떤 곳은 월세를 2천만원씩(여기선 엄청난 월세다. 이름도 ‘고궁’이다) 내가면서 거대하게 식당을 해도 일주일에 고기 한 두 박스 들여놓고 말기도 한다. 간혹 이민 1년 만에 수십억 날리고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 간다는 사람들 얘기를 듣는데,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아내의 표현대로 밴쿠버는 ‘만만’하지 않은 셈이다.

한편, 꽤 짭짤하다는 소규모 비즈니스도 그렇다. 소규모 식당이나 잡화점, 그밖에도 한인들이 많이 하는 것은 세탁방, 샌드위치샵.. 등등이 있는데, 대개 가족 단위 비즈니스가 된다. 무슨 말이냐면, 아내와 남편이 같이 일하는 구조가 되어야 어느정도 수익(지난번에 말했던 4~5천불)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지(물론 적당한 탈세가 자행된다), 다른 사람끼라 동업을 하거나 하면 수익 분배를 해서는 도저히 생활이 빠듯한 셈이다. 우리가 했던 독그루밍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인데, 꾸준히 어느 수준의 매상을 올려주었으나 그걸 두 가정에서 나눠먹기엔 파이가 작았던 것이 판단착오였다. 게다가 이런 비즈니스들 중에 일반 사업체에 고용되어 일하는 것보다 근로시간이 적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개 9시부터 저녁 7시, 식당은 보통 저녁 9시까지 영업을 한다. 이렇게 주 6일을 근무하는 것이 보통인데, 피고용자의 보통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라면, 식당을 운영하게 되면 두 부부가 주 72시간 씩 근무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고(여기서도 한국처럼 국민연금의 미래를 암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자신들이 스스로 노후보장을 위한 저축을 하게 되는데 이런 계산이면,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주 72시간씩 두 부부가 일해서 월 수익이 7천불(7백만원)을 넘어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 이런 비즈니스를 처음에 인수하기 위해선.. 정말로 부단히 발품을 팔아 주변을 돌아다녀보고, 적당하게 자본력을 갖추어야 하며, 확실히 행운이 따라 줘야하는데, 불행하게도 그게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정말 <내가 거기 가서 뭘하겠어?>라는 자조섞인 질문이 마음에 와닿는다. 특히 돈없이 이민 온 젊은 독립이민자들의 경우 좋은 비즈니스를 인수하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비즈니스를 인수한다 하더라도, 두 부부가 주 72시간씩 일해야 하니까 <생활의 여유>를 찾아서 가족과 친구를 버리고 한국땅을 등지게 된 목적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일까?

방법이 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뭐든지>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고, 그 여유를 가지고 멋지게 생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무슨 직업>을 갖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남는 시간에 <무슨 놀이>를 하면서 살고, <무슨 구경>을 하며 살고, <무슨 음식>을 먹으면서 살고.. 이런 것에 보다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민생활은 한결 여유롭고 풍성해진다. 지난 해에 우리는 집에서 깻잎과 고추를 심어(나름대로 농사) 키우고 그걸 따서 밥상 위에 올려놓고 먹으며 살았는데, 사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밤 9시 30분에 퇴근하는 서울의 대기업 생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여유로움이었다. 이민을 결정하고 나서, TV에서 호주의 청소용역을 하는 한인 부부에 대해 나왔는데, 매일 밤 사무실 청소일을 하는 두 부부는, 새벽에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낮에는 골프 가방을 들고 필드에 나가 여유로움을 즐겼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청소부가 싱글을 치러 다니는 셈이다. 다행히 호주나 캐나다나, 어느 정도 각오를 가지고 있으면 생활하기 아주 어려운 나라는 아니다. 특히 육체노동을 감내할 자신감과 체력만 버텨 주면 생활의 여유를 찾기는 더욱 쉬워진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새롭게 이민 2기를 시작하려한다. 웨스트 벤쿠버에서 페리로 2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것인데, 아내와 둘이서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조용한 섬생활의 시작이다. 계산을 해보니 둘이서 월 3500불 정도 버는데, 아파트를 공짜로 제공받으니 4500불(450만원) 정도 버는 셈이다. 지난 글에 적었던, 한국 생활 수준으로 살기 위한 월 4000불 소득을 달성하는 순간이다. 게다가 ‘섬’생활을 시작하게 되니 쓰는 것도 적어질테니.. 어느 정도 식은 저축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슈퍼마켓 점원을 7~8년 동안 하는 것도 별로 개의치 않지만, 나이가 50을 가까이 향하게 되고 문득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상황이 올 때, 과연 지나온 그 삶에 만족할 수 있게될지는 의문이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1년간은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1년간 열심히 일해서 개인 신용도 쌓고 영어공부도 할 생각이다.

아내의 말대로 <이민 2기> 시작이다. 작년 한 해 좌충우돌 돌아다니면서 밴쿠버 한인 사회가 어떤 곳인가… 살펴보았다면, 올 한 해는 목표를 하나 두고 꾸준히 정진할 생각이다.

석진 (2004-01-28 18:46:20)
경욱아~~ 그냥 혼자서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민2기가 너의 계획대로 되길 기원하마^^

Hansol (2004-01-29 17:58:18)
흠… 진도가 빠르군… 이사가는날 냉장고가 걱정이야.. -_-;;

딸기아범 (2004-01-30 15:50:23)
그러들 말고.. 얼렁 놀러와서 실컷 놀자고.. 거기 게가 많이 잡히니까 킹크렙 뽀지게 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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