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주저없이 무덤 속으로 곤두박질 한다

…였던가? 좌우간 ‘시간’과 ‘무덤’, ‘곤두박질’이라는 단어로 조합하여 누나가 만든 싯구절이었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 시를 그대로 글짓기 숙제로 제출해서 국어 교사의 눈에 띄어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가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뒤로 부터 이 구절이 계속해서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데, 이는 이 구절의 의미 때문이 아니라 표절에 대한 나 스스로의 수치심 때문이겠지만(하지만 당시 반공 포스터 그리기나 표어 만들기, 글짓기 등의 숙제는 그야말로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숙제인 경우가 많았다.).. 요즘 들어서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시간이 쓔웅하니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좁은 섬에서 반복적인 일과를 보내고 있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요즘 우리들의 생활을 말하자면.. 하루에 가게에서 8시간을 일하는데 아침에 4시간 일하고 중간에 2시간 쉬고 다시 오후에 4시간을 일하면 하루가 간다. 바로 이 4시간이라는 단위가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렇게 4시간씩 모여 후딱 한 달이 지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여름이라서 9시까지는 밖이 베드민턴을 칠 수 있을 정도로 환한지라, 그래도 일 마치고 나서도 뭔가 – 낚시를 한다던지 할 수 있지만, 겨울이 되면 4시만 되어도 컴컴해지기 때문에 더 우울할 것이다. 이렇게 하루 8시간씩 6일을 일하면 하루를 쉬게 된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에는 사람들 만나서 새벽 4시까지 술마시고 아침에 겔겔대면서 출근해도 주 6일 거뜬히 일하고, 게다가 휴일이면 밀린 청소, 빨래, 쇼핑까지 해도 여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왠지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단 하루 쉰다는 것이 크게 부담이 온다. 섬이라서 더 그런것 아닐까? 빨래와 청소는 주중에 모두 해치운다 하더라도, 주 1일 쉬는 날 뭍으로 나가서 먹거리 및 기타 잡화 등을 쇼핑해오고(물론 … 우리가 일하는 직장이 슈퍼마켓인지라, 여기서 사도 상관없지만… 밖에 나가서 대형 쇼핑마트에서 사면 훨씬 더 싸게 사기 때문에 TT), 여기서 친해진 사람들도 순번을 정해서 하루에 두 팀 이상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벽 일찍 페리를 타고 나가 분단위로 시간을 나눠 휴일을 보내야 하니.. 이건 평일 근무하는 것보다 때로는 더 빡센 하루가 된다.

이렇게 휴일이 두번 지나가면 급여를 받는다. 캐나다에선 일반적으로 2주에 한번씩(보통 주 5일 근무를 하니까 10일 근무에 한번씩) 금요일날 급여를 수표로 받게 되는데, 우리 가게에서는 15일, 말일 이렇게 보름에 한번씩 급여 수표가 나온다. 이걸 밖에 나가서 은행계좌에 입금하면 제법 불어나는 잔고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지만(그래도 한국에서 모을 수 있는 돈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액수다. 여기선 돈을 모으기가 힘든 만큼, 조금만 예금 잔고가 있어도 부자 대우를 받게 되는것이다).. 사실은 급여를 받으면서 꼬박꼬박 내는 세금으로 우리의 개인신용이 올라간다는 보이지 않는 사실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두 번의 급여 체크를 받으면 그냥 한 달이 후딱 지나가는 셈이 된다.

이러다 보니까 우리가 벌써 이 섬에서 7개월 째 일하고 있는 사실이 새삼스러워 지고.. 가끔은 도대체 뭐하고 사는 것인지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 친하게 지내게 된 선배 한 분을 만나서 얘길 나누었는데, 그 양반은 7년간 금융투자 상품 영업을 꾸준히 하다가 이번에 갑작스러운 회사 사정으로 대리점장 진급을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황당한 경우를 당해서 처음엔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아 보이더니, 이내 보험업으로 업종을 바꾸어 다시 5개년 계획이라는 걸 세웠는데, 말하자면 5년 후 영업소장을 될 계획을 잡은 것이다. 47살이나 된 사람이 이렇게 척척 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추진해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적잖이 놀라와 하니까, 이 양반 하는 얘기가 더 걸작이었다. 그 나이가 되면 5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5개년 계획이라봤자 바로 내일 모레 할 일을 계획 세우는 것 마냥 어려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얘길 듣고 정말이지 뒷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 얘긴 다시 말해서 바로 내일 모레가 되면 5년이라는 시간이 후딱 지나가기 때문에 어영부영 하다가는 내 나이 37에도 여전히 슈퍼에서 맥주 채우고 공병받고… 이런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아내와..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어떤 경력을 쌓아나가야 유망할지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민을 오기 직전만 해도 하고 싶은 일은 다 하지 못하고 살아도 하기 싫은 일은 안하고 살겠다고 작심을 하고 한국을 떠나왔는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뭐.. 이제 6개월 세금을 낸 초보 이민자라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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