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혹은 진실 5 – BMW와 인종차별

몇 해 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4.29라고 해서 LA에 흑인 폭동이 난 적이 있었다.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피의자에 대한 LA 경찰의 폭력을 기화로 촉발된 것이었는데, LA빈민 흑인들의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터져버렸다. 바로 한인 사회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된 것이다. 한인들이 하는 슈퍼나 일반 비즈니스를 무차별적으로 공격, 강탈로 이어지자 한인사회에서는 나름대로 자경단을 조직해서 슈퍼 위에서 M16소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등등 첨예한 대립으로 발전이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언론 및 각계에서 중재의 노력이 이어졌고, 왜 한국인을 상대로 테러를 하는지 원인분석이 진행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감(특히 중국인처럼 이민역사가 오래되었고 삼합회와 같은 비정규 조직이 발달해있는 인종보다 단결도 잘 안되고 만만한 한인들에 대한 우월감)을 손꼽았고, 다음으로 한인교포들이 미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융화하지 못했다는 점… 그 지역에서 돈만 벌어가려고 생각했지 자선행위나, 기부등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꼽은 사람도 있었다.

당시 이 뉴스를 접한 나로서는 당연히 후자의 원인을 지당하다고 생각했었고,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특히 동네 슈퍼와 같은 비즈니스의 경우, 월마트나 런던드럭과 같은 대형 마트 체인이 진입하지 않은 빈민가에서 더욱 경쟁력을 가지기 때문에, 조금은 위험할 수 있는 그런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동네에서 지역 주민들과 융화를 못한 채(영어도 안되고.. 문화도 다르니) 돈만 벌어가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당연히 있을 거라는 얘기다.

얼마 전에 우리 가게 매니저(나랑 동갑내기)가 차를 구입했는데, BMW 중고를 괜찮은 가격(우리 기아 리오 새차와 거의 차이가 없는 가격)으로 구입을 했다. 이민온지 4년이 지났건만 가게에서 쓰는 화물용 벤을 빌려 빌려 다니다가 드디어 마이카를 구입한 셈인데.. 어쩐지 동네의 몇몇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았다. 가끔 페리에서 만나거나 동네를 지나다니면 큰소리로 “사이몬(매니저 이름)!! 차 참 좋다!!”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가게에 와서 땡깡을 부리는 손님 중 하나는 매니저에게 “니가 BMW를 무슨 돈으로 몰고 다니는 줄 아냐? 다 우리 돈으로 그 차 산거다!!”라고 어거지를 피우기도 했다. 이 섬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부자들이 벤츠나 볼보, BMW 등 고급차를 엄청나게 많이 몰고 다니고, 심지어 비디오 가게 여주인 조차 볼보 웨건을 몰고 다니다가 BMW로 새로 바꿨는데.. 그런 일에는 아무 소리 안하다가, 유독 이 가게 매니저에게만 그렇게 비아냥 거리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좀 전에 그 녀석이 가게에 와서 떙깡을 부릴 때는 아내도 화가 나서 “주 7일 일하는 사람이 돈 모아서 자기 차를 산 것에 대해 니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따졌다는데.. 아무래도 한인들이 이곳에서 돈을 벌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캐나다라는 나라가 미국에 비해 각 이민자들의 고유문화를 존중해주면서 잘 어울려 사는 나라이고, 특히 밴쿠버는 아시아인이 밴쿠버 경제의 40% 가까이 차지를 할 정도로 아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조직적인 인종차별을 느끼기는 힘들다. 물론 아직도 주의회나 시의회, 그리고 밴쿠버 소재 대기업 직원들을 보면 대부분이 백인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거야 이민역사가 점점 길어지고.. 이곳 문화와 언어를 깊게 이해하는 2세대 3세대들이 나타난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인종 차별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다기 보다는 결국 그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나 사회에서 소외되고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차별하는 경우가 더 많이 발생한다. 독일의 경우도 인종차별 금지법이라는 것이 성문화되어 있지만, 아직도 빈민층 및 구동독시민 등을 중심으로 네오나치..등등이 결성되면서 터어키 이민자들에 대한 테러가 이어지고 있고, 프랑스 역시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는 명예와는 다르게 유색인종에 대한 깡패적인 폭력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물론 한국 처럼 화교에 대한 탄압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 등 국가적 차원으로 차별을 자행하는 나라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선진국 들도 이렇게 개개인의 깡패적인 폭력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곳 밴쿠버 역시 아직은 대규모 인종 갈등은 발생하고 있지 않지만, 고등학교 내에서의 폭력써클 간의 인종충돌이 번번히 벌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어이없지만.. 이런 사회 낙오자들의 깡패적인 폭력의 경우.. 이쪽에서 수그러 들면 더욱 기고만장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백인들의 경우) 가끔 가게에 와서 땡깡을 피우는 사람들의 경우도 그렇다. 이쪽에서 조리있게 영어로 되받아치거나, (나처럼) 화를 버럭 내면서 소리를 지르면, 곧바로 꼬리를 감추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캐나다인들이 법을 잘 준수하고 공공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단지 힘이 센 사람들의 지시에 잘 굴종하는 성향 때문이 아닌 것인지 실망을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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