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뮤직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아버지께선 작년 한 해 동안 암 투병을 하고 계셨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과 싸가지 없는 의사들이 들이미는 수술 동의서, 그리고 터무니 없는 병원비 때문에 겪게 될 아버지와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익히 알고도 남았지만, 작년 한 해 나는 어떤 과외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인지,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죽고만 싶었다. 천만다행으로 아버지의 병환은 다른 대장암 환자들과 같이 호전되었고, 특히 캐나다 방문을 앞두고 좋아지셨던 게 아닌가 싶다. 왜… 사람이란 목표가 생기면 더욱 더 활기차지던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캐나다에서 2달 남짓… 내심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나름 대로 캐나다 서부 변두리에 있는 조그만 섬 생활을 즐기셨던 것 같다. 조용하고 한적한 삶. 그 어떤 공격에 대한 의심이 없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삶, 그리고… 캐나다.. 북미에서의 삶이라는 그 어떤 명분이 아버지를 만족시켰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인들의 실제 느낌은 모르는 일일지라도..

아내는 어릴 적부터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드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TV영화가 하는 주말만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본 영화들이, <베라크루즈>, <강 건너 텍사스>, <진홍의 도적>, <7인의 신부>, <사운드 오브 뮤직>, <튜니티 시리즈>, 그리고 <공포의 보수>와 같은 이브 몽땅이 주연했던 유럽 영화, 버트 랭카스터, 게리 쿠퍼가 주연 했던 서부영화 및 2차 대전 영화 들이었다. 이후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랐을 때, 오래된 3류 영화에 관심이 없던 같은 영화 서클 동기들과 달리 저자가 읊어대는 영화들을 모두 꿰뚫는 재미란 남다른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꼐서 남달리 애착을 보이던 영화는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과 <벤허>, <쿼바디스>였다.

아버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영화 감상에 대한 전설 중 하나는… 진정으로 좋은 영화는 평생 단 한번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자기 생애에 100퍼센트의 연인을 만나면 단 한번에 그걸 알아봐야 한다는 것 만큼이나 부담스러운 주문이었지만, 대학교 영화 서클에 들어서 가치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나는 정말로 좋은 영화는 단 한번만 보고는 두번 다시 보지 않았다. <인디아나 존스>가 그랬고, <백투더퓨처>가 그랬고, 그 오래전 영화들… <웨스트 월드>와 <사운드 오브 뮤직>도 그랬다. 하지만… ‘아..딴 게 볼 게 없어서 …. 이거 벌써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네..’하면서 아버지께서도 계속 본 영화가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나는 그게 좋아하는 영화를 또 보고 싶은 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 TV방송국도 한국과 다른 것이 없는 지라, 성탄절이 되면 했던 영화를 또 하고 또하고 하면서 반복 방영을 해주는 듯 싶다. 오늘 그 중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하길래, 이미 수십번을 본 영화지만 영어 청취 학습을 위해서 한번 더 보기로 했다. 폰트랩 대령(영어에서는 캡틴-대위-이다) 일가와 수녀 가정 교사 마리아, 여전히 신파적인 사랑놀음이고, 여전히 상투적인 삼각관계가 줄을 이었다. … 하지만, 그런 뮤지컬이 가지는 관습과 기호들은 과히 고전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폰트랩 일가가 마리아를 통해서 유럽식 보수주의를 버리고 미국식 다원주의를 택하는 과정을 아직도 설득력이 있었다. 특히, 큰 딸이 남자 친구와 한 밤 중에 부르는 연가와 함께, 파티에서 아이들이 함께 부르는 ‘취침인사 fairwell song’은 그런 가치관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아버지께서 정말 감명받았던 장면은.. 이 <취침인사>시퀀스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성년이 되면.. 모든 자유를 누리게 되는 동시에, 모든 책임(길거리에서 마약 팔다가 총에 맞을 책임까지)을 짊어지게 되는 북미의 관습이 아버지께 감명을 주었을 지 모를 이야기이다. ‘오늘밤 늦게 까지 놀고 싶어요. 저 샴페인 한 잔 해도 될까요?’라고 하는 폰트랩 첫째 딸의 노래는, 그 당시 한국 기성 세대의 모든 소망이 아니었을 까 생각이 든다. 한국전쟁과 4.19, 6.3을 모두 겪은 그 세대들에게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선전하는 미국 사회의 성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은 그 어떤 욕구가 있었을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 아버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 지금은 새로운 희망을 얼마든지 가져도 될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4-50대가 아이들 교육에 허리가 휘엉청 휘는 지금, 오히려 그런 부담과 거리를 둘 수 있는 60대 들이 뒷심을 발휘할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危機)란 위험과 기회의 동전의 양면이다.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느라고 3-40대를 헌신하셨다면, 이제야 말로 자신의 꿈, 자신의 목표를 다져서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은 목표가 생기면 더욱 활기차게 살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더이상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단 한번만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꽃같은 삶도 좋지만.. 그건 정말 드라마에나 어울리는 삶이 아닌지.. 남은 평생, 사랑하면서 살아도 너무 시간이 모자르다.

보영 (2004-12-27 07:45:59)
마지막 멘트가 가슴을 울리네요~

MADDOG Jr. (2004-12-27 16:30:52)
폰트랩 대령이 해외 도피를 하기 직전, 노래 경연에서 에델바이스를 부르던 중 목이 메어 노래를 못잇는 장면이 있다. 어릴 적에는 그 장면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민 1세대가 되고 나니 가슴이 절절해진다. 나 역시 그토록 혐오하던 한국이었지만, 막상 친구들과 가족들, 내 추억들을 등지고 떠날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