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알던 사람 중 하나는 복권을 하는 행위 자체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확룰이 낮은 일에 돈을 쓸 수가 있냐는 것이었다. 복권 추첨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어떻게 돈을 쓸 지 상상하면서 행복해 하는 순간 역시, 그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었던 듯 싶다. 뭐 어찌되었든,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이 그리 건전한 일이 아닌 것은 틀림없지만, 사실 복권에 만원 안쪽으로 투자하면서 일주일간 소박한 상상을 하는 것은 건전, 불건전을 떠나서 귀엽다고 봐줘야 하는 것이 아닐지..
솔직히 이번 꿈은 정말 대박이었다. 낮선 집에 들어갔는데 낮 모르는 괴한이 나와 아내에게 똥을 던져서 온 몸이 똥으로 뒤덮혔다. 어찌 어찌 하다가 그 괴한과 몸싸움을 하는 지경으로 번졌는데, 결국 그를 잔,인,하게 죽여버렸다. 번쩍하고 잠이 깨서 인터넷 꿈 해몽을 뒤져봤더니, 똥을 몸에 묻힌 것은 재물이 들어온다는 것이고 싸우던 상대를 죽이는 것은 큰 일을 성취하는 길몽이라고 한다. 이번에야 말로 복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큰맘 먹고 6천원어치 복권을 샀다.
그리고는 당연하게 추첨일까지 그저그런 공상을 하면서 행복하게 보냈다. 잭팟(이곳에서 1등을 부르는 말)이 터지면… 뭘할까..??? 나에 비해 비교적 일이 자유로운 아내는 잠시 일을 쉬고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보내고 싶다 한다. 나 역시 당장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가서 친구들과 어이없는 바보짓들을 하면서 낄낄거리고 싶었지만, 왠지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정확히 정할 때 까지는 직장을 우선은 계속 다녀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곤??? 일단 돈을 묶어두는데 가장 확실한 ‘집 구입’을 하고….
그리고 또… 가족들과 돈을 나눈 후, 유럽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아무 곳이나 좀 오래된 도시에 놀러가서는 햇볕 아래서 아무 생각 없이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어디든 미국 중심의 문명의 위협을 받지 않은 곳에서, 미국이 없으면 생활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선 돌아와서, 뭔가 조그만 장사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뭐 돈을 더 불려보자는 것이 아니라..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주 최소한의 긴장을 가지며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사업, 한달 매출로 임대료만 간신히 채우는 그런 한가한 장사를 하고 싶었다. 그게 뭔데… ?? 모르겠다. 거기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과연 뭘 하고 싶은 건지.. 그건 어쩌면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복권이 당첨만 되면 그까짓거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처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 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20대는 정말이지, 정확히 한 점의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내달리던 10년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했었고, 무슨 실수를 저질러도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한 것으로 변명이 되었다. 그리고는 정확히 10년이 지나자 어떤 이유에서든지, 너무도 어이없게, 그 목적이라는 것은 스윽,, 하고 사라져버렸고, 난 언제부턴가 하루하루를 계속 떠밀려온 관성처럼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조금 여유가 생길 때가 있겠지, 언젠가는 다시 ‘목적’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설레고 기대가 충만한.. 그런 날이 내게 다시 돌아오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소망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복권이 아닌지.. 하면서 언젠가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잭팟이 터지고 당첨이 되어 정말로 얻고 싶었던 것은 4십억원이 아니라 그런 생활의 여유, 다시 꿈을 꾸는 생활을 얻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내가 복권을 사면서 당첨일까지 행복해했던 그 공상은 돈을 어떻게 쓸지가 아니라, 내게 어떤 생활의 여유가 올지, 내가 진정 다시 꿈을 꾸며 살 수 있을지..하는 기대가 아니었던지 싶다. 하지만,, 서글프지만,, 절대로 복권의 당첨이 나에게 지나간 20대를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일주일에 5천원 어치씩 꼬박꼬박 복권을 사서, 앞으로 10년 후 벼락에 맞아 죽을 10분의 1의 확률로 잭팟이 터지더라도, 내가 숨가쁘게 달리면서 보낸 20대는 절대로 내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재밌는 영화 한편을 만들고 싶어서 이 궁리, 저 궁리 하며 줄거리를 짜대고, 때로는 내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인생 경험을 쌓겠다고 이리저리 좌충우돌해대고, 어떤 날은 친구들과 ‘거리풍경’에 앉아 어제 본 ‘서울의 달’이나 ‘옥이 이모’ 한 꼭지를 늘어놓으며 의미없이 웃고 떠들고, 그리고 밤 늦게 까지 술 마시고 노래 부르던.. 그런 20대는 복권 당첨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아내에게 느닷없이 또 한번 세계일주를 하자고 제안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냥 마냥 지금 직장생활이 어렵고, 아니면 순간을 즐기자는 것이 아니라, 왠지 지금 안하면 평생 못할 것 같은, 복권이 당첨되더라도 절대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불안감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돈을 또 천만원을 써서 세계 일주를 하고 온다고 해서, 나에게 나의 20대가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거라도 안하면, 내가 나의 20대를 영영 떠나 보내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지나가버린, 그리고 내게 없는 20대를 그리워하고 섭섭해하고 있지만, 내가 40대가 되면 어이없이 관성으로 보낸 나의 30대를 한심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복권 당첨일의 꿈은 내가 다니던 직장에 불이 나서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었다. 이 역시 대단한 길몽이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서 발표시간까지의 십여시간 동안 또 소박한 공상을 지속되었다. 하지만 복권은 어이없이 꽝이었다. 내가 이제껏 좋은 꿈을 꾸고 나서 복권을 산 적은 꽤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번호 하나도 안맞은 적은 없었다. 적어도 천원짜리 한 장이라도 되거나, 아니면 다른 횡재수가(예를 들어 예상치도 않았던 돈이 들어온다든지)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이번 복권에는 정말 간절하게 바라고 있어서인지.. 여느 때에 비해 실망감이 컸다. 비록 잭팟이 터져도 나의 20대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젯밤에는 딸기가 집안에서 엄청나게 큰 똥을 싸는 꿈을 꾸었다. 이게 똥꿈인지… 개꿈인지.. 모르겠다. 복권을 또 사야하는 걸까?
두성 (2005-12-10 23:03:24)
꿈에 상관없이 복권은 꾸준히 사야한다는게 나의 소신이라네 ^^
MADDOG Jr. (2005-12-11 02:10:22)
ㅋㅋ 그래서 재미 좀 봤나??
보영 (2005-12-11 10:18:02)
딸기에게 복권값이 든 주머니를 목에 걸어 복권 심부름을 시키심이…당첨되면 크게 한턱 쏘셔야해요… 딸기에게도 & 한국식구들에게도~
MADDOG Jr. (2005-12-11 13:42:51)
ㅎㅎㅎ 한턱 뿐이겠어요??
Ana (2005-12-12 02:12:55)
딸기가 그런거 할 줄 알면 업고 다니겠네.. 근데 복권 아직 안 샀는데..? 사려나?
두성 (2005-12-12 18:11:56)
재미….는 본적이 있지. ^^ 내가 얘기 안했나?? 근데 재미정도로 되겠어? 인생역전을 위해서 꾸준히 사는거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