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피노 여행기 – 5일차

제 5 일

햇살이 나오진 않았지만 바람 없는 좋은 날씨. 일어나 채비를 하고 커피를 만들어 텀블러에 담고 방을 나선다. 나는 간단하게 커피에 곁들여 먹을 빵 하나 사고 싶었지만 우리가 잘 못 찾은 건지 그 흔한 빵집 하나 눈에 띄질 않는다. 거리에 사람도 없고 스산한 느낌까지.. 태풍이 막 지나간 일요일 아침이어선가?


빅토리아의 명물 중 하나라는 초콜렛 가게

마침내 문 연 까페를 찾아 나는 시나몬롤을 먹고 남편은 오늘의 스페셜 메뉴 – 찬 고기 샌드위치와 보리를 넣은 쇠고기 수프. 딸기 때문에 밖의 테이블에서 먹었지만 다행히 날이 춥지 않아 속이 따뜻해져 온다. 작은 오래된 몰에 가서 가게들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역시 일요일 아침이어선지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다. 재미없다.. 한 10블록 정도 걸어서 차이나 타운까지 간다.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지 차도를 막고 깃발들을 들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새해 행사가 남았나 보다. 또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동네 구경을 한다.

빅토리아는 이번이 세 번째. 비슷한 관광지의 느낌. 뭐 특별히 살 것도 없는 우리는 금새 피곤해져 버린다. 한 시도 안 되었는데 시내를 한 바퀴 걸어서 돌고,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 온다. 여독이 쌓인 걸까.. 집에 가고 싶어진다. 원래 기분이 나면 하루 더 묵으려고 했지만 별로 할 것도 없고 해서 배를 타러 가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갈까 했지만 별 생각도 없고 그다지 끌리는 곳도 없고 해서 바로 출발하기로 하고 고속도로를 통해 시드니로 향한다. 시드니는 빅토리아로부터는 20Km,페리 터미널 5Km전에 있는 작은 동네다.

채 1년도 안 지났는데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BC주 전체가 건설과 부동산 경기에 휩싸인 걸까, 빅토리아도 그렇고 시드니까지 새로 올라가는 콘도와 아파트가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한적하던 바다 바로 앞에는 대규모 호텔이 올라가고 있다. 약간은 씁쓸해져 바로 차를 몰아 뒤편 극장 쪽으로 가 본다. 지난 번 시골 극장의 모습이 물씬 풍기던 곳이었는데. 다행이 여긴 그대로 2시에 시작되는 만화영화에 어린이 손님들을 받느라 분주하다. 갈 곳 없는 일요일 오후 아이들이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자그마한 극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동네가 아담하고 깨끗하다. 직업만 있다면 살고 싶은 조용한 곳이다. 처음엔 여기서도 내키면 하루 묵을까 하였으나 여긴 묵기보다는 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3시 페리를 타러 나선다.


시드니의 ‘스타극장’… 여기서 스타는 별이 아니라 ‘스타피쉬'(불가사리)의 스타였다

배를 기다리면서 햄버거와 어제 남긴 감자튀김(너무 눅눅해졌다..)을 먹는다. 딸기는 지칠 대로 지쳤는지 (하루 24시간 중에 20시간(?)은 자던 녀석이 거의 5일째 대부분을 움직이면서 자질 못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꼬!) 뒷좌석 빨래감이 담긴 봉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잠을 잔다.

이번에 탄 배는 정말 꼬졌다. 나나이모로 가던 배는 깔끔하고 의자도 신식이었는데 이 배는 정말 오래된 듯 보인다. 잠깐 올라가 커피 한 잔을 사오는데 별로 위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앉아 차로 와서 책을 잠깐 읽다가 깜박잠을 잔다. 남편은 아까부터 자고 있고..

1시간 35분을 달려 밴쿠버 도착. 집에 왔다. 자고 난 남편은 피로가 많이 풀린 듯. 나도 잠깐 잔 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 동안 양식에 찌든(?) 몸을 뭔가 한식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하면서 시내로 차를 몬다. 그 동안 전화를 못해 좀이 쑤시던 차에 양가에 안부 전화부터 드리고..

밴쿠버는 역시 차가 많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간단하게 한식집에 들러 밥을 먹고 가기로 의견을 모으고 나는 해물 순두부, 남편은 순대국밥으로 속을 푼다. 그 동안 부족했던 고춧가루 보충 완료. 집으로 돌아와 짐 풀고 딸기 목욕시키고 우리도 씻고 찍은 사진도 보고 돈 쓴 것도 계산해보고.. 딸기는 목욕을 마치고 밥을 배불리 먹고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의자 위에 올라가서 자고 있다. 집에 오니까 좋네. 4박 5일, 모처럼의 일상탈출. 이번에도 여러 가지 배우고 많이 지치고 많이 충전했다. 또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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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여행이랍시고 한번 나갔다오면 온 몸이 모두 뻑쩍지근하고, 아 정말이지 집이 최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하루이틀은 푹 쉬어줘야지 또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될 듯싶다. 도대체 여행이란 놈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매번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이번 여행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며 뒹굴뒹굴 하며 와야지..”하고 생각하고 책이며 음악 CD며 바리바리 싸가지고 출발을 하더라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을 하게되면 “그럴 바에야 편안히 집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지 비싼 돈내면서 여기에서 무슨 고생인가”하는 본전찾기 생각이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당연스럽게 무리를 해서라도 뭔가를 더 보러 다니고, 맛있는 걸 더 먹으러 다니고 싶어진다. 원래 이런게 여행인가? 그럼 아예 여행을 준비할 때에는 책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여행안내서 하나 달랑 들고 다니며 짧은 시간 내에 여기저기 쫒아 다니면서 사진 찍고 와야 하는 건가? 매번 여행을 마칠 때마다 우리가 잘 하고 온 건지 모르겠다.

뭐.. 어찌되었든… 재밌게 사는 것에 중점을 둬야겠지.. 사진 찍고 재빨리 움직이는게 재밌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게 아닌가 싶다. 낚시를 가던지, 고래를 보고 오던지.. 어떤 걸 하면서 재밌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는 거겠지. 아… 이 놈의 본전찾기 강박관념은 언제쯤 없어질라나… 세상 사는 거 가끔씩은 손해보면서 살아도 괜찮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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