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완전정복3 – 발음이라는 원죄

이민 온지 3년이 넘었고.. 이 말은 내가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지 3년이 넘었다는 얘긴데.. 이제는 어느 정도 생존에 필요한 영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초등학생 수준의 말이러서 아직 품위없고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뭐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치를 하지 않는 다면야) 초등학생 이상으로 얼마나 더 고상해질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앞으로도 더 영어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지만.. 그럭저럭 더이상 비겁하지 않게 살아갈 수는 있게 되었다.

한동안 영어공부를 위해서 한국방송 보는 것을 끊고, 한국 책을 읽는 것을 끊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건 도무지 인생 사는데 재미가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어방송, 영어권 책 중에서 재밌는 것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문화나 감성이 맞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단지 아직 언어능력이 그걸 100% 소화해내지 못해서일까? 어쩄든.. 얼마 동안 그렇게 재미없게 살다가 다시 한국 방송을 열심히 보면서 살고 있다. 영어공부에 방해되지 않냐고? 물론 방해된다. 하지만 그렇게 영어공부해서 뭐할건데?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봐도 어짜피 ‘영어’는 수단에 불과하다. 영어 잘하면 사는게 편하고, 어쩌면 좀 더 윤택하게 살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영어권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래봤자 좀 더 편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건데, 예를 들어, 무슨 영어로 쓰여진 책이 있고, 그 책을 읽으면서 재밌게 살고 싶어서 영어를 좀 더 공부하는 것은 말이 되더라도,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영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절대 재밌는 삶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람들을 사귀고 좀 더 정서적 교류를 넓히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회화 연습을 하기 위해 영어권 사람들을 사귀는 짓거리는 윤리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어학연수 와가지곤 밴쿠버 시립 도서관 앞에서 죽떄리고 있는 이곳 남자들에게 물려서 숙소 대주고, 용돈 주고 하며 사는 인간들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타인을 자신의 개인기 향상을 위해 이용하면서 사귄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나에게 있어서 재밌는 책을 읽고 재밌는 영화를 보고 하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다. 만일 그런 즐거움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역시나 영어 공부를 위해서 그런 즐거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얼마나 대단하게 살겠다고…

여하튼… 일단 영어를 단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영어 공부에 대한 조급증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될 수는 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아무리 한국말과 완전히 다르다 해도 1년만 맘 잡고 공부하면 다 된다고 본다. 그리고 3년 정도면 맘 잡고 공부한 적이 없더라도 인간들이 도대체 뭔 말을 하는지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물론 ‘원어민 발음’이라는 것을 바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듯이 어쩌면 조기교육 만이 원어민 발음을 얻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원어민 발음이 필요할까? 다시, 영어는 수단일 뿐이다. 예를 들어서 학교나 직장에서 토론을 하더라도, 발음 좋고 논리력이 딸리는 애들이 발음이 안좋지만 논리적으로 말을 하는 애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나중에 가선 (좋은 발음으로) 버벅버벅대다가 (좋은 발음으로)욕지거리나 할 뿐이다. 내가 사는 곳이 밴쿠버라서 그런지도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악센트를 알아들으면서 존중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만일 내가 못알아들을 경우 (속 심정이야 어떨지 몰라도) 상대에게 사과를 해야한다. 뭐 좋다. 그래도 원어민 발음이 가지고 싶다고 치자. 근데 문제는.. 내가 한국말로 생활을 하는 이상 절대 원어민 발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직장 동료 중에서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악센트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자라면서 가족과 함꼐 모국어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는 당연히 모국어로 생각하게 된다. 많은 이민 2세대들이 계산을 할 때에는 고국어로 숫자를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모국어 억양은 급작스러운 일을 당하거나, 놀라서 반사적으로 얘기할 때 더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Really?”처럼 반사적으로 되 묻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제각각 억양이 틀린 것을 볼 수 있다. 나 역시도 최대한 이곳 억양으로 하려고 하지만 가끔은 “정말이야?”의 억양과 똑같이 튀어나와서 쓴 웃음을 짓게 된다.

문제는 많은 비한국인들이 아직도 한국인의 악센트를 알아듣기 힘들어 하는 것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식 악센트, 중국식 악센트네 대해서는 무척이나 관대하게 알아듣는 데에도 말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경우 인도식 악센트나 유태식 악센트를 이해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백인들.. 이 땅에서 자란 아이들은 무리없이 이해한다. 예를 들어 손님들 중에 인도, 이란 사람들이 오면 그 독특한 발음이 나로서는 너무너무 이해하기 힘든데, 2,2,2,4를 ‘뜨뜨뜨뽀’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지만, Form을 ‘뽀럼’이라고 하고, Dial을 ‘달’이라고 하는데에는 도무지 어떤 일정한 규칙조차 발견할 수가 없다. 요즘은 각종 영어권 컴퓨터 대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서비스센터를 인도에 많이들 짓는다던데, 마이크로 소프트나 기타 IT 대기업에 전화할 일이 많은 나로서는 전화만 하면 도대체 뭔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대기업들이 콜센터를 인도에 만드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인도식 억양을 이해할 거라는 어느정도 통계와 자신감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런데, 내 다른 동료들은 이런 영어발음을 모두 이해하고 오히려 내 발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한국식 악센트가 그들에게 덜 친숙해서 그런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민을 가서도 현지인들과 융화되면서 우리의 영어발음에 적응시키지 않아서 그렇다. 한 예로, 대부분의 경우, 가게 손님들과 얘기하면 내 발음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면서 맨 나중에 “어디에서 왔니?”라고 물어보기 십상인데, 그나마 한국인들과 그 전에 교류가 있었던 손님이 왔을 경우, 내 발음을 100% 이해하면서 대번에 한국인이라고 맟추어 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젊은 사람들이 악센트가 있는 말을 더 잘 이해하고, (악센트를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노인의 경우 많이들 힘들어 한다.

만일 내가 지금 당장 국제 동시 통역사가 된다면.. 내 발음이 국제 표준에 가까와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장기적인 고민으로 현지인들과 많이 사귀면서 우리의 악센트를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원어민 발음을 교육시키는 거 보다는,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합리적 사고방식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지… 영어는 정말 3년만 하면 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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