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직물에 대한 예의

몇 년 전부터였던가.. 요즘엔 왜 들을 만한 노래가 없어… 라고 계속 한탄해왔었다. 비단 노래 뿐만이 아니다. 미국 영화들도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은 왠지 하나 같이 엉성하고 예전의 <백투더 퓨처>와 같은 완성된 재미를 주는 것들이 드물었다. 한국 영화나 일본 드라마, 애니메이션들은 그래도 아기자기한 재미라도 계속 있었지만.. 걸작이닷!! 하고 반색을 하거나 보고 또 보고 하는 작품들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창작자들이나 제작사들의 탓을 했었지만, 점점 내가 나이가 들어서.. 창작물에 쉽게 감흥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로 해석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동물원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왜 요즘엔 옛날 동물원 노래 같은 노래들이 안나오지.??”라고 생각을 하다가 묘한 점을 찾아냈다. 예전에 어떤 노래들, 영화들에 죽자고 빠져들었을 때는.. 단지 그 작품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노래, 영화를 감상하는 과정 속에 어떤 사연들이 담겨져 있었기 떄문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니나 시몬’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그 LP를 선물해 준 사람이 기억나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볼 때는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에 취해 걸어나오던 기억(그리고 예의 족발골목에서 확 깨던 기억).’슬램덩크’를 볼 때는 한 편 한 편 출간되기를 기다리면서 서점 앞을 서성이던 기억.. 그리고 나온 책을 읽으면서 걷다가 전봇대에 부딪힌 기억 등등.. 단지 작품 자체 외에도 그 예술작품의 전유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즐거웠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옷을 입고 다니는 거나 가구를 사용하는 것도 즐겁지만, 그 옷이나 가구를 사러 다니는 쇼핑 행위 자체의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는 것과도 같다(사실 나는 옷이나 가구를 사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지만..). 결국 내가 요즘 노래에 별로 감흥이 없던 이유는, 노래를 더 이상 돈 주고 사지 않고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듣는 것도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되는 것이다.     

 

사실.. 한 때 창작업으로 먹고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나는 줄곧 Copyleft를 지지해 왔다. 사실 창작품이나 예술 작품 자체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도 불쾌했고, 그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팔아서 먹고 산다는 현실도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저작한 글이나 그림, 사진 등 어떤 것들도, 저작자를 명기하고, 수정하지 않고, 비상업적인 용도로 쓰인다면 얼마든지 사전 허락없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한 다는 것이, 다른 창작품을 저작자의 동의 없이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즐기는 사실에 어떤 이유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내가 그동안 저작물을 다운로드 받는 것에 변명으로 사용해왔던 것은, “나는 언제나 돈을 주고 살 자세가 되어 있다. 작품이 그 정도 가치가 있을 경우에는..“이었다. 사실 한 때는 서점에만 가면 지름신을 왕창 왕창 받아서 일주일 밥값과 책을 바꿀 때도 많았고, 카세트 테이프나 CD, LP 등도 왠만큼 사왔다. 만화책의 경우는 500권 넘게 가지고 있었고, 특히 <동물원>이나 <서태지>의 경우 돈 없던 학생시절 ‘길보드’ 카세트 테이프로 즐기다가 여유가 생기자 LP나 CD로 다시 구입한 전력이 있었기 떄문에, “정말로 그 정도 가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지불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비성향을 지지하는 Radio Head와 같은 작가들을 존중해왔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내 것인데 왜 너희들 마음대로 쓰냐”라고 하는 성시경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성시경의 소유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단지 그것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구매하는 과정에 있어서 좀 더 조심스럽고 싶은 것이다. 특히 음악의 전유하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겠지만)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한번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번 귀에 들어오면 계속해서 반복해서 듣거나 따라 불러보기도 하는, 오히려 미술작품을 전유하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미술 작품을 구매할 때 미리 보지도 않고 구매하는 경우는 없는 것처럼, 음악도 당연히 한번은 들어보고 사야 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음악작품은 미술 작품과는 달리 무한 복제 가능하다는 차이점을 무시하고 있지만,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작품을 즐기는 방법이 같다는 것이다. 미술과 음악 말고, 다른 어떤 예술이 저 만큼 반복 감상을 하는 경우가 있는지) 자동차 사기 전에 시운전을 해보는 것처럼…

 

그런데, 오늘에 와서 크게 깨닫게 된 사실은, 그렇게 무료 다운으로 감상하는 방식이 너무나 많은 다른 재미를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듣고 싶던 음반을 사거나 선물 받아선, 집에 오자마자 (정말이지!) 속지를 찬찬히 읽어가면서 몰두해서 듣는 과정, 처음에는 별로였다가 들을수록 굉장한 노래를 발견하는 과정, 무엇보다도 (구매에 들인 돈이 아까와서라도 생기는) 그 음반에 대한 애정과 예의, 그런 것들이 다운로드를 하면서 부터 사라진 것이다. 예전에 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영화제를 할 때, 반자본주의에 관한 영화를 틀면서 관람료를 받는 모순에 대한 논의에서, 단돈 천원이라도 받지 않으면 (워낙 지루한 영화들이 되다 보니까) 영화 중간에 보다가 나가지 않을까로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말해 최소한의 비용은 예술 작품 전유시 긴장을 발생시켜 예의를 갖추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김건모 신보나 패닉, 이적, 이승철 신보도 예전만큼 감흥이 적었고, 남들 다 재밌다는 ‘배트맨 비긴즈’나 ‘트랜스포머’도 영 별로 였던 것이 아닌지.. 그러고 보니 시트콤 <프렌즈>조차 다운 받아 보기 전까지는 방영 시간에 맞춰 TV앞에서 기다리고는 했는데… 다운 받아 보자마자 재미가 없어졌던 것이 아닌지..

이것은 더 이상 돈을 쓰고 안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운 받느라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면서) 작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다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최대한 제 돈 주고 사 보고 사 들으려 한다. 그리고 별로 기대되지 않는 작품들은 아예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한다. 그 동안 인터넷이 제공한 편의 덕택에 수많은 정보를 쉽게 무료로 즐길 수 있었지만, 그 ‘정보’라는 것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거나 ‘작품’으로 감상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꼭 다운로드가 아니더라도 가능한한 인터넷 사용을 줄여야겠다. 분명히 지금, 이 시점은, 정보의 과잉이다!!

 

이런 다짐과는 별도로, 한국에서도 저작권법이 하루 속히 개정되어 많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모는 일이 없어졌으면 한다(캐나다 저작권협회는 지난 1998년 개인적 감상을 위한 복제 행위는 합법이라고 판정).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저작물을 팔아 먹지 않고도 어느 정도 저작 수익이 보장이 되고, 수용자 입장에서도 굳이 구매를 하지 않고도 일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한국에서도 저작권법으로 처벌만 하려고 하지 말고 이런 방법이 많이 양성화되길 바란다. 바로 <공공 도서관>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